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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장?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2017-12-17 12:51:50최종 업데이트 : 2017-12-17 12:49:59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학창시절이 언제였는지 까맣게 잊고 살다가,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번쯤 '그래,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더러 있다.

며칠 전이었다. 간간히 몇 년마다 참석하는 대학동기 모임 회장이 어김없이 연말동창회 모임에 참석하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아마도 동창회원들에게 단체문자를 보냈겠지만 항상 그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 친구가 나서서 우리의 만남을 주선하지 않았다면, 간간이 만나는 일이 중단되었을 지도 모른다. 오래전 친구의 초대로 밴드에 가입해 놓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하던 동창들 밴드에 오늘 들어가 보니 동창회장이 장문의 연말모임 초대장을 올려놓았다.

친구의 긴 글에 가슴이 뭉클하면서 20대 초반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그 중 마음에 와 닿는 문구를 옮겨본다 "우리들 모두 키 작은 나무 한그루씩 가진 사람들이었음 좋겠습니다. 괴롭던 이야기도, 눈물 흘리던 기억도 혼자만의 슬픔이 있어도, 너만은 알고 있는 작은 나무 하나, 언제든지 이야기 하고 울고 웃으며 위로 받을 수 있는 존재, 친구가 그러한 것이 아닐까요? 내 작은 하루에 소리 없이 물을 주고 가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에게 저마다의 키 작은 나무가 되길 빌어봅니다. 토요일에 만납시다!(하략 )"

어딜 가나 무슨 모임이든 나서서 봉사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모임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가 힘들다. 그런 이유로 본인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동창회장직을 30년 이상 유지하는 것은, 참 장하고 칭찬받을 일이다. 그래서 해마다 연말이 되면 유독 동창회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기억으로 우리 학과 입학동기가 52명이었는데 지금 밴드에 가입되어 있는 인원을 확인해 보니 37명이다. 몇 명은 연락두절이고, 몇 명은 이민가서 외국에 살고 있다고 하니 이만하면 그래도 동창회장 덕에 서로의 안부를 알고 서로의 경조사에도 참석할 수 있는 일이다.
작은애가 촌스럽다고 놀리는 사진이 내게는 정겹다

작은애가 촌스럽다고 놀리는 사진이 내게는 정겹다

모처럼의 밴드에 안부 인사를 남겼더니, 며칠간 많은 친구들이 반갑다는 안부 인사를 보낸다. 더러는 멤버간의 쪽지로 보고 싶다는 글을 남기는 친구도 있었다.
어제는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왔다. 저쪽에서 "효숙이니? 나, ○○인데 기억나니?" 동창회에서 한 십년 전에 만났던 친구인데, 그 이후에 미국에 가서 살다가 몇 년 전부터 수원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연말이 되면 다시 미국LA로 이민을 떠나게 되어, 출국을 하니 이번에 꼭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한다. 친구는 알고 보니 내가 사는 옆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렇게 지척에 살고 있었는데 몰랐구나! 이번에 꼭 얼굴보고 출국하고, 나도 놀러가게 되면 연락하마. LA에 다른 친구들도 몇 명 산다고 하더라" 하며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20대의 나를 만난 것처럼 행복했다

나의 전화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작은 애가 한마디 거든다. "엄마, 아무리 동창이라도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는데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반말이 바로 나와요?" 한다. 나는 "그럼, 그래서 친구라는 거야. 오랜만에 동창회를 나가도 조금 어색했다가도 금방 그때 그 시절로 돌아 갈수가 있는 거야. 엄마도 너희처럼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살다가도 한번씩 동창들을 보면 그 시절이 기억나곤 해"
나는 작은 애에게 밴드에 친구들이 올려놓은 나의 촌스러운 20대 사진을 보여주니, " 엄마! 이렇게 촌스러웠어요? 화장도 하나도 안하고, 다들 왜 이리 시커멓대?"하고 놀린다. 나는 그래도 히죽 웃으며 속으로 말한다. '그래도 그 때가 엄마의 화양연화(花樣年華:꽃같이 아름답고 빛나던 시절, 전성기)아니었을까?'

이래저래 올 동창회는 꼭 참석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친구 한명을 영원히 한국에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에. 아울러 우리의 리즈시절을 잊지 않게끔 끈을 연결해 주는 동창회장에게 올해가 가기 전에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동창회장? 그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니라니까"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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