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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
2011-01-17 01:24:06최종 업데이트 : 2011-01-17 01:24:06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은희

신년이 되어서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선배언니가 자라는 요플레를 일본에서 가져 왔다고 해서 한 컵씩 나누어 주었는데 다들 맛도 보고 신기해하며 하나씩 챙겨갔다.

이제는 아들들을 하나, 둘씩 군대에 보내고 머리칼에 새치도 희끗희끗 해지기 시작한 걸 보면 다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밥을 먹고 차를 한 잔씩 마시고나서도 헤어지기 아쉬워서 한 잔씩을 더 시켜서 마시며 한동안 자리에 앉아서 서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한 그들. 

전번 달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한 달 간격으로 잃고 나서 핼쭉해진 친구이야기와 이번에 아이 교육문제로 뉴질랜드에 간다는 후배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그나마 두 달에 한 번씩 보던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니까 가슴이 먹먹했다.

모두가 주부이다 보니 마냥 오랜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봐보니 친구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이 요플레에 우유를 얼마나 넣으라고? 그리고 며칠 있다가 먹는 거야? 라는 물음에 나는 우유는 반 정도 넣고 12시간 발효시킨 후에 먹으면 된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제는 건망증이 심해져서 한 번 한 말은 되묻기 일쑤이고, 음식점을 나오면서도 한 가지 물건은 빠뜨리고 나온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챙겨주면서 오늘은 핸드폰이야? 라며 한 바탕씩 웃고 나온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은 더 가진 만큼 상대를 적당히 굴복시키려하거나 조건으로 서열을 매기는 등 순수하지 못한 관계로 출발하게 되고 무엇보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개성이 굳어져서 그 벽을 허물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만나왔던 사람과의 만남이 더 편안하고 나이가 어린 시절의 만남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로 오롯이 마음끼리 만나기 때문에 긴장감을 주지 않아서 다정한 분위기를 지속하게 된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_1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_1


그렇게 세월과 더불어 관계도 익어가는 것이다.

오늘은 슈퍼아저씨를 길에서 만났는데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80도쯤 숙여서 정중히 답례인사를 하였다. 나이가 십년쯤은 나보다 어린사람에게 인사를 받으면서도 아직까지 나이를 종종 잊게 된다.

나이가 들었다고 그저 고개만 까딱하고 답례하는 것도 좋은 버릇은 아니지만 한 해가 가고 또 한 달이 지나는 시점에 서니 나이가 드는 게 공연히 서글퍼진다. 그런데 아예 인사를 하지 않는 어린사람과 마주치면 내가 먼저 인사를 할 수도 없어서 더욱 민망하기도 한걸 보면 나이 듦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월이 한 해 한 해 갈수록 거울 속에 나이든 아줌마의 얼굴이 왜 내 얼굴 같지 않은 건지.이번 공공 기관에서 면허증을 재교부 받으면서도 십년 전 사진을 내밀며 이게 나라고 우기다가 결국은 요즘에 찍은 사진을 내밀은 적도 있다.

오늘 '드림하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이 우승펜던트를 잃어버렸다며 연습실 강당에 찾으러 온 장면이 있었는데 상대배우가 "잘 되었네, 그만 잊어버려. 이제는 그거 찾을 일 없잖아." 라며 시니컬한 표정으로 연습실을 나가는데 그 장면이 왜 그렇게 멋져보이던지.

그러고 보면 무언가 잃어버린다는 게 꼭 잃어버리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한 생각을 해봤다. 지나간 한해도 드라마 주인공이 잃어버린 우승 페던트처럼, 혹은 아끼던 MP3나 선물 받은 시계를 잃어버린 것처럼 시니컬한 표정으로 잘되었군, 이제 그거 찾을 일 없으니까, 라면서 멋지게 나이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는 세월이 갈수록 나이 듦을 한 해 한 해 업데이트 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지나간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기억 속에 저장된 폴더를 미련 없이 모두 날려버리고 아예 새로 포맷해 볼까나. 너무 시니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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