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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태실이 왜 수원에 있을까?
2024-08-20 16:48:35최종 업데이트 : 2024-08-20 16:48:31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정조대왕 태실과 비, 수원화성박물관과 팔달구청 사이에 있다.

정조대왕 태실과 비, 수원화성박물관과 팔달구청 사이에 있다.


수원시에는 총 101점의 문화유산이 있다. ▲국가지정유산은 '수원화성 팔달문' 등 25건 ▲국가등록문화유산은 '구 수원문화원' 등 7건 ▲경기도 지정유산으로 '지지대비' 등 48건 ▲경기도 등록문화유산으로 '수원 방화수류정 자개상' 등 2건 ▲수원시 향토유산으로 '화성관련 표석 일괄 5기' 등 19건이 있다. 

수원에서는 팔달산, 광교산, 수원천 등 발길이 닿는 곳마다 문화유산이 있는 셈으로 수원시 전체가 야외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수원에 있는 문화유산 중에는 정조대왕 관련 문화유산이 특히 많이 있다.
정조대왕에 의해 건설된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수원화성 팔달문, 화서문, 방화수류정, 서북공심돈과 수원향교 대성전, 화령전 운한각, 복도각, 이안청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조대왕 태실과 비, 수원화성박물관과 팔달구청 사이에 있다.

정조대왕 태실과 비, 수원화성박물관과 팔달구청 사이에 있다.


화성행궁과 화령전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지지대비, 홍재전서, 정조 어필과 어찰 등은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노송지대, 축만제는 경기도 기념물, 수원향교, 만석거, 숙지산 화성 채석장, 화성관련 표석 일괄, 정조대왕 능행차, 무예24기 등은 수원시 향토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문화유산 외에도 지지대고개 아래 효행공원에 있는 정조대왕 동상, 팔달산에 있는 정조대왕 동상, 팔달문 시장 주변에 있는 정조대왕 불취무귀 동상 등이 있어 정조대왕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그런데 팔달구청 앞에 있는 '정조 태실'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조대왕 태실과 비, 강원도 영월에 있는 원형과 똑같이 복제한 것이다.

정조대왕 태실과 비, 강원도 영월에 있는 원형과 똑같이 복제한 것이다.


정조 태실은 수원화성박물관이 개관할 당시인 2009년에 원형을 재현해 세운 것이다. 현재 수원화성박물관 야외에는 거중기, 녹로, 유형거를 실물 크기로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데 정조 태실은 팔달구청 앞쪽에 있어 일반 시민은 물론 수원화성박물관 관람객도 특별한 관심이 없으면 그 존재 자체를 모른다.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필자의 지인인 수원시민 김수영 씨에게 수원에 있는 '정조 태실'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정조 태실이 수원에 있어요? 원래부터 여기 있던 것인가요? 그런데 어디 있어요?"라고 되묻는다. 그는 수원에 있는 문화유산은 대부분 답사를 했는데 정조 태실은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해당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정조 태실은 팔달구청 앞 도로에서 약 10m 안쪽, 수원화성박물관 진입로에서 팔달구청 방향으로 약 20m 지점에 있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정조대왕 태실과 태실비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정조대왕 태실과 태실비


태실(胎室)이란 왕실의 자손이 태어나면 태를 일정한 곳에 묘소처럼 만든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의 탄생을 의미하는 태실, 죽음을 의미하는 왕릉, 추승을 의미하는 종묘는 왕실의례의 핵심이었다. 태실은 보통 태옹이라는 항아리에 안치하지만, 왕세자나 왕세손 등 장차 왕이 될 사람의 태는 태봉으로 가봉될 것을 감안 해서 석실을 만들어 보관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의 태실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데, 경기도에는 61곳에서 태실 35개와 태봉 30개를 확인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정신문화와 국가유산 파괴에 혈안이 되어있던 일제에 의해 전국에 있던 54위를 강제로 서삼릉으로 이전하면서 파괴하였고 그 후에는 그대로 방치되어 사라져갔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정조대왕 태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정조대왕 태실


정조 태실은 정조가 태어난 다음 해인 1753년에 만들었다. 받침돌 위에 둥근 몸돌을 올리고 팔각형의 지붕돌을 얹은 다음 주위에 난간을 둘렀다. 태실 앞에는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는 비가 세워져 있다. 태실비는 거북받침 위에 한 몸으로 된 비신과 머릿돌을 올렸다. 거북받침의 등에는 오각형 무늬를 새겼고 머릿돌에는 양옆에 두 마리의 용을 새기고, 그 사이에 구름무늬를 채웠다. 이 비는 1801년에 세웠는데 정조 사후에 정해진 묘효가 정종(正宗)'이었기 때문에 '정종대왕태실'이라고 새겼다. 이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1899년 황제로 추존되어 정종이 '정조(正祖)'로 격상되었다. 

얼마 전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정양산성을 답사했다. 정양산성은 계족산 서남쪽 능선에 있는데 영월화력발전소 옆에 산성으로 가는 길이 있고 약 5분 정도 오르니 '정조 태실'이 있었다. 눈앞에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뜻하지 않게 수원에서만 보던 정조대왕 태실을 보니 반가웠다. 수원에서 보던 모양 그대로였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정조대왕 태실에서 내려다본 남한강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정조대왕 태실에서 내려다본 남한강


문화유산 안내문을 읽어보니 간악한 일제의 파렴치함에 소름이 돋았다. 1929년 조선총독부가 전국에 있는 태실을 창경원으로 옮길 때 이 태실의 태항아리도 꺼내 갔다. 그 뒤 광산 개발로 흩어졌던 태실과 비는 1967년 KBS 영월방송국 안으로 옮겼다가 1999년에 지금의 자리에 원래대로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태실의 주위에는 금표(禁標)를 세워 채석, 벌목, 개간, 방목 등의 행위를 금지하였다. 금표를 세우는 범위는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왕은 300보(약 354m), 대군은 200보(약 236m), 기타 왕자와 공주는 100보(약 118m)로 정하였다고 한다.

정조 태실은 수원의 정체성과도 맞닿아있는 정조대왕 관련 유산이다. 수원화성박물관 가는 길에 한 번쯤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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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태실, 수원화성박물관,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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