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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희비애락'을 디지털 영상으로 전시하는 수원박물관
7월 28일까지, 조선왕실의 특별한 의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
2024-05-27 14:36:37최종 업데이트 : 2024-05-27 14:36:34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조선 왕실의'희비애락'을 디지털 전시하는 수원화성박물관

조선 왕실의 '희비애락'을 디지털 영상으로 전시하는 수원화성 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이 1층 기획전시실에서 조선 왕실의 희비애락을 디지털 영상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는 국가유산청 및 국가유산진흥원과 함께 하는 「국가유산 디지털전시」의 일환으로 열리는 '조선의 희비애락, 한 눈에 보다' 전시회 현장이다. 

오는 7월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조선왕실의 '희비애락(喜悲愛樂)'이 담긴 의궤(儀軌)를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조선시대 왕실의 국조오례 중 가례, 길례, 흉례 등 삼례를 디지털 영상과 수원화성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의궤의 가치

'의궤'는 의식의 궤범(軌範)이라는 뜻으로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행사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해둔 책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조선왕조에서만 발달한 고유의 기록 문화이자 문헌 편찬 방식으로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왕실 여성의 탄신잔치 기록 진찬 의궤

왕실 주요 인물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펼쳐진 축하 잔치를 진찬연이라고 한다. 이중 왕실 여성의 잔치를 그림과 글로 자세히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무신진찬의궤, 신축진찬의궤 등 진찬의궤도 다수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정조19 을묘) 혜경궁 회갑잔치를 기록한의궤)
기존의 의궤들과 달리 금속활자로 인쇄된 '원행을묘정리의궤'는 한층 정비된 의궤 체제와 풍부한 내용으로 인해 '화성성역의궤'와 함께 조선시대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는 수준 높은 책이다. '화성성역의궤' 뿐만 아니라 진찬, 진연의궤 등 왕실잔치와 관련된 의궤 간행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무용, 국악, 복식, 음식 등 여러 분야의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의궤이다.

무신진찬의궤(1848년(헌종14 무신)순원왕후 육순잔치를 기록한 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영향을 받은 책으로 헌종때 순원왕후와 신정왕후 등 왕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왕실잔치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기록한 책이다. 오례(五禮) 중 가례(嘉禮)에 해당하는 왕실잔치의 디지털 영상은 이 의궤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신축진찬의궤, (1901년(광무5 신축)효정왕후 71세 탄신잔치를 기록한 의궤)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를 위한 왕실잔치를 기록한 책이다. 권수 책을 따로 두어 택일, 좌목 및 도식을 수록하는 방식은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체계를 따랐다. 대한제국시기 왕실잔치와 관련된연구에 중요한 책이다. 
 

왕실 여성의 탄신잔치 기록 의궤

왕실 여성의 탄신잔치, 기록의궤


가례(嘉禮): 조선왕실의 기쁨
가례는 경사스러운 의례를 뜻하는 것으로 왕실의 혼례나 국왕의 즉위나 세자 책봉, 존숭(尊崇), 연향(宴饗) 등을 백성들과 더불어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의례를 말한다.


가례; 연향 디지털 콘텐츠 한 장면

가례; 연향 디지털 콘텐츠 한 장면


수원에서 펼쳐진 왕실의 잔치 봉수당 진찬연

1789년(정조13년) 정조는 경기도 매봉산에 묻힌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 화성으로 이장하고 현륭원이라 이름 지었으며 매년 참배했다. 때마침 1795년은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년이자 아버지 사도세자가 살아있다면 회갑을 맞이하는 해였다. 그래서 정조는 윤 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의 일정으로 수원에 행차하여 혜경궁의 회갑잔치를 비롯해 대규모의 행사를 추진했다.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펼쳐진 혜경궁의 회갑잔치는 도성을 벗어난 최초의 왕실잔치였다.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펼쳐진 혜경궁의 회갑잔치 장면을 묘사한 기록화다.

