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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 유골, 현충원 국립묘지에 잠들다
2017-10-25 09:39:23최종 업데이트 : 2017-10-25 09:38:00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어제가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순국선열 큰아버지의 생신이셨다. 지난 번 대전 국립현충원에 이장하라는 국가로부터의 이장 허락서를 받아내고는 기다렸다가, 어제처럼 뜻 깊은 날을 잡아 이장하기 위하여 온가족이 큰아버지의 생신날을 기다렸다.

 

큰아버지는 결혼을 하지 않고 순국하셔서 자식이 없기에 조카들이 나서서 국립 현충원에 모셨다. 바로 어제 큰아버지의 생신 일을 맞아 대전 현충원에 이장을 하기 위해 시댁의 6형제와 시아버님의 형제 중 한분 남으신 시고모님께서 참석을 하셨다. 시고모님은 병중이신데도 큰오빠의 이장을 보기위해 현충원을 찾으셨다.

 

오전 10시에 안장을 위해 아침 일찍 큰아주버님께서 개장 신고필증과 유골함을 챙겨서 어머니를 모시고 현충원에 도착했고, 각지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들이 가능한 한 시간을 내어, 큰아버지를 편안하게 국가가 제공해 준 현충원에 모시기 위하여 부지런을 떨었다.

큰아버지 유골, 현충원 국립묘지에 잠들다

큰아버지 유골, 현충원 국립묘지에 잠들다



큰아버지 유골, 현충원 국립묘지에 잠들다

큰아버지 유골, 현충원 국립묘지에 잠들다

 

현충원은 계룡산 자락에 너무나 공기가 맑고 산세가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날씨까지 쾌청하여 온가족이 큰아버지를 추모하고 좋은 곳에 모실 수 있어 좋았다. 그동안 후손 없이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가족묘지에 계셨는데, 군인인 시동생의 신청으로 대전 현충원의 양지 바른 곳에 안치 되는 큰일을, 조카들인 남편의 형제들이 나서서 큰아버지의 유골을 양지 바른 현충원에 모시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이제는 한분 밖에 살아 계시지 않는 막내둥이 시누이인 시고모님과 그동안 쌓인 회한의 눈물을 흘리셨다. 시고모님은 어렸을 적 다정했던 큰오빠를 기억했고, 시어머니는 얼굴도 모르는 시아주버님을 대신하여 집안의 맏며느리 노릇을 해야 했던 고단한 삶을 말씀하시며 눈시울을 적셨다.

 
아버지 형제 중 한분 남으신 시고모님이, 오빠의 유골을 현충원에 묻으며 눈시울을 적신다

아버지 형제 중 한분 남으신 시고모님이, 오빠의 유골을 현충원에 묻으며 눈시울을 적신다


 

아침 일찍 서둘렀기에 현충원에 큰아버님을 안장하고 추도예배까지 마치고 나서야 근처에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모처럼 나들이에 어머니는 무릎이 아프다고 하셔서 아주버님이 모시고 시골로 향했고, 우리는 시고모님을 모시고 와서 수원역에 내려드렸다.

시고모님은 얼마 전에 고모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서울에서 외롭게 살고 계신다. 남편을 조카들 중에 제일 예뻐하셨기에 굳이 서울에 사는 큰조카 차를 타지 않고, 못 다한 얘기를 나누고 싶으셨던지 우리 차에 타시고는 수원의 아무 전철역이나 내려 달라시며 무작정 수원행을 택하신다.

 

남편과 시고모님의 차속에서 하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옛날 고모님이 잘 나가던 시절의 이야기와 외국에서 살고 있는 시고모님의 자식들 이야기를 하셨다. 자식들 잘 키워 봤자 늙어서 외롭다는 말씀을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는 것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남편은 대학교 입학으로 서울에 와서 고모님 댁에서 잠시 신세졌던 이야기를 두고두고 했던 터라, 나 역시 시고모님께 항상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집에 잠시 들러 쉬고 가시라는 말도 뿌리치고 전철역에서 내려주면 알아서 전철타고 가시겠노라 하는 통에 할 수 없이 전철역에서 시고모님을 내려드렸다. 남편은 지갑에서 급히 가진 현금을 추려 시고모님의 주머니에 찔러 드리며, "고모! 맛있는 것 잘 챙겨 드시고 많이 편찮으시면 꼭 제게라도 연락하셔요. 조카도 자식입니다!" 한다.

저번에 고모부님 돌아가셨을 때 미국에서 들어오지 않은 고모님의 자식들을 두고, 괘심해 하던 남편이었기에 그 속뜻을 알 것도 같았다.

 

연신 고맙다고 하시며, 총총 걸음으로 돌아서시는 고모님의 연로한 모습을 보며, 남편은 집으로 오는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식이 없는 큰아버지를 현충원에 안장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식들을 잘 키워 외국에 보낸 고모님의 외로운 노후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한 모양이었다.

날 좋은날 큰아버지 생신에, 큰아버지는 앞으로 국가의 보살핌을 받기 위해 현충원에 모셨는데, 마지막 남은 아버지 형제인 고모가 노쇠한 것을 보니 또 마음이 아픈 지 저녁에 고모님께 서울에 올라와 신세졌던 얘기를 내게 또 하며, 앞으로 고모님을 자주 찾아뵈어야겠다는 말을 한다.

건강하게 늙어가는 것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혼잣말처럼 하며, 모쪼록 우리도 건강을 챙기자는 말로, 그래도 큰아버지를 좋은 곳에 모시고 온 것으로 아버지를 대신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현충원, 국립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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