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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수원박물관 전시 개막
안평대군, 한석봉 글씨 등 볼 수 있어
2024-08-14 16:35:04최종 업데이트 : 2024-08-14 16:35:02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박물관 전경

수원박물관 전경


수원박물관은 8월 14일부터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를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는 10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수원박물관은 조맹부 탄생 770주년을 기념해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고 한다. 조맹부의 송설체는 조선 왕실에서 오랫동안 사용하며 유행했고 변화를 거치면서 조선시대 서예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조맹부(1254-1322)는 송나라에서 태어나 원나라에서 활동한 인물로 시, 서 및 화에 탁월했으며 서성이라 불리는 왕희지와 함께 동양에서 존중받는 서예가이다. 조맹부 글씨는 고려말 충선왕 이후에 고려에 유입되었고 조선시대에 널리 확산되면서 당대 최고의 서체로 자리매김 하였다. 송설체란 조맹부의 호가 '송설재', '송설도인'에서 유래한 것이다.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고려말 충선왕은 원나라에 만권당을 세우고 조맹부 등 원나라의 석학을 초빙해 고전을 연구했는데 고려의 이제현(1287-1367), 이암(1297-1364) 등이 함께 공부하면서 조맹부의 송설체를 깊이 터득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고려의 사대부들이 송설체를 쓰게 되었다. 송설체는 법도에 맞으면서 유려한 아름다움이 있어 당대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균형을 이루는 글자의 형태, 단정하면서도 활달하고 율동적인 필세, 부드러우면서도 곡선을 강조한 유려한 필획, 글자와 글자 사이의 여유 있는 연결성 등이 송설체의 특징이다. 

이번 전시회는 1부 '조맹부 글씨, 서예 교과서가 되다', 2부 '원나라의 글씨, 고려에 알려지다', 3부 '송설체, 왕실의 아낌을 받다', 4부 '안평대군, 송설체 대가로 칭송받다', 5부 '송설체, 선비들이 즐겨 쓰다' 등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조맹부가 쓴 왕희지의 난정서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조맹부가 쓴 왕희지의 난정서


1부 전시에서는 조선의 왕들이 서예를 진흥시키고자 노력했던 흔적을 보여준다. 세조는 당대의 모범이 되는 법서를 간행하여 서예 수준을 높이고자 하였다. 당시 조선에서 간행한 법서는 왕희지의 '난정서', '동방삭화찬', 조맹부의 '빈풍칠원편', '증도가', '고세첩', '동서명', '적벽부', '진초천자문' 등이었다. 오랜 기간 왕희지의 글씨가 왕실의 규범 서체로 여겨졌는데, 이 당시에는 조맹부의 법서가 많이 간행된 것으로 봤을 때 조맹부의 송설체가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한자는 상형문자를 거쳐 은나라의 갑골문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주나라 금문이 춘추전국시대에 유행했는데 이를 대전(大篆)이라 하고 진나라가 통일하면서 문자를 통일했는데 이를 소전(小篆)이라고 한다.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안평대군 글씨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안평대군 글씨

 
이후 한나라 때 소전을 간소화한 예서체가 나타났고 예서체에서 초서, 행서, 해서체가 나왔다. 한나라의 종요, 장지 등의 서예가에 이어 동진의 왕희지(307-365)가 해서, 행서, 초서 등의 서체의 체계를 확립하고 예술적 경지에 올려놓으며 서성이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서체의 유행은 역사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변증법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진나라 사람은 운(韻)을 숭상하여 왕희지 글씨는 신운이 감돌았고, 당나라 사람은 법(法)을 숭상하여 구양순, 저수량 등의 글씨에는 법도가 있었다.

송나라 사람은 의(意)를 숭상하여 소동파, 미불 등의 글씨에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되었고, 원나라, 명나라 사람은 태(態)를 숭상하여 조맹부, 동기창의 글씨는 자태가 아름다웠다. 청나라의 서예는 고증학의 정신을 이어받아 옛것에 대한 연구 특히 고비를 연구하는 금석학이 크게 일어나 고졸미, 예스러우면서도 개성을 잃지 않는 글씨가 창출되었다. 우리 서예의 발전사를 보더라도 신라의 김생, 고려의 탄연, 조선의 안평대군, 한석봉,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변증법적 역사성을 볼 수 있다.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퇴계 이황의 글씨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퇴계 이황의 글씨


조선 초 안평대군은 송설체의 대가로 칭송받았을 뿐만 아니라 송설체를 발전시켜 자신만의 서체로 완성했다. 1450년 안평대군의 글씨를 자본으로 만든 동활자가 경오자일 정도로 유명했다. 송설체는 왕실의 서체로 오랜 기간 유지되었지만 송설체가 '예쁘고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평가가 지속되면서 조선의 선비들에 의해 배척되었고 왕희지의 고법을 배우자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흐름에서 한석봉의 석봉체가 탄생한 것이다. 

주자성리학이 조선의 성리학으로 발전하면서 퇴계 이황, 성수침, 김현성 등은 송설체를 배웠지만 왕희지 글씨를 모범으로 전아한 글씨를 쓰게 되었다. 이후 추사 김정희가 금석학을 연구하면서 조선의 서예는 당대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한석봉의 글씨

'2024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 전시회, 한석봉의 글씨


이번 '조선시대 송설체 명필'을 통해서 조선왕실에서 즐겨 쓴 송설체와 안평대군 등 송설체를 잘 쓴 명필에도 주목하게 되지만, 조선 서예사에서 안평대군, 한석봉, 김정희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발전과정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전시 첫날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왔는데 한 관람객이 '송설체'가 뭐냐고 질문을 했다. 서예가인 필자가 중국의 서예사와 한국의 서예사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서예사에서 차지하는 조맹부의 위상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왕희지, 조맹부, 안평대군 글씨의 특징을 비교해 설명해 주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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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설체, 안평대군, 한석봉, 수원박물관,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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