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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자식은 보험이 아니라지요
2017-12-05 18:15:31최종 업데이트 : 2017-12-05 19:11:46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내가 어렸을 때는 남아선호사상이 아주 강했다. 아들은 부모를 부양할 의무를 가졌고, 특히 맏아들은 부모의 보험이라는 생각이 강해 집집마다, 딸들보다도 아들 그리고 큰아들을 더 많이 교육시켜 노후를 대비한다는 부모가 많았다.

다행히 나는 딸이 귀한 집안에 태어나는 통에 남녀 차별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아들을 3명이나 둔 우리 친정 엄마는 친구들에게 무언의 과시를 하시곤 하였는데 그 시절에는 당연한 유세였다. 내 기억으로 딸만 둔 어머니 친구는 항시 나의 오빠들을 보면서 어머니를 부러워하였고, 그러면 어머니는 "얘, 아들 둔 부모는 인력거 끌고 딸 둔 부모는 비행기 탄 다더라" 하며 영혼 없는 입에 발린 위로를 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고생하며 자식들을 키웠지만 친정어머니는 결국 비행기 한번을 타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고, 두고두고 나의 한이 되어 남아있다. 그토록 딸이 있어야 비행기 탄다고 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일 후회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비행기를 많이 태워드렸다.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 아들 며느리들이 돈을 모았기에 따지고 보면, 결국 비행기는 아들들이 태워준 셈이다. 나의 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친구를 위로하는 말은 결국 틀린 말이 되었다. 비행기는 아들과 딸, 상관없이 효자들이 태워주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어제 저녁에 갑자기 큰애가 뜬금없이 묻는다. "엄마! 아빠와 엄마 노후보험이랑 건강보험 다 들고 계시죠?" 나는 "왜?"하고 물었다.
직장에서 선배 부모님 중 아버지가 큰 병에 걸리셨는데, 어머니가 워낙 보험을 싫어하셔서 보험을 하나도 들지 않아 경제적으로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서 "엄마 아빠야 너희들이 있는데, 무슨 보험이 필요해? 우리가 아프면 너희들이 다 고쳐줄 텐데..."했다. 순간 큰애의 표정이 난감하다 못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엄마, 요즘 보험은 필수예요"한다.

사실 왜 우리라고 보험이 없겠는가? 마음 약한 남편 덕에 남편 아는 사람들에게 든 보험만 해도 몇 개가 되고, 해약하면 손해여서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보험을 20년째 붓고 있는 것도 있어 아까운 생각이 들 지경이다.
나는 매달 25일이면 통장에서 보험료가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한번이라도 타 봤으면 아깝지가 않겠는 걸"하면, 남편은 "그만큼 우리가 건강하게 잘 살았다는 증거고, 그래도 앞으로 큰 불행이 있어도 안심은 되잖아?"하며 맞장구를 친다. 나는 속으로  '그렇기는 한데...'하며 마지못해 수긍을 한다.
매달 통장에서나가는 보험료가 아깝긴해도, 자식보다 더 든든하긴하다

매달 통장에서나가는 보험료가 아깝긴해도, 자식보다 더 든든하긴하다

요즘세상은 자식들에게 부양을 받아야 한다는 부모는 줄어들고, 스스로의 노후나 건강을 위해 보험이나 저축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부모들이 더 잘 아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최소한 부모로서 지원해 줄 것을 제외하고, 이제는 우리 부부의 노후를 걱정한다. 우리 부부 중 누구도 자식이 보험이 된다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 전이다.
그래서 연금 저축도 들고, 어느 정도는 자식들에게 부모에게 더 이상 기대지 못하게 선을 긋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결혼만 시키면 부모할 도리는 끝이라며, 우리는 우리의 노후를 스스로 걱정한다.

친정어머니는 생전에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지, 비빌 언덕이 없는데 어찌 손을 내밀겠느냐?" 하시며 자식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극도로 싫어 하셨다. 늦게까지 장사를 하며 노후를 스스로 책임지고, 결국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에게 보탬이 되다 돌아가셨다. 어머니 영전에 펑펑 울며 "나는 절대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했는데 나 역시 자식에게 짐이 되는 부모는 되기가 싫다.

이제 큰애는 사회에 나가 경제생활을 해 보니, 보험의 필요성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보험을 들지 않은 부모라면, 혹시 찾아올 불행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어깨가 무겁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엄마 아빠, 제가 부모님 건강보험 하나씩 들어 드릴게요. 저도 하나 들고요"한다. 나는 출근하는 큰애의 뒤통수에다 대고 큰소리로 말한다. "걱정 말아라. 우리는 우리가 잘 준비 할 터이니. 이제 자식인 너희가 더 이상 우리의 보험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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