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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 보니
2012-08-30 13:03:55최종 업데이트 : 2012-08-30 13:03:55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애
시장에 가 보니_1
시장에 가 보니_1

장바구니를 들고 재래시장으로 나섰다. 푹푹 찌는 불가마 더위, 그리고 바로 뒤에 이어진 몇날 몇일간의 폭우.  자동차 바퀴에 튀는 빗물을 피해 우산을 받고 가면서 길거리에 나선 사람들 모두 이런 날씨에 짜증 섞인 표정들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노점상을 하는 할머니가 한데서 라면으로 초저녁 끼니를 때우고 계시다. 시장에 갈 때 마다 자주 보는 할머니시다.

"에효, 이 빗속에...많이 파셨어요, 할머니?"
먼저 건네는 인사에 "뭔 사람이요? 겁나요, 죄는 한나도 안 지었소마는...사람이 없어. 사람이"라는 즉답이 돌아온다
"많이 파셔야 하는데. 왜 사람들이 없으까? 다들 마트로 가나봐요?"
"그랑께. 그런데가 더 편하고 좋으닝께. 못말리지 뭐. 거기는 에어콘도 시원하고 차 대기도 쉬웅께. 비도 안맞고. 우리는 장사도 안 되고..."

길을 걷는 행인들은 대부분 가격을 묻고는 야속하게도 그냥 지나친다. 좀 사주면 좋으련만, 값을 묻고 몇 번을 망설이다 돌아서는 그들의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이곳에 한참을 머물다 보니 서민들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알 것도 같다.

나는 두부 두모와, 할머니가 직접 띄워 만들었다는 청국장과 도토리묵 한덩어리씩 사 들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도 그다지 바쁜건 없었다. 그 옆에 할머니가 파는 옥수수와 서리태 콩이 다른 주인을 기다리는 품새가 애처럽다.
"옥수수가 정말 싱싱혀, 삶아 놓으면 농글농글하니 맛있어. 먹어봐."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노점을 한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후루룩' 라면을 드시면서도 연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이런저런 '호객' 영업을 하시느라 여념이 없다. 

그중 젊은 새댁같은 여성에게 익숙한 말투로 옥수수를 건네시며 아는 체를 하시자 그 새댁도 고맙게도 단박에 옥수수 5개를 덥석 사 든다. 할머니는 제법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단골들마저 요즘은 마트로 다들 간다며 안타까워 하신다.
하지만 연세 드시면서 끼니라도 잘 챙겨 드셔야 하는데 하루 종일 한데서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고 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라면을 드시니 맘이 쨘하다.
"끼니는 제대로 챙기셔야죠."
"식당에서 밥해다 판 사람이 있는데 오늘은 안나왔네, 묵고 살랑께 라면이라도 묵어야제."

그런데 라면을 드시는 할머니 손을 봤더니... 손톱이 닳고 닳아 뭉개지고 손등은 트고 갈라졌다.
"할머니, 이런 로숀 좀 바르고 오셔야죠. 그리고 목장갑이라도 좀 끼시지"
안타까워 하는 내 말에 할머니는 "일년 열두 달 손톱을 안 깎아봤어"라신다.
할머니의 손이 더 까칠해 보인다. 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아리고 아파온다.
"이 손 보씨요, 다 닳아서 이 모양이야. 요래 된거는 장사하다봉께 그런거지. 언제 로션을 발러... 발르기를?"

할머니는 스무 살에 시집 와서부터 서른 중반부터 장사를 했다고 하신다. 시장에서 평생 장사를 해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쳤다. 며느리가 아들 직장이 없다며 집을 나가고 손자 녀석들까지 떠 맞게 됐다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게 다 당신의 죄라며.
"평생을 자식들 가르치고 살았응께, 인제는 또 손주들 갈쳐야 돼 죄가 많아서..."
에고, 참 챙기고 거둘 일도 많으신 할머니셨다. 
"더운데 건강 잃지 않도록 끼니 거르지 말고 잘 드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할머니로부터 산 두부와 청국장, 옥수수를 싸 들고 돌아섰다. 순간 콧잔등에 훅 하고 다가서는 눅진한 습기가 할머니 얼굴마저 젖게 할까봐 얼마나 야속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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