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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 어르신들의 애환
2012-09-05 17:01:06최종 업데이트 : 2012-09-05 17:01:06 작성자 : 시민기자   김숙자
얼마전이었다. 재활용 분리수거 통을 들고 나갔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엄마, 엄마, 분리수거 하는데 어떤 아줌마가 경비원 아저씨를 막 혼냈어"
"경비원 아저씨를 혼내? 그럼 혼낸 사람이 아줌마가 아니라 할머니겠지... 그런데 왜 그랬대?"

연세가 예순 가까이 되셨거나 그보다 더 드신 경비원 할아버지를 웬 아줌마가 혼냈다는 아이들의 표현이 잘못된 듯 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냐. 정말 아줌마라니까. 근데 경비 아저씨가 분리수거를 못하게 했나봐. 밖에서 막 소리지르고 싸웠다니까."
분리수거를 막았다고? 그게 말이 되나? 하여튼 아이들 말만 듣고는 이해가 안됐고 나도 은근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슬리퍼를 신고 슬쩍 나가봤다. 알만한 동네 아마들이 나와 있었다. 
"나왔네.... 그 집은 아까 애들이 다 한것 같던데"

마침 눈이 마주친 호섭 엄마가 먼저 인사를 주길래 나도 "응. 그냥 나왔어"라며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휙 하니 어디선가 퀘퀘한 썩은 젓갈 냄새가 코를 확 찔렀다. 약간 구리기까지 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슬쩍 눈짓을 하자 금세 뭘 궁금해 하는지 눈치를 챈 호섭 엄마가 내 팔을 잡이 끌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니 글쎄, 3층 주분데, 좀 심하네 "
"무슨 일인데?"

호섭 엄마가 전해준 얘기는 이랬다. 
분리수거를 하는 현장에서 저마다 캔, 페트병, 비닐, 플라스틱 모든 주민들이 제자리에 꽂아 넣는데 그 문제의 젊은 주부가 나타나서는 젓갈 국물이 상당히 담긴 플라스틱 통을 그냥 버리더라는 것이었다. 
이걸 본 경비원 아저씨가 "재활용에 넣으실 때는 그 안에 있는걸 비우셔야죠"라며 점잖게 말씀하시자, 그 주부는 "뭘 그런걸 일일이 따지고 그래요?"라며 그냥 가려고 했다. 경비 아저씨가 어처구니 없어 "그래도 비워 주셔야 처리를 하지요"라고 재차 말하자 가던 길을 휙 돌아선 그 주부는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얼어 젖힌채 국물을 바닥에 쏟아 부어버렸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그 장면을 본 다른 경비 아저씨가 다가가서 너무한거 아니냐고 하자 주부는  "경비들이 앉아서 뭐해요 맨날. 그런거나 치우면 되지. 월급 우리가 주잖아요"라며 되려 언성을 높이더라고 했다. 보고 있던 주민들이 싸움을 말리며 일단락 됐지만 그 젊은 주부의 막무가내식 뻔뻔한 행동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는 것이다.
더 기막힌건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 집은 분리수거 다음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니까 이사때 가지고 가기 싫은 물건을 그냥 통째로 버리고 갈 속셈으로 그러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걸린 것이었다.

이 경비원 아저씨는 얼마나 충격을 받으셨을까. 딸 뻘 되는 여자한테 그런 모욕을 당하셨으니.... 정말 아파트 경비원이 노비도 아니고, 대부분 직장을 정년퇴직 하셨거나 연세가 모두 많으신 분들인데, 기가막히셨을법 했다. 

아파트 경비 어르신들의 애환_1
아파트 경비 어르신들의 애환_1

솔직히 나는 경비원 아저씨들의 애환을 너무나 잘 안다. 왜냐면 친정 아버지가 약 4년정도  아파트 경비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아버지도 속상한 일을 당하신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숙자야"
어느날 전화를 거신 아버지. 아버지는 약간 취하셨다. 경비를 하시던중 한 입주민으로부터 막말을 듣고 속이 상해 한잔 하셨다며 딸인 나에게 하소연처럼 말씀을 하셨다. 

이날 아침 9시반쯤에 전날 당도한 택배 물건을 찾아가라며 인터폰을 넣었더니 택배를 찾아가야 할 아줌마가 다짜고짜 하는 말,
"아니 경비들이 웬 새벽부터 잠 깨우고 전화질이야? 택배는 이따 찾아가면 되잖아욧"
아버지는 심하게 충격을 받으셨다. 그시간을 새벽이라고 말하는 억지도 그랬지만, 자기네 물건 받아 뒀다가 찾아가라고 알리는 경비원한테... 그것도 연세 지긋하신 어른한테 '전화질'이라니.

딸, 아니면 며느리 같은 여자들이 경비원한테 그런 막말을 하니 이분들은 돌부처 같은 마음으로 일들을 하신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그분들은 월급도 적고 근무여건이 나빠도 입주민의 생활편의를 위해 많은 불만을 감수하고 묵묵히 일하고 있다. 그저 만나면 "수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와 친절한 배려  정도는 해드릴수 있는거 아닐까. 어려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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