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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의 편지를 받아본 분 있나요?
2013-01-19 12:19:23최종 업데이트 : 2013-01-19 12:19:23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희
편지가 왔다. 시어머니셨다. 며칠전에 전화를 걸어 주소를 물어보시길래 무슨일이신지 여쭈었더니 "그냥, 아들 메누리 어디 사는지 주소도 모르믄 쓰것냐"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요즘 세상에 편지를 다 쓰시다니? 그것도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감격에 감동에 생경함까지.

"앰이(에미) 보거라"로 시작된 연로하신 시어머님의 손글씨 편지. 요즘 휴대폰 문자메세지에 컴퓨터 이메일로 번개보다 빨리 소식을 주고받는 세월이지만, 시골 노인은 그런거 잘 모르신다. 
그저 볼펜으로 꾹꾹 눌러 맞춤법도 거의 신경 안쓰신(?) 그 깨알같은 꼬부랑 글씨는 볼수록 신기하고 정겨웠다. 
손글씨 편지를 시어머님으로부터 받았으니 황송하기조차 했다.

시어머님의 편지를 받아본 분 있나요?_1
시어머님의 편지를 받아본 분 있나요?_1

내용은 구구절절 아들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것이 전부여서 며느리로써 읽어 내려가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얼마전 남편의 월급이 찍힌 통장을 보다가 생각잖은 돈이 찍힌 것을 보고 이게 웬건가 싶었다. 전화로 물으니 알아서 쓰라며 남편은 꽤 의기양양 했다.

웬 돈이지? 돈을 넣은 입금자는 남편 회사였는데. 퇴근한 남편더러 물으니 작년에 1년 결산을 한 결과 회사가 이익이 좀 많이 나서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준거라 했다.
요즘 세상에 회사가 이익 났다고 성과급을 다 주다니? 돈의 액수를 떠나 신기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생긴 돈이라 좋은데 쓰고 싶었다.  남편더러 시부모님 건강검진을 하자고 했다. 기꺼이 OK. 그렇잖아도 친정 부모님은 3년전에 한번 해 드렸기에 하루빨리 꼭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눈 먼 돈'이 생긴게 반가웠다.

그렇게 기왕이면 좋은데 쓰자고 해서 시부모님 두분께 찾아가 정기건강검진 받아보시라고 드렸던건데, 어머님이 그것에 대한 고맙다는 말씀과 이런저런 내용을 쓴 편지를 보내신 글이었다. 
"동내 마을회관에서 마을잔치를 햇는대 우리 노친네덜 행운 행운군 줏첨을(행운권 추첨을) 시작햇는대 나는 <장춘희>라고 불르니 깜작 놀랫다. 얼릉 뗘갓더니(뛰어 갔더니) 100억 맞으라고 롯도 복권 3장 주더라"며 몇일전 고향 행사를 적으셨다. 아마도 100억 당첨은 안되신것 같고. 

두분이 농사 지으시며 자식을 키우셨다. 내가 시집갈때부터 딸 같은 며느리가 들어왔다 하시며 극진히 잘 해주신 시부모님. 나는 참 행복했다.
어머님의 편지는 이어졌다. (우리 가족에 프라이버시에 해당 되는 부분을 빼고, 맞춤법과 내용을 교정해서 적습니다.) 

"마을잔치를 다녀오니 너희가 주선해 준 효도 종합검진 결과가 와 있더구나. 마음같으면야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른 아들 딸들에게도 너희들 자랑하고 싶지만, 부모에게 종합검진을 해드리고 싶어도 살림이 여의치 못해서 그렇게 못하는 다른 아들딸들이 민망해 할까봐 너희 둘의 효심을 조금밖에 자랑하지 못했단다. 너희들의 효심 때문인지 검진 결과 특별히 나쁜 곳은 없고, 나는 노인들에게 많은 골다공증, 늬 아버지는 지방간, 노안 같은 정도여서 참으로 다행스러웠단다. 그리고 늬 아버지 금연 한다니까 믿어보자꾸나. 너희들에게 고마운 일이 어찌 건강검진뿐이겠느냐. 다달이 용돈이며, 아버지와 내 핸드폰까지 사주고 요금까지 다 내고 있는 며느리에게 고마운 마음을 늘 갖고 산단다. 너희들 6남매가 모나지 않고 자기들 일 성실히 하며 살아가니 곳곳에서 이렇게 칭찬을 받는구나. 이 모든 일이 너무 감사하여 나는 매일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고맙구나 메눌애기야"

이렇게 끝을 맺은 당신의 편지. 모르긴 해도 한나절은 쓰셨을법한 장문의 글, 자식사랑과 가정의 화목을 지켜내시려는 마음이 절절이 묻어난다. 효도하고 싶어도 사정이 여의치 못해 그럴수 없는 다른 아들딸들을 위한 배려의 마음까지...

작년에 가정의 달을 맞아 정부의 훈장을 받은 분 중에 결혼 후 홀시할머니와 홀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면서 중증장애를 가진 아들까지 키워낸 효부가 계셨다. 이분은 훈장을 받으셨는데 강원도 철원에 사시는 산골짜기 분이었다.
이분은 1998년에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식당 일과 가사를 병행하면서도 매일 세 끼 죽을 쑤어 떠먹여드리고, 목욕을 시키는 등 지극정성으로 수발했다고 한다. 또 안면기형, 항문폐쇄증 등을 갖고 태어난 아들이 30번의 수술 끝에 건강한 청년이 되기까지 각고의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나는 거기에 비해 발톱의 때 만큼도 효도를 못하는데... 어머니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다니.
나도 나중에 며느리 보면 이런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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