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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부름에 답한 필동 임면수 선생... 그의 일대기 태장마루 도서관에 전시
79주년 광복절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다
2024-08-22 09:57:24최종 업데이트 : 2024-08-22 09:57:2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청극
체계적으로 잘 전시된 임면수 선생 일대기

체계적으로 잘 전시된 임면수 선생 일대기


지난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1945년 원년으로부터 광복절 79주년을 맞이했다. 국가적으로 커다란 기념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새삼 이맘 때면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주적인 독립을 했다는 것이 감격스럽지만, 다소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찾기 위한 선진 애국자들이 있어 결코 그들을 잊을 수 없다. 

150주년을 맞이한 선생의 각종 기념 사업들

150주년을 맞이한 선생의 각종 기념 사업들


그중에서 수원이 낳은 임면수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는 임면수 탄생 150주년 기념이 되는 해이다. 시대의 필요를 알고 시대에 온몸으로 답했던 임면수 선생 이야기가 우리 곁을 찾았다. 지난 20일 태장마루도서관 1층 로비에 가보니 필동 임면수 일대기가 사진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지난 5월 7일부터 6월 14일까지 수원특례시청 본관 1층 전시를 시작으로, 권선구청 및 영통구청, 장안 구청(9월 2일~9월 27일), 끝으로 팔달구청(9월 30일~10월 18일)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전시를 통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기념하고 숭고한 국가의 중요성을 느껴 보는 계기를 갖을 수 있다. 기념 사업회에서는 일대기 전시, 학술제 기념 강연(2024년 4월~5월), 자료전시(2024년 5월~8월), 묘소 참배 및 경기독립운동 사적지 탐방(2024년 7월~9월),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2024년 8월 6일~11일, 5박 6일) 등 다양한 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수원의 상징적인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장안문

수원의 상징적인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장안문


수원사람 필동 임면수는 자신의 재산과 토지를 기부하여 근대교육기관 설립 운영에 동참했고, 1912년 만주로 망명하여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부민단 결사대 대원으로 활동하는 등 거센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평생 감옥에 수감되었다. 귀향 후 아담스 기념관 건축 공사 감독을 맡아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아내인 전현석(1871~1932)은 만주에서 임면수와 여관을 운영하며 독립군의 식사와 치료를 담당하여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릴 정도였고, 2남 2녀 중 장남 임우상은 군 자금을 모집하고 서간도로 돌아가는 도중 감기와 동상에 걸려 안타깝게도 순국했다.

무엇보다 인재 양성에 앞 장 섰던 임면수 선생

무엇보다 인재 양성에 앞장 섰던 임면수 선생


임면수 선생의 일대기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1874년 6월10일 수원 북수동에서 출생했다. 27세인 1902년 삼일학교를 설립했고, 35세인 1909년 삼일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38세인 1912년 만주 봉천성 환인현 횡도촌으로 가족이 망명했으며 41세인 1915년 만주 양성중학교에 부임했다. 
 
체포와 모진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이겨냈던 선생의 민족 정신

체포와 모진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이겨냈던 선생의 민족 정신


1916년 42세 때 통화현 부민단 경사대에서 활동했고 47세인 1921년 길림 시내에서 체포되어 평양감옥에 수감됐다. 49세인 1923년 민립대학 설립 발기인으로 할동했는데 삼일학교 아담스 기념관 건립 감독을 하기도 했다. 결국 56세인 1930년 11월 29일 수원에서 순국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포상했다.
 
경제관이 분명했던 선생의 국채보상운동

경제관이 분명했던 선생의 국채보상운동


필동 임면수는 수원을 대표하는 근대교육기관인 '삼일학교'의 탄생과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기호 흥학회 수원지부 평의원으로 활동하여 계몽운동을 이끈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커다란 업적이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1912년 독립군을 양성하고 무장독립 항쟁의 기틀을 다지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30년 11월 29일 56세에 순국했던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독립 운동에 함께 했던 여러 동지들

독립 운동에 함께 했던 여러 동지들(앞줄 맨 오른쪽이 임면수 선생)


필자가 오후 전시장을 살필 때 어른 몇 명이 전시 장면을 눈으로 보고 읽으며 감상에 젖었다. 망포1동에서 온 어느 중년 여성은 전시작품을 꼼꼼하게 살핀 후 "수원에 이렇게 역사적으로 훌륭한 분이 계신 것을 몰랐다."고 하며 "독립운동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이 너무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임면수 선생의 일대기는 수원의 박물관에서 본적은 있지만 이처럼 자세하게 일대기를 전시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도서관을 자주 찾는 어린이들에게 임면수 선생의 삶의 조명을 통해 귀한 교훈과 애국심를 갖게 하는 좋은 교육 자료가 될 것 같았다. 한편, 이번 전시는 8월 19일부터 8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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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임면수 선생, 삼일학고, 독립운동, 김청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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