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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을 빛나게 한다는 자부심으로 모니터링
(사)화성연구회 모니터링 활동, 의미 있고 즐거워
2025-11-05 15:08:40최종 업데이트 : 2025-11-05 15:08:3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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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깊어가는 가을날 (사)화성연구회 모니터링분과위원회 회원들은 수원화성 모니터링을 했다. 지난 4일 오후 포근한 날씨 속에 수원화성 화서문에서 시작해 서북공심돈, 북포루, 북서포루, 북서적대, 장안문, 북동적대, 북동치, 북동포루, 화홍문까지 성곽 시설물과 성벽을 둘러봤다. 수원화성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박물관, 관공서의 정보에 오류가 있어 바로잡아야 한다. 관공서의 정보는 신뢰하기 때문에 관공서의 오류는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오류의 확대 재생산으로 이어져 광범위하게 오류가 확산되고 있다. 고구려 축성법인 육합 쌓기 화성성역의궤에는 길이, 높이, 폭, 둘레의 단위로 주척(周尺), 영조척(營造尺), 포백척(布帛尺), 리(里), 보(步) 등의 도량형으로 기록했는데 수원화성 축성에 사용한 척도이다. 수원화성 둘레가 4,600보인데 주척으로는 27,600척이며 12리 남짓이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보, 주척, 리를 현대의 미터법으로 환산하는데 오류가 있어 실제 수원화성의 둘레에 오차가 있는 것이다. 2022년 화성사업소에서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수원화성 시설물과 둘레를 실측했다. 실측 결과 주척은 19.85cm, 영조척은 31.36cm였다. 수원화성 둘레는 5,481m, 4대문 옹성의 둘레는 203m, 용도 둘레는 449m였다. 1보는 119.15cm, 1리는 360보이므로 428.94m이다, 수원화성의 넓이는 약 130만 제곱미터로 130ha(헥타아르), 약 39만 5천 평이다. 주척이나 영조척을 알면 보, 리를 환산할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에 6주척이 1보가 되고 영조척으로 3척 8촌이 1보가 된다고 비례관계를 기록해 놓았다. 장안공원에 있는 화성복원정화기념비 이런 확실한 결과가 나왔음에도 박물관, 시청, 문화재단 등 수원화성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홈페이지에는 반영이 되지 않고 수원화성 둘레는 5.74km라고 앵무새처럼 오류를 말하고 있다. 5.74km는 전혀 근거가 없는 책상머리에서 계산한 이론적인 수치에 불과하다. 조속히 수정되기를 바란다. 화서문은 바닥 공사과정에서 홍예 바닥의 박석 높이를 지대석에 맞췄기 때문에 문밖 바닥과 턱이 생겨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곳이다. 높이 차이가 20cm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몇 년째 그대로이다. 문 안쪽 육축을 구성하는 돌은 깨지고 튀어나온 곳이 있고, 문밖 오른쪽의 공사 책임자가 새겨진 돌에는 인위적인 훼손 흔적이 보이는데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해 보인다. 수원화성 북동포루 모습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사이 성벽은 축성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에 어떻게 성벽을 쌓았는지 알 수 있는 곳이다. 성벽을 자세히 보면 육합 쌓기, 혹은 품(品)자 쌓기가 보이는 곳이 있다. 이러한 축성방법은 돌 하나를 중심으로 양옆에 1개, 아래위에 2개씩, 전체 6개가 견고하게 물려있어 구조적으로 튼튼하다. 성돌을 일정한 크기로 다듬어야 가능한 방법으로 고구려 석공들의 우수한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축성법이다. 하지만 수원화성에는 이러한 축성법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번 모니터링에서는 성벽을 이은 흔적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벽과 서북공심돈을 이은 곳을 보면 매끄럽지가 않습니다. 아마도 성벽과 공심돈을 각각 쌓은 것으로 보입니다. 북서적대, 북동적대, 북동치 주변에는 이은 곳과 한 번에 쌓은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 성벽을 관찰하고 있다. 서북공심돈을 지나 성벽 길을 걸으며 성벽을 관찰했다. 자세히 보면 보수한 곳과 원래의 성벽을 구분할 수 있다. 특히 보수한 곳은 성돌의 가로눈줄을 맞추지 못해 아래 성돌이 깨지거나 쐐기돌로 받친 경우가 있다. 화성성역의궤의 기록과 실제의 성벽이 기록과 일치하는지도 알아봤다. 북서포루 앞 장안공원에 있는 '화성복원정화기념비'는 훼손한 흔적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비는 1979년 설립 당시에 전면에 '수원성복원정화기념비'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수원'이란 두 글자를 회칠로 메우고 그 자리에 '화'자를 새겨넣었다. 비 뒤의 내용에도 같은 짓을 했다. 이후 누군가 비 뒤의 '수원'이라 새긴 곳에 회칠한 것을 긁어내 '수화성'이란 글자가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훼손의 훼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수원화성을 모니터링 하는 화성연구회 회원들 북서포루와 북서적대 사이에는 원형을 유지한 성벽이 약 50m 정도 있다. 성벽 아래에는 큰 돌을,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사용한 점, 정연하게 다듬어 정교하게 쌓은 점 등 수원화성 성벽 중 가장 잘 쌓은 곳이다. "성벽에서 떨어져 북서포루 방향의 성벽을 보세요. 성벽의 부드러운 곡선이 보이지요? 바로 정조대왕의 애민의 현장입니다. 성벽이 굽은 것은 축성 당시에 민가를 성안으로 넣기 위해 성벽을 민가 밖으로 쌓은 것이며 직선보다는 곡선이 구조적으로 훨씬 튼튼하고 안정적입니다." 모니터링에 참여한 회원은 "깊어가는 가을날 수원화성을 걸으며 공부도 하고 모니터링을 하니 의미 있고 좋은 일이네요."라고 말하며 성벽을 열심히 관찰했다. 공부하고 관찰해서 알아야 보이는 것이다. 모니터링을 통해 수원화성이 더욱 빛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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