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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 이종학 선생이 누구신가요?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이동근 학예사에게 자세한 해설 들어
2024-07-05 10:00:07최종 업데이트 : 2024-07-05 10:00:04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광교박물관, 사운 이종학 선생에 대해 설명하는 이동근 학예사

사운 이종학 선생에 대해 설명하는 이동근 수원광교박물관 학예사


(사)화성연구회의 7월 모니터링 활동은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사운 이종학 선생에 대해 알아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난 6월 모니터링 때, 한 회원이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 당시 심재덕 수원시장과 사운 이종학 선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는데, 오늘날 사운 이종학 선생이 우리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같고 수원광교박물관에 '사운 이종학'실이 있다는 사실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분을 기억하고 그분의 업적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제안해서 수원광교박물관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이동근 학예사는 회원들을 반갑게 맞이해주고 2층 복도에서 사진을 보면서 광교의 옛 마을을 해설해 주었다. 상전벽해처럼 변한 광교의 옛 마을을 보면서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특히나 수원사람으로서 '원천유원지'에 대한 추억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광교 옛 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광교 옛 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산의실'이란 제목이 붙은 사진을 보니 앞에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이 보이고 그 뒤에 마을과 느티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뒤 야산에는 심온 선생 묘가 보인다. 수원광교박물관 앞쪽에서 찍은 2007년 사진이다. 불과 17년 만에 광교신도시가 개발되고, 광교역사문화공원과 수원광교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그때 집과 논은 사라졌지만, 오늘날 느티나무는 제자리를 지키며 옛 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듯 서 있다. 

그 옆에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평화로운 원천유원지에서 관광객은 뱃놀이를 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군인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진이다. 보트 4척에 탄 군인들은 지휘관인듯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원천저수지 정화활동'이란 제목의 1990년대 사진이다. 

2007년 산의실 사진

2007년 산의실 사진


이동근 학예사는 광교의 옛 마을 이야기를 마치고 '사운 이종학'실 앞에서 이종학 선생에 대해 설명을 했다. 사운 이종학(1927-2002) 선생은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사료수집과 연구에 열정을 바친 분이다. 그는 역사 왜곡에 대한 일시적인 분노나 외침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역사적 사료로 대응하고자 평생 역사 사료를 수집했다. 

이종학 선생은 '역사 사료는 필요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활용되어야 한다'라는 소신을 실천해, 평생 수집한 유물을 관련 연구기관과 여러 박물관에 기증했다. 2004년 2만여 점의 유물을 수원시에 기증했다. 수원시에 기증한 유물은 수원박물관에서 전시하다가 수원광교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사운 이종학'실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원천저수지 정화활동'이란 제목의 1990년 사진

'원천저수지 정화활동'이란 제목의 1990년 사진


이종학 선생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해 고서 읽기를 좋아했고 1955년부터 직접 고서점을 운영하다가 1970년대 초 장서가 서인달 선생으로부터 이순신 관련 자료를 인수해 충무공 이순신을 만났다. 난중일기를 수백 번 읽고 백의종군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 역사에 눈을 떴다고 한다. 이순신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과 사료를 찾는 일을 하면서 우리 역사와 영토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00여 년 전 일제는 조선해(동해)를 일본해로 왜곡하고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키며 조선을 강제로 병합했다. 이종학 선생은 일본의 왜곡과 억지 주장에 맞서기 위해 과거 일본 스스로 만든 사료를 통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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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일본에서 목판으로 제작된 '신정지구만국방도'라는 세계지도에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가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다. 1844년 프랑스인이 만든 세계지도를 참고해 일본인이 제작한 '신제여지전도'에도 역시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인 스스로 조선해로 인식한 것이다. 

1905년 2월 22일 자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한다는 시마네현 지사명의 고시문은 신문이나 관보에 게재하는 원칙을 무시하면서 독도 편입을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자행한 것이다. 오늘날 일본은 파렴치하게도 스스로 불법적으로 만든 '시마네현 고시문'을 들먹이면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이는 우리의 영토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먼 훗날 자신의 영토로 만들고자 하는 야욕이 숨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100여 년 전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1844년 일본인이 제작한 세계지도에 동해가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다.

1844년 일본인이 제작한 세계지도에 동해가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다.


이종학 선생은 '명량대첩 장계 초록', 거북선 머리 구조 등을 밝힌 '해장집', '한일 병합 유공자 명단', ' 전봉준 법정 최후 진술이 담긴 일본 '산음신문', 일제의 한국강점 극비문서 '조선총독부 보고 한국병합시말' 등을 발굴하고 공개해 숨겨졌던 역사적 진실이 밝혀졌다. 

'수원성'이라 불리던 것을 본래의 명칭인 '화성'으로 바로잡았고 화성성역의궤 영인본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를 바탕으로 1997년 12월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 수원광교박물관에 방문해 사운 이종학 선생의 업적을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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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 이종학, 수원광교박물관, 화성연구회, 이동근,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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