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옛다, 엿 먹어라
엿장수의 추억, 기억들 나세요?
2012-11-01 02:13:17최종 업데이트 : 2012-11-01 02:13:17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석원
점심시간에 소화가 잘 안돼서 그런다며 밥을 굶은 직원이 오후 서너시쯤 되자 배가 출출했던 모양이다. 뭔가 군것질이라도 할 생각으로 지갑을 뒤적이던 것을 본 다른 직원이 "찹쌀이 소화도 잘 되니 찹쌀떡이나 찰떡 종류를 사 먹어보라" 일렀다.

그러자 이 직원은 그 길로 밖에 나가 제과점에서 찹쌀떡을 대여섯 팩이나 사 가지고 들고 들어와 사무실에서는 한때 찹쌀떡 파티가 열렸다. 그런데 찹쌀떡만 사 가지고 온게 아니라 수능을 앞두고 제과점에서 파는 엿까지 함께 듬뿍 사 가지고 왔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이 친구 덕분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저마다 얼굴에 하얀 쌀가루를 묻히며 히죽히죽 웃으며 찹쌀떡과 엿을 나눠 먹었다. 팥 앙금이 들어간 찹쌀떡, 그리고 끈적이는 엿을 먹노라니 정말 옛 추억이 떠올랐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이때에 이런 군것질거리로는 찹쌀떡과 함께 쌍벽을 이룬게 바로 엿이었다.
내가 찹쌀떡을 그래도 풍족하게 먹은것도 그나마 도시로 나와 살던 때부터였지, 먹을게 흔치 않던 농촌에서는 그래도 가장 만만한건 뭐니뭐니 해도 바로 이 엿이었다.
특히 날씨가 추워지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엿은 농촌에서 최상의 군것질거리였고, 현금이 아닌걸로도 사서 먹을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농촌에서는 그만큼 매력적인 게 더 없었다. 

보리밥 한그릇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배고픈 시절, 엿장수는 시골 어린이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이었다. 당시에 우리 마을에는 며칠에 한번씩 엿장수 아저씨가 다녀가셨다. 엿장수 아저씨가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커다랗고 투박스럽게 생긴 가위로 "찰까락~ 찰까락~" 이렇게 멋지게 가위질을 하시면서  "엿~엿이요 ~ 엿~ 엿 사시오, 엿이요"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것도 멈추고 냅다 헛간부터 달려가 뒤지기 시작한다. 

혹시 빠뜨린 고물은 없는지, 장독대 주변, 마루밑, 담장 밑을 샅샅이 뒤지고 또 뒤진다. 돈을 주고 엿을 사먹는 것이 쉽지 않았던 가난했던 시절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하지만 내 마음만 바쁠뿐, 바꾸어 먹을 만한 고물은 이미 다 떠 써버린지 오래고 '오늘은 무엇으로 엿을 바꾸어 먹지?' 궁리 끝에 헌 고무신이나 헌 비료푸대를 찾아내곤 했다.
그때만큼 내 머리 회전이 빠르게 돌아갈때도 없다. 엿장수 아저씨가 마을을 떠나기 전에 고물을 들고 나가지 않으면 며칠을 또다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뒤져서 고물을 조금이라도 들고 나가면 맘씨 좋은 엿장수 아저씨는 엿판에서 가위로 엿을 한가락 잘라서 주는데...아, 그때 그 맛이라니...

엿장수의 찰까락 찰까락 거리는 가위소리와 함께 입안 가득고인 침도 꿀꺽 같이 넘어가곤 하였던 그것이지만, 피자와 햄버거 같은것에 길들여진 요즈음 아이들에게 엿은 그다지 거들떠도 안보는 흔한 음식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내가 시골애서 자라던 그때는 참으로 귀한 음식이었다.  듣기로는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갈 때 반드시 챙겨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이게 머리를 맑고 총명하게 하는 음식이었다나. 

시골에 엿을 팔러 왔던 엿장수의 리어카에 실려있던 엿의 종류를 기억해 보노라면 물엿, 갱엿, 깨엿, 땅콩엿, 콩엿 등 여러 가지가 있었고, 만드는 재료에 따라서도 쌀엿, 고구마엿, 옥수수엿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시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기다란 막대모습의 흰 가락엿은 갱엿을 여러 번 죽죽 늘이면 그 사이에 자잘한 공기구멍이 생겨서 희게 변하고 단단해진다. 이러한 공기구멍가운데 큰 공기구멍을 찾아내는 놀이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엿치기'였다.

엿과 함께 보통 옛 그림에도 보이듯이 엿판에 엿을 편편하게 적당한 두께로 펴서 가지고 다니면서 짧은 주걱처럼 생긴 엿칼을 대고 엿가위로 톡톡 쳐서 원하는 만큼 떼어주곤 하였다.
"옛다 엿먹어라"하는 말도 이렇게 엿칼로 떼어낸 것을 쥐어주며 엿장수 아저씨가 우리에게 했던 전매특허였다.


지금도 지역행사가 열리는 곳에 가면 엿장수들이 리어카를 끌고 와서 독특한 복장을 하고 엿가위 박자에 맞추어 품바타령을 하면서 엿가위와 엿칼로 엿을 떼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리어카가 없는 엿장수는 엿판을 어깨에 메거나 지게에 얹어 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엿가위로 장단을 맞추며 어린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엿장수가 있었다. 이 엿장수가 나타나면 마을 아이들은 벌떼처럼 모여 들어 엿장수 아저씨를 쫓아다녔고 기분 좋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는 엿을 그냥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더 먹고 싶으면 집안에 모아 두었던 빈병이나 고철, 떨어진 고무신 등을 가지고 나와 바꿔먹곤 하였다. 

언젠가 시내 고물상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로는 현재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과거 엿장수 출신도 많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싸 했다. 세월은 변해도 그 직업의 그 주인공들은 여전히 같은 분야에서 일들을 하고 있나보다.
나도 돌아오는 주말에는 하루쯤 엿장수 아저씨를 떠올리면서 제과점에서 엿이나 좀 사다 먹어볼까? 주위 아이들에게도 나눠주며 "옛다 엿먹어라"하면서...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