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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한장이 준 교훈
2012-12-16 09:34:20최종 업데이트 : 2012-12-16 09:34:20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석원

망년회를 한다며 나잇살이나 먹은 친구들이 모여 적잖은 술을 마셨다. 사실 좋은 방법이 아니란거 알지만 망년회란 대개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게 되는 법. 더군다나 위 아래 계층이 있는 조직이라면 윗 사람들은 윗사람으로써의 체면 때문에 적당히 마시고, 아랫사람은 아랫사람대로 그 직분에 맞춰 술을 마시게 된다.

하지만 자리가 다들 "이놈, 저놈"하며 흉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들이 모인 자리(초등학교 동창부터 대학 동창까지 다양한)에서는 그런저런 거리낌 없이 부어라 마셔라 하니 술을 많이 먹게 된다.
나도 많이 먹는 술이 아닌데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기분좋게 몇잔 마시게 되었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어 찜질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옆에서 뒤척이는 생면부지의 사람, 코 고는 사람, 이빨 가는 사람과 뒤섞여 잠을 잤기에 개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아주 이른 새벽에 잠을 깨고 보니 나 뿐만 아니라 친구들 서너놈이 더 찜질방에서 함께 잔 것을 알수 있었다.
새벽, 찜질방에서 깬 나와 친구들은 전날 과음한 숙취를 해결하기 위해 냉, 온탕을 교대로 첨벙거렸다. 우리는 마치 어릴적 시골 방죽거리 개울가에서 물장구 치며 놀듯이 사람이 많지 않은 냉온탕을 신나게 첨벙댄 것이다.

어? 그런데 적당히 몸을 씻고 피로를 푼 다음 탈의실에 갔더니만 내 팬티가 없어졌다. 굉장히 큰 실수를 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한참을 찾았다. 그러나 없었다. 다른 친구녀석들은 "빤쭈를 어따 팔아먹고 아침부터 허둥대냐?"며 마치 나잇값도 못하는 인간인양 놀려댔다.

팬티 한장이 준 교훈_1
팬티 한장이 준 교훈_1

이상하다, 분명히 벗어서 옷장 안에 넣었는데... 혹시 팬티를 찜질방에서 준 잠옷과 함께 벗어서 그 안에 넣어 버린거 아닌가? 아니면 잠시 바닥에 떨어트린걸 누가 주워간 것일까?
도무지 알수 없는 요상스런 상황에서 한동안 더 헤매고 있던 중 이미 목욕을 끝내고 옷까지 완전히 다 차려입은 친구 녀석 하나가 그렇게 그냥 노팬티에 불 난 집 며느리 마냥 왔다갔다 하던 나를 보더니 하는 말.
"빤쭈 아직도 못찾았냐? 뭘 그걸 목숨 걸고 찾고 있어 이친구야. 그냥 하나 사면 되지"

아, 맞다. 그냥 잊고 하나 사면 되는거 아닌가. 그래봤자 3천원인데. 왜 그 생각을 못한거지? 
순간, 10만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듯한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너무나 간단한 해법이 있는 것을 바보처럼 왜 그토록 오랫동안 헤맸을까. 
그냥 옷 차려입고 나가 속옷 가게에서 팬티 한 장 사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입고 나오면 될 일인데...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게 바로 집착이라는거로구나. 내가 지금까지 매사에 알게 모르게 집착하며 살아 오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없어진 것에 대해 집착을 재빨리 버리지 못하고 식은땀 흘리고 한동안 긴장했던 것은 내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생각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았겠지만 미련없이 버릴 때를 찾지 못한채 여전히 욕심이 붙어있던 집착이 더 무거웠던 것이다.

팬티 한장 새로 사 입는다고 마음을 바꾸자 그동안 가지고 있던 당황스런 생각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오히려 스스로가 슬기롭다는 느낌마저 생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버릴 때, 그리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채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기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라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나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집착과 욕심이 때로는 나를 그렇게 옥죄고 있었을거라는 생각을 하면 그동안 나 스스로 참 많은 스트레스를 혼자 끌어 안은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집에서도 그렇다.
서랍 속에는 자질구레한 물건이 많은데 가끔 사용하는 것도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많아서 열 때마다 눈에 거슬린다. 오래된 물건이 나뒹굴고 있으니 그 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고 급히 찾을 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어디 서랍 뿐인가. 별로 크지도 않는 장롱이나 벽장이 입지 않는 헌 옷들로 가득하다. 웃기는 일은 버리지 못해 그냥 걸어 둔 옷 때문에 당장 입어야 하는 옷이 구겨지고 모양이 찌들어 진다는 것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로 공간을 빼앗기고 사는가 싶어서 어느 날은 버리겠다 작심하고 대청소를 해 보았지만 위치 이동만 했을 뿐, 안 입는 옷이 다시 걸리고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다시 서랍 속에 들어가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버리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내가 쓰지 않더라도 남이 쓸 만한 것은 박스에 넣어서 대문 앞에 내놓으면 금방 없어지고 헌 옷은 시골로 보내면 잘 입는다고 감사 전화까지 온다. 그런데도 버리기를 작심한 끝에 마음 바꾸기를 반복하는 것은 행여 앞으로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살 때 많건 적건 지불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내게 버릴 것은 필요 없는 물건들뿐인 게 아니다. 머릿속의 생각 또한 버릴 것으로 꽉 차 있다. 섭섭했거나 불쾌했던 기억, 무엇을 사고 싶다는 생각, 채우고 싶다는 생각, 남을 의심하거나 미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거나 나만 편하고 싶다거나...

사람이라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안팎으로 버릴 것을 부둥켜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버리지 못해 끙끙대며 인생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모양새이니 긴 인생이 버리기를 시도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라도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집안에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어설픈 욕심도 버리고, 때론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도 버리고, 결정적일때 쓸데 없이 쥐고 있던 집착의 마음도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나는 주식은 할줄도 모르지만, 주식 하는 사람들이 손절매라는 이름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버릴때는 과감히 버리는 타이밍을 잡듯이, 정말이지 인생살이에 있어서 버릴것은 버릴줄 아는 타이밍을 배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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