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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살 발라주시던, 아버지가 보고싶다
2017-06-12 13:53:46최종 업데이트 : 2017-06-12 13:53:46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옛말에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그 중에는 식성이 유전되는 말이 포함 되어 있기에 참 신기한 유전자의 힘을 실감한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게를 좋아 하셨다. 온 가족이 발라 먹기가 귀찮아 좋아하지 않던 게를 잘 사오셨다. 어머니가 된장을 풀어 꽃게를 삶아 주시면, 아버지는 어금니로 게 다리를 분질러 살만 발라 내 입에 넣어 주시며 " 딸아 맛있지?"하며 웃으시던 아련한 기억이 있다.
오래 전에 TV광고에서 탤런트 신구가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속으로 그랬다. 나도 게맛 좀 안다고. 

이렇게 식성도 유전되나보다. 아버지가 콩밥을 싫어하셨는데, 나 역시 콩밥을 싫어해 어머니께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보니 작은애가 밥에 있는 콩을 골라내고 있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딸의 영양을 생각 해 콩밥을 먹이고 싶었던 내가 콩을 먹으라며 강요하면, 작은애는 어렸을 적 밥공기 한구석에 콩을 모아 남겨서는 맨 마지막에 약을 먹듯이 인상을 쓰며 우격다짐으로 먹는 보습을 보며 혼자 많이 웃기도 하였다.

며칠 전 큰애가 강원도 바닷가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기특하게 엄마인 내가 게를 좋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얼음 담긴 스치로폼박스에 살아있는 홍게 4마리를 사들고 들어왔다.
4마리를 곰솥에 쪄서는 저녁상에 올렸는데, 온 식구들이 다 먹어도 2마리만 먹을 수 있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게살을 발라 먹는 일이 귀찮고, 노동에 비해 입에 들어오는 것이 별로 없다며 게를 좋아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온가족이 홍게 2마리로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 나머지 2마리는 자의 반 타의 반 식구들이 먹기를 포기하여 오롯이 내차지가 되었다. 게 2마리를 혼자 발라 먹으려니 맛은 있었지만 게살을 발라 먹는 일이 힘들기는 했다. 그래도 워낙 게맛을 알기에 꿋꿋하게 게살을 발라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자니, 아버지와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아들자식만 셋을 연달아 둔 아버지께서는 막내 오빠와 나와의 터울을 9살로 막내인 나를 딸로 얻고서는 요즘 말로 '딸 바보'가 되셨다. 내 생각에는 아버지와 닮은 식성인 이유가 아마도 어렸을 적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가 밥숟갈 위에 발라 주시던 생선이나 게살 또는 고기 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에서 인 것 같다. 

식성 뿐 만 아니라 문득문득 아버지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러다보니 물려받지 말아야 할 고혈압 유전자도 받아, 의사에게서 가족력이 있으니 남들보다 더 조심하라는 권고를 받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집안의 많은 어른들이 나를 보며 말씀 하셨다. "네 아버지는 막내딸이 눈에 밟혀 어떻게 눈을 감으셨냐? 그리도 눈에 넣기도 아깝다고 하시더니 쯧쯧" 하시며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셨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아버지 얼굴이 또렷이 기억나지 않고 아련하기만 하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이제는 아버지의 얼굴이 아닌 지금의 남편또래의 그저 중년의 아저씨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어제 저녁 늦게 큰 오빠에게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는 7월 15일에 자신의 칠순잔치를 한다는 것이다.
큰오빠는 약사인 조카가 멋있는 곳에서 칠순잔치를 해 준다는 딸 자랑과 함께,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요즘 들어 많이 난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육순 칠순 팔순을 다 챙겨 찬치를 하였건만, 아버지는 육순도 못 넘기고 돌아가셔 마음속에 한이 된 모양이다.

혼자 게 2마리를 살을 발라 먹고 있자니, 밥상머리에서 내 숟갈위에 게살을 발라 당신의 입에 넣는 것보다 더 흐뭇한 얼굴로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을 즐겨보시던 아버지의 그 큰 사랑이 가슴에 사무친다.
아버지가 지금 살아 계신다면 꼭 한번 해드리고 싶은 일이 있다. 아버지 수저위에 당신 좋아하던 생선살을 발라 입에 들어가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은데, 못난 자식은 받기만 하고 갚을 길 없는 아버지의 사랑에 홀로 가슴앓이를 한다.
다음 달에는 마지막으로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얼굴보다, 더 늙어버린 큰오빠의 칠순잔치에 아버지를 많이 닮은 내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큰오빠의 막내 동생노릇을 해야겠다. 아버지가 그립기는 오빠나 나나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아버지, 꽃게, 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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