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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2017-06-03 14:24:08최종 업데이트 : 2017-06-03 14:24:08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몇 년 전에 직장에 갓 입사한 큰애를 따돌림하고 대학생이었던 작은아이와 단둘이서 홍콩자유여행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 동안 항상 셋이 여행을 잘 다녀왔던 터라 그때 큰애가 질투하며 한 말이 있다. "나는 나중에 친구랑 꼭 같이 홍콩자유여행 다녀 올 거야"

그 당시에 큰애는 모 금융권 재경팀에 입사해 첫 직장을 다녔는데, 첫 직장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의욕과, 부서내 말단사원이라 자진하여 연월차를 반납해가며 야근과 과중한 업무에 빠져있을 때였다.
그 때 딸이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엄마 직장 다니면서 제일 부러운 게 뭔 줄 아세요? 열심히 일한 선배들이 금요일 아침에 출근하며 캐리어 여행가방 끌고 와서 퇴근 후 밤비행기 타고 여행 떠나는 거예요. 게다가 연휴도 끼고 연월차 마음대로 써서 한 일주일 쯤 힐링 하고 오면 일이 더 잘 될 것 같은데, 아직 내 위치가 말단이니..."

큰가방은 큰애가 가지고 떠나고 작은가방만 덩그러니 남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
큰가방은 큰애가 가지고 떠나고 작은가방만 덩그러니 남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

그렇게 열심히 자신의 업무에 열중하던 큰애는 작년에 경력을 인정받고, 다른 금융권 경력직으로 자리를 옮겨 일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경력을 인정받기에 첫 직장 새내기 때랑 다르게 알아서 일처리하고, 가끔씩 연월차를 챙겨 여행도 떠나고 하는 여유가 생겼나보다.
4월이 딸애의 생일이었는데 그때 친구들과 만났을 때, 6월에 월차를 써서 연휴를 만들어 드디어 홍콩자유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공부하는 동생과 엄마인 나를 떼어놓고 혼자만 간다니, 예전에 큰애가 느꼈을 서운함에 공감이 갔다.

나도 잘 아는 큰애의 중학교 친구인 그 애는 대학교는 다르지만 경영학을 전공하고, 아직도 틈만 나면 만나는 절친이다. 둘이 같이 간다는 게 조금 안심이 되어 승낙했다. 사실 자신이 돈을 벌어 가겠다는 여행을 내가 막을 방도가 없었고, 이미 홍콩은 작은애만 데리고 다녀 온 터라, 나도 같이 간다고 따라나설 명분이 없기도 했다.

하루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하고, 또 하루는 호텔 방을 예약 한다고 법석을 떨더니, 한 일주일 전부터는 매일이다시피 집에 뭔가가 택배로 배달됐다. 저번에 호주 여행을 같이 다녀온 이후에 자신이 여행용 캐리어를 바꾼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여행가방도 세트로 새로 장만하고, 호텔 수영장에서 입을 비키니도 주문했다. 샌들에 반바지에 모자까지 어쩌면 그렇게 인터넷으로 물건을 잘 고르는지, 받아볼 때마다 요즘 젊은이들의 센스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비행기 떠나기 전 찍어보낸사진에서 딸은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비행기 떠나기 전 찍어보낸사진에서 딸은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그렇게 요란을 떨더니 드디어 2일 금요일 아침에 큰 화물용 캐리어를 끌고는 아침 일찍 광화문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 했다. 밤늦게 인천공항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이제 떠나요! 마카오로 들어가서 오늘과 내일 2박하고, 아침 일찍 홍콩으로 넘어가 홍콩에서 2박하고 홍콩에서 인천에 도착하면 6일 밤 9시에요. 친구도 우리 동네에서 가까이 사는데 늦은 시간이라, 친구도 데려다 줄 겸 아빠가 데리러 와주시면 좋겠어요!"

딸이 몇 년간 해 보고 싶었던 일을, 이제 해보는 것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큰 캐리어 가방을 들고 동료들 보란 듯이 출근해 퇴근시간 맞춰 서울역에 가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을 가는 딸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나까지 행복해 지는 느낌이다.
"엄마 그런데 나보고 공항버스는 막혀 시간이 늦을 수 있으니, 꼭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타라고 조언해 주신 그 팀장님을 우연히 공항철도에서 만났어요! 팀장님도 나랑 같은 기간에 휴가내고, 사모님과 함께 휴양하러 발리 가신다네요!" 즐거워서 한톤 올라간 딸아이의 행복한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언젠가 오래전 TV광고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했던 문구가 떠오른다. 그동안 그렇게 해보고 싶었지만, 바쁜 업무로 못해 보던 일을 해 보는 행복이 이렇게까지 큰 것인가? 큰애를 보며 나도 설렌다.
나는 내 자녀들이 그동안 해 보지 못한 일들을 많이 해보며, 세상의 많은 경험과 행복들을 접해보기를 바란다. 돈은 나중에라도 모을 수 있지만 청춘은 한번가면 절대로 돌아오지 않기에 하루라도 빨리 많은 여행을 하고 많은 생각을 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식이 행복해 하니 엄마도 덤으로 행복하다.

여행, 마카오, 홍콩, 박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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