봉수당진찬도; 봉수당에서 펼쳐진 혜경궁의 회갑잔치 장면을 묘사한 기록화다

 

길례(吉禮): 나라의 근본
길례는 제사와 관련된 의례로 의례중 가장 중요한 의례로 여겼다. 조선왕실에서는 하늘과 땅의 신 그리고 조상에 대한 제사를 올림으로서 유교의 근본 이념을 강조하고자 했다.

                    종묘제례 디지털 콘텐츠 한 장면

길례: 종묘제례 디지털 콘텐츠 한 장면

                                           

흉례(凶禮): 왕실의 장례
흉례는 왕실의 장례와 관련된 의례인데 이는 죽은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과정이라 매우 중요한 절차로 여겼다. 특히 국왕의 장례는 조선의 국왕이 바뀌는 정치적 중요한 사건이어서 국왕의 발인은 최대규모의 행열로 행해졌다.

 창경궁에서 왕의 발인을 디지털 콘텐츠 한 장면

흉례; 국왕의 발인을 디지털 콘텐츠 한 장면


수원에 조성된 정조대왕 건릉

정조는 1752년 (영조28)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나 왕 세손으로 책봉된 후 왕위 계승을 위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인해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이어 즉위하였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사도세자 명예 회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왕권을 강화시켜 나갔다.

 

학자군주, 탕평군주로 불리던 정조는 정치적 안정과 문화 발전을 통해 조선의 중흥을 이루었고 1800년 (정조24) 49세로 생을 마감했다. 국장도감이 설치되고 생전에 스스로 정한 현륭원(건릉)권역에 안장 되었다. 현륭원은 천하명당 수원 화산에 조성된 사도세자의 무덤 옆으로 정조는 아버지 옆에 잠들었다. 
 

융건릉 정조의 묘

융건릉 정조의 묘


디지털 영상관에서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재 된 종묘대제를 대형 디지털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종묘대제는 조선의 역대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제례 의식이다.


1392년 건국한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유교 사회의 핵심 이념은 충(忠)과 효(孝), 예(禮)와 악(樂)이었다. 종묘는 국왕이 조상을 섬기는 모습을 통해 효의 실천을 만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종묘대제는 신을 맞아하는 절차와 신을 즐기는 절차, 신이 베푸는 절차, 신을 보내는 절차 네가지로 나누어 진행한다. 신을 맞히는 절치로 제관들이 정해진 자리에 취위가 진행되고 신을 부르는 의식인 신관례를 마친 후 신이 즐기는 절차와 천 조례(제수를 올리는 의식)를 마치면 제관들이 헌례를 한다.

 

초헌례(初獻禮, 첫술잔을 올리는 의식) 아헌례(亞獻禮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종헌례(終獻禮,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를 거쳐 신이 베푸는 절차인 음복례(飮福禮, 제례에 쓰인 술과제물을 먹고 신이 주신 복을 받는다는 의식)와 송신례(送神禮, 신을 보내는 의식) 후 마지막 절차인 망료례(忘了禮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우는 의식)를 끝으로 제례는 모두 마친다.
 

신에게 초헌례를 올리는 제관

종묘대제; 제관이 초헌례를하는 디지털 콘텐츠 한장면


종묘대제는 제례와 제례악(祭禮樂)과 선왕의 문덕(文德)과 무덕(武德)을 찬양하는 일무(佾舞)는 국왕의 문덕을 찬양하는 보태평((保太平)에는 예악(禮樂)을 의미하는 약(籥)과 적(翟) 들고 춤을추며 무덕을 찬양하는 정대엽(定大業)에는 검이나 창을 들고 춤을 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왕실의 '희비애락'이 담긴 왕실의 길례, 가례, 흉례 등 왕실 의례의 특별함을 볼 수 있었다.


[조선의 희비애락, 한 눈에 보다](자세히보기)

○ 일 시: 2024. 5. 23.~7. 28.

○ 시 간: 09:00 ~ 18:00 (월요일 휴관)

○ 장 소: 수원화성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조선의 희비애락

'조선의 희비애락, 한 눈에 보다' 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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