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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실파를 어찌 다 까셨을까?
2017-10-23 08:45:29최종 업데이트 : 2017-10-23 08:44:05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지난 번 추석 명절을 막둥이 시동생 집에서 지냈을 때, 87세의 시골 시어머니께서 파김치를 담아 오셨다. '어머니표 파김치'는 온 식구들이 좋아 하기에 6형제가 파김치를 조금씩 나누고 출가 한 조카들 식구들 까지 가세해 여덟 식구가 어머니께서 손수 만드신 파김치를 나누어 들고 집으로 돌아 왔다.

어머니의 휴대폰이 수명을 다해 새로이 개통을 하기위해 어머니를 수원으로 모시고 와서 당분간 같이 지냈는데, 그동안 어머니께서 담그신 파김치를 맛있게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보시고는 흡족해 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당부하셨다. "쟤는 파김치를 어렸을 적부터 좋아 했구나. 네가 힘들더라도 꼭 담아 먹어라"하셨다. 나는 "어머니, 제가 손맛이 나나요. 그래도 시장에서 파를 사다가 잘 담아 먹을게요" 했다.

어머니 폴더 폰을 장만해 드리고 며칠 전에 시골집에 모셔다 드렸다. 어머니는 스마트폰이 비싸다 생각하셨던지 굳이 요즘 잘나오지 않는 폴더폰을 고집하셔서 구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다보니, 답답하셨던지 며칠 전부터는 시골로 데려다 달라며 재촉 하셨다. 아마도 경로당 친구들이 궁금하신지 빨리 내려가시고 싶어 했다.

며칠 전 어머니를 시골집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서려는데, 어머니께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밭으로 향하신다. 아들이 맛있게 잘 먹던 파김치가 생각나신건지 파를 한 무더기 뽑아 오셨다. 대파는 손질해서 두고 먹으라 하시고, 쪽파보다 더 작은 실파는 잘 다듬어 파김치를 만들어 먹으라며 알타리무우와 함께 큰 봉투에 담아 주시기에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쪽파보다 가느다란 실파는 다듬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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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넘은 노모가 가꾼 채소는 채소 이상의 사랑이다

팔순 넘은 노모가 가꾼 채소는 채소 이상의 사랑이다

팔순이 훨씬 넘은 노모가 텃밭에서 자식들 주려고 기른 채소는, 채소 이상의 부모님의 사랑이 담겨있기에 오늘 맘먹고 파김치를 담으려고 실파를 손질했다. 쪽파보다 더 작은 실파는 다듬기가 너무 힘들었다. 양이 많지 않아도 실처럼 가늘어 까기가 힘들었고 한참을 앉아서 실파를 다듬고 있자니, 허리도 아프고 눈도 매워서 눈물이 났다.

지난 번 추석 때 어머니께서 직접 다듬어 담가오신 파김치 생각이 났다. 여덟 식구가 나누었기에 한 집 당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그 많은 양의 실파를 아들과 손자들 먹이느라 힘드신 줄도 모르고 까셨으리라. 내가 오늘 어머니께서 다듬으셨을 실파의 양보다 훨씬 적은 반의반도 안 되는 실파를 까고 있다 보니 새삼 어머니의 자식사랑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거지? 나도 나중에 자식 집에 가져다주려고 어머니처럼 흔쾌히 실파를 까고 있을까?' 생각하니 아무래도 어머니처럼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불교를 믿으셨고 시어머니는 기독교라, 나는 어느 종교든 거부감이 없다. 시어머니 눈에 교회를 다니지 않는 둘째 며느리가 못 마땅 할만도 하지만, 한 번도 종교를 강요하신적은 없기에 오히려 송구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요즘 부쩍 어머니께서 자식들을 위한 헌신적인 기도가, 자식들을 잘 지켜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는 아직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다니시기 때문이다.
종교를 떠나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들을 위해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파를 심고, 상추를 심고, 또 그것을 수확하여 자식들 입에 들어가게 다듬고 음식을 만들어, 당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행복한 마음으로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곁에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란다.

저녁에는 파김치를 다 담그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께서 주신 실파 다듬느라 힘들었는데, 저번에 어머니 혼자 그 많은 실파를 어찌 다 까셨어요?"하니 어머니는 "얘야 고맙구나. 그래도 힘들다고 내버리지 않고 담가먹어서..." 하신다. 아마도 어머니는 며느리가, 당신이 주신 파를 귀찮아 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신모양이다.
허리 굽은 어머니의 주름진 손으로 농사지은 것을 어찌 감히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저녁에는 어머니 손맛은 아니지만 내가 담은 파김치로 식구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전해야겠다. 실파 까느라 힘들었다고, 생색도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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