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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관객을 넘었다는 영화를 아직도 안 봤어?"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진실이 있다
2017-08-28 08:40:25최종 업데이트 : 2017-08-28 08:39:17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내가 영화 관람을 즐긴다는 것은 나와 친한 친구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디서 공짜 영화표라도 생긴다면 아마도 친구들은 내게 한번쯤 갈 의향이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며칠 전에도 친구가 영화 공짜표가 생겼다며 같이 가서 보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요즘 본 영화와 보지 않은 영화를 얘기하니, 친구는 깜짝 놀라는 눈치다.
"아니 너처럼 영화 좋아하는 애가, 송강호와 유해진이 나오는 '택시 운전사'를 아직도 안 봤다고? 놀랍다 놀라워. 그것도 벌써 관람객이 천만명을 돌파했다는 영화를 ..."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볼 기회가 있었다. 제일 먼저는 가족들이 같이 보자는 권유를 하였지만 일부러 보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친구와 이웃들이 같이 보자는 것을 다른 영화를 보자고 우겨 그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나는 "그 동안 다른 영화에서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충분히 보아서 알고 있는 내용이고, 다큐멘터리로도 많이 제작되어 알고 있는 내용이니, 너무 뻔한 스토리 일거야"라며 일부러 그 영화를 안 보려고 노력했다.
친구의 권유로 결국 '택시운전사'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친구의 권유로 결국 '택시운전사'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은 친구의 손에 이끌려, 어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자막에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재구성하였다는 내용의 자막이 나와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는 1980년에는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대학입시를 위하여 공부하던 학생 신분으로, 서울에서 거주하였기에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그 당시에는 난 알지 못하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택시운전사 만섭 역할의 송강호가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을 향해, "부모들이 비싼 돈 들여 대학 보내 놨더니만 하는 짓하고는..." 하는 대사를 들으며 우리들 부모들이 그 당시 늘 상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에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툭하면 학생들이 데모를 많이 했고, 강의실에서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던 때도 있었다. 진정 민주화를 위한 데모도 있었고, 때로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데모도 있었으며,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저 데모진압 때문에 휴강이 되면 오히려 좋아했던 기억도 있다. 영화 장면 중에 송강호가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자 럭키치약을 코 밑에 바르는 모습을 보며, 그 당시 눈물 콧물 흘리던 최루탄 냄새를 떠올리기도 했다.

어려운 살림에 공부를 해야 했던 나는 부모의 바람대로, 데모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당장 장학금을 놓치면 한 한기 등록금이 걱정이던 시절에 최루탄 냄새나는 도서관에서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속에 부채로 남아있는 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4년 만에 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곳에 취업도 하여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1980년의 광주의 진실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그저 역사 속의 한 장면이라고 접어두고 있었다.
밀린 월세 10만원을 벌기위해 광주로 갔던 택시 운전사가 결국, 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 광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불편한 역사 속의 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나 역시 그 당시의 진실을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람 중의 한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가 온전한 실화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재구성 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영화 속의 광주는 너무나 처참했다. 영화 속 택시 운전사가 혼자만 살기위해 도망쳤다가, 결국 다시 광주로 돌아가 사실을 직시한다는 설정에 나 역시 안정적이고 편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그날들의 진실을 바로 알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1980년대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낙후됐었음을 실감한다. 지금처럼 디지털문명이 발달된 시기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하였을 일들이, 그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것이다. 전화가 통제되고 모든 언론이 왜곡되는 일들이, 비일비재로 일어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자식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불의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역시 불편해서 외면한 진실들을 하나씩 마음속의 부채로 쌓아 놓고 있다.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결국은 보게 되었고, 결국은 기억할 수밖에 없다면 조금이라도 진실을 제대로 알고,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기성세대로서의 책임감이 드는 시간이었다.

탹시운전사, 송강호, 유해진. 광주,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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