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삶을 그려보면서
2009-11-26 19:33:08최종 업데이트 : 2009-11-26 19:33:08 작성자 : 시민기자 박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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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원래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더 가지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이면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항상 감사 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너무 힘에 부쳐 힘들어지거나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문득 죽고 싶을 때가 있다. 고흐 자화상 혹자는 별자리가 미신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별자리가 몇 천년동안 내려온 하나의 통계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별자리에 얽매여서 내 삶을 거기에 맞추거나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때 남들은 날 이해 못하고 힘들 때 별자리가 날 설명해 줄 때가 있다. 그때는 어느 정도 나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나와 닮은 반 고흐의 삶은 한마디로 '떠밀린 삶'이다. 매 순간 그는 몸부림쳤지만 세상은 그를 잔혹하리만큼 떠밀었다. 나도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공부도 많이 잘했지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세상은 잔혹하리만큼 나를 떠밀었다. 고흐는 그렇게 서른일곱 해를 살았다. 나도 고흐처럼 요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곤 한다. 적어도 나도 고흐처럼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긴 하지만. 고흐는 그중 10년 남짓한 기간 그림을 그렸다. 그전에는 화랑 점원이었고, 이미 남과 약혼한 하숙집 딸을 짝사랑하다가 좌절하기도 했다. 정신 차려 아버지를 이어 목사가 되려 했지만 뜻대로 안 됐다. 그렇게 떠밀려 화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고흐다. 어쩌면 우리가 그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는 까닭은 그도 우리처럼 늘 떠밀린 삶을 산 인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고흐에 비하면 난 그나마 조금은 더 신의 가호를 받은 편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함을 느껴봤고. 학생 시절 때 공부를 잘해서 정상의 자리도 가봤었다. 하지만 나의 창조적이고 돈키호테 같은 양자리 기질은 나를 항상 힘들게 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고 계속 떠밀려 와서 원하지 않는 일과 사람과 함께 해야 될 것 같아서 너무나도 두려웠다. 고흐처럼 귀를 자르고 싶을 만큼. 고흐의 그림을 보노라면 마치 그의 그림 속에 우리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느낌이다. 특히 1890년 5월부터 7월 27일 고흐가 자신의 삶을 권총 자살로 마감할 즈음까지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 것은 단지 연민이 아니었다. 그는 떠밀릴 대로 떠밀린 삶의 그 지점에서조차 싸우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처절한 싸움이었다. 생전에 그의 그림은 닭장 문으로 쓰이고, 사격연습용 표지판으로 쓰였을 만큼 푸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사후에 그의 그림은 가장 값진 그림 중의 하나가 됐다. 난 과연 지금 삶에서 정말 힘들게 살다가 죽는 것을 참아 낼 수 있을까? 후에 사람들에게 추앙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삶이 너무 고단하다면 난 그걸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 곳곳에서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기꺼이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의 생을 갚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누구보다도 난 그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이해 할 수 있기에. 나뿐만 아니라 고흐도 떠밀려서 때로 스스로의 삶을 끊도록 강요당할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은 어차피 그 떠밀린 바로 그 지점에서의 처절한 싸움이라는 것이다. 고흐는 떠밀린 그 지점에서조차 죽도록 그렸다. 고흐의 그림은 떠밀린 삶의 지점에서조차 처절하게 싸운 삶의 위대한 흔적이다. 나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내 삶의 위대한 작품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처절하리만큼 그려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삶은 떠밀린 지점이 끝이 아니라 거기가 다시 시작점임을.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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