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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 고희연을 꼭 해야 할까요?
2017-07-18 16:09:05최종 업데이트 : 2017-07-18 16:09:05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요즘에는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가족이 아니고서는 우리나이 61세에 하는 회갑연에 초대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진 듯하다.
지난해 시아주버님의 회갑연을, 가족들만 모여 조촐하게 식당을 빌려 했는데 그 때도 친형제들의 가족들만 참석하였다. 이제는 회갑연보다는 고희연을 많이 하는 듯하다. 

지난 달 친정 큰오빠가 '고희연'을 7월15일에 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당연히 참석할 것이었는데 날짜가 다가오자, 오빠는 굳이 친필의 초대장을 또 다시 보내왔다. 요즘 웬만한 잔치 초대장은 모두 스마트폰으로 받는 터라 생소하면서도 "역시 큰오빠답네"하며 문학청년이었던 멋진 젊은 시절의 큰오빠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큰오빠는 여자들의 눈물깨나 흘리게 한 것 같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탓도 있지만, 돈을 잘 쓰고 다녔고 항시 문학책을 끼고 다니며 여심을 홀린 것 같다.
큰오빠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나는 꼬꼬마 코흘리개였는데,  큰오빠를 혼자 좋아하던 여자들이 내게라도 잘 보이려고, 겨울 목도리며 장갑이며를 직접 한땀 한땀 정성스레 바늘로 떠서 예쁘게 포장해 선물한 적이 많았다. 

그런 큰오빠가 벌써 칠순이라니, 나도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긴 나이다. 아마도 큰오빠는 내가 참석을 할 것이라는 것은 확신 하지만, 별도의 초대의 말을 꼭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꼭 초대하고픈 사람들에게 우체국으로 달려가 인쇄 된 초대장에 주소를 적어가며, 일일이 우체통에 넣으며 옛날을 회상 하셨을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오랜만에 우편으로 받아보는 큰오빠의 초대장
오랜만에 우편으로 받아보는 큰오빠의 초대장

초대장에는 '시리고 피곤했던 인생여정을 가까스로 통과하고, 살아오다보니 어느덧 끝자락 황혼이 됐네요. 유수(流水)와 같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라더니...실감하네요. 황혼인생 노인의 계급장 고희를 신고하는 차례의 날을 기다리면서 착잡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잘 살아왔던가?...) 문득 주마등 같이 스쳐가는 그리운 인연들, 얼굴 면 면을 떠올려 보기도 했지요.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암울했던 시절, 인생길 고비 고비에서 행운으로 조우했고 함께했던 희망의 등대(불빛) 같았던 존재! 소중한 인연들 말입니다. 구원의 오아시스 같은 그 고마운 인연들과 반갑게 해우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소망을 갖게 됐지요. 내일을 알 수 없는 황혼이기에 더 늦기 전에 말이지요. (이하 중략)'
초대장을 읽어가며 큰오빠의 그 인생고비에 나도 있었음을 새삼 느꼈다. 가슴이 뭉클해져 다시 초대장을 접어 고이 봉투에 집어넣었다. 

지난 주말 토요일 큰오빠의 고희연이 열리는 날에는, 세찬 비가 간간히 내렸다. 수원에서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서울 노원구의 고희연이 열리는 장소를 가는 도중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남편이 말한다. "백세시대인데, 고희연을 꼭 해야 해? 칠십이면 한참 나이인데... 나는 칠순이 되면 당신하고 해외여행이나 갈테니 잔치는 하지마" 하며 김칫국을 마신다.
나는 "잔치는 자식들이 저 좋으라고 하는 것이야. 나중에 한 되지 않으려고요.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셔" 하며 핀잔을 주었다. 그날 오전 일찍 다른 볼일을 보느라 어디를 다녀온 후, 쉬지도 못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으니 피곤이 몰려왔는지 연신 하품을 해대며, 서울시 노원구까지 한 걸음에 달려갔다.

홀로 살아계시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친정 식구들은 무슨 행사가 있어야 다 볼 수 있는 것 같다. 세 오빠들은 물론 여러 조카들 내외와 그 조카들의 자식들까지 모두 한 번에 볼 수 있었고, 그 녀석들에게 나는 "젊은 고모할머니"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 중 제일 큰조카가 마흔을 넘었으니, 이제는 고모와 조카가 함께 늙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기특하게 "고모는 늙지도 않으시네요" 하며 립 서비스까지 할 줄 아는, 중견 사회인으로 집에서는 가장으로 잘살아가는 조카들이 한결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고희연 꼭 해야 하는 것이야?"라고 했던 남편도, 내 친정에서는 막내이기에 연신 세 오빠들에게 굽실거리며 술잔을 따르고, "형님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십시요"하며 군기가 들어갔다. 내가 막내여서 덩달아 막내취급을 받지만, 좋은 점은 비교할 제부가 없으니 연신 잘한다며 칭찬만 듣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3시간가량 진행된 큰오빠의 고희연에는 어렸을 적 친구부터 먼 친척들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그래도 오빠가 허투루 살지는 않았다는 반증인 듯싶다. 

막내오빠의 축가에 맞춰 큰오빠는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하신다
막내오빠의 축가에 맞춰 큰오빠는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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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연은 자식들의 잔치인것 같다
고희연은 자식들의 잔치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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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희연이 기억난다
20년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희연이 기억난다

행사를 마칠 때쯤 오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꼭 이십년 전에 어머니 고희연을 우리가 열어드렸더구나. 그때 어머니는 극구 사양하셨는데, 우리가 우겨서 잔치를 했지. 이번에도 내 큰딸이 고희연을 열어준다기에, 그때 생각이 나더라. 지나고 보면 부모님 잔치는 자식들이 나중에 추억할 거리를 남겨주는 일인 것 같더라. 어머니가 떠나고 나니, 가능한 잔치를 하여 자식들에게도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여행도 좋지만 고희연을 열고 초대 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남편에게 오면서 쫑알거리던 말과 같은 소리를 하는지 놀라웠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 그래도 때마다 열어드린 잔치는, 그래도 가슴속에 자식으로서 잘한 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마도 백세시대에 굳이 고희연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식들 때문인 듯싶다. 해서 나도 나중에 자식들이 고희연 해 준다고 하면, 굳이 말릴 생각을 접어야겠다는 김칫국을 먼저 마신다.

백세시대, 고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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