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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에 할 일이 그렇게 없어?”
2017-12-25 11:06:30최종 업데이트 : 2017-12-29 17:51:04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어제부터 황금연휴다. 이제 이 연휴가 지나면 2017년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는다. 아쉽기도 하고 2017년이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또 새로운 황금개띠해라는 2018년 무술년이 기대 되기도 한다.
어제는 식구들 중에 나만 혼자 나가서 일을 했다. 오후가 되자 빨리 들어오라고 가족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춥기도 하고 연휴이기도 해서 가족과 함께 하려고 일찍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와 보니 남편이 또 오랜만에 동기들 모임을 평촌에서 한다고 연락이 와서, 잠깐 나갔다고 온다더니 함흥차사다. 큰애는 일찌감치 케이크와 와인을 사다놓고 미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해야 한다며 외출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우리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들어오셔요!"하며 애교를 부린다.
남편은 딸의 애교가 싫지는 않았던지 모임을 일찍 마치고, 대리를 불러 들어오는 중이라며 술 취한 목소리로 딸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딸아. 아빠 지금 부리나케 가는 중이야. 허허" 하며 모처럼 딸이 애타게 찾는다는 말에 속없이 너무 좋아라 한다.

미리 한 크리스마스 파티

미리 한 크리스마스 파티


사실 이렇게 애들이 엄마 아빠를 애타게 찾았던 이유는 따로 있다. 큰애는 몇 달 전부터 자신이 보고 싶은 뮤지컬을 크리스마스이브에 보겠다고 미리 내게 이야기했고, 작은애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를 크리스마스이브에 보겠다고 미리 예매를 해 두었다는 말을 내게 귀띔해 주었다. 그런 꿍꿍이가 있기에 그 애들이 굳이 어젯밤에 온가족이 모이기를 학수고대 한 것이 오늘 자신들의 외출을 합리화하기 위함이고, 결코 우리 부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만 몰랐던 것이다.

어제 저녁 우여곡절 끝에 온가족이 당겨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였다. 뭐 크리스마스 파티라기보다는 온가족이 케이크 촛불에 불을 붙이고 새해 소원을 말하는 형식으로, 조촐하게 한해를 정리하는 시간과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연말에 즈음하여 가졌다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남편은 친구들과의 취기에 더해서 딸들의 권주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했다.

오늘 아침이 되니 약속이나 한 듯, 두 애가 같이 일어나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나는 괜히 심통이 나서 "흥, 이제는 다 컸다고 크리스마스이브를 부모와 안 보내려고 미리 미리 작전들을 잘 세웠구나! 언제 들어 올 거야! 몇 시까지?"하면서 입을 삐죽거렸다.
작은애는 곧 시험발표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철없이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를 보러 간다는 것이 조금 미안한 듯 작은 목소리로, "엄마! 저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아마 끝나는 시간이 11시쯤 되어, 아무리 빨리 온다 해도 밤 12시는 돼야 할 것 같아요. 엄마 미안해요" 한다. 아무래도 예민한 수험생이라 나는 "끝나고 전화 하렴"하며 억지로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큰애는 작은애 보다는 더 당당하다. "엄마, 이제는 우리와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낼 생각을 하지 마셔요!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에 할 일이 없어요? 그러면 요즘 엄마 아빠 같이 영화 보는 것도 뜸하셨는데, 다정하게 두 분이 영화나 보시지요? 저도 뮤지컬이 늦게 끝나니, 시골인 수원까지 많이 걸려 늦어요!"한다.
나는 대뜸 "흥! 지들은 비싼 콘서트에 뮤지컬 보러 가면서 우리는 영화나 보라구?"하며 반박하니, 큰애는 "엄마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다음에는 제가 꼭 뮤지컬 보여드릴게요. 사랑해요!" 하며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입에 발린 애교로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올게요. 두 분 꼭 영화나 한편 보고 오셔요" 하며 요즘 핫한 영화까지 추천해 주며,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집을 나선다.

둘다 외출을 하자 나는 할 수 없이, 내가 자주 가는 영화관 홈페이지를 접속하여 볼만한 영화를 검색했다. 나처럼 크리스마스이브에 영화를 보려는 사람이 많은지, 내가 보려고 하는 영화마다 벌써 매진된 영화관이 많았다. 겨우 초저녁 시간에 좌석이 몇 개 남아 있어 검색해 보면, 맨 앞좌석이거나 장애인석, 또는 띄엄띄엄 한 좌석씩 떨어져 있는 좌석들 뿐이다. 영화보기를 포기할까 하다가 그래도 부부가 덩그러니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에만 있기 싫어, 남편에게 떨어진 좌석이라도 예매를 할지 물었다.
남편은 어제 저녁 자식들이 애타게 찾아서 행복해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심드렁하게 "뭐 혼자씩 영화 보러 간 사람들처럼 떨어져 앉아 영화를 봐? 조금 늦더라도 나란히 앉아서 볼 좌석을 예매해야지"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간신히 영화를 예매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간신히 영화를 예매했다


우리는 마치 자식들에게 소박맞은 것처럼 두 부부가 처량하게 나란히 앉아서 영화라도 보겠다는 의지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결과, 오늘 밤 9시 30분에 겨우 2좌석을 구해서 결국 보고 싶은 영화 예매를 마쳤다.
그러면서 이제 앞으로는 더욱 더 우리끼리 보내야 할 시간들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얼마 전, 동창회에 갔을 때 친구들이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이제는 자식 놈들은 죄다 남이다 하고 살아야지, 끝까지 마음속에 끼고 있으려면 우리만 상처 받는다" 하던 말이 생각난다. 정말 맞는 말이다. 모처럼의 남편과 영화관 나들이인데, 오늘은 남편과 근사한 광교호수공원에서 저녁식사도 하고, 앞으로 많이 있을 우리끼리의 여유시간을 잘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할 듯하다.

크리스마스, 박효숙, 황금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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