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를 칠까, 내가 트럭에 깔릴까...
2012-06-06 04:43:48최종 업데이트 : 2012-06-06 04:43:48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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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말고 그댄 자릴 지켜, 원래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인간인걸... 너의 집념을 보여줘, 지구를 좀 흔들어줘, 모두가 널 볼수 있게"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녀시대의 'The boys' 노랫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빠른 박자와 함께 귓전을 쿵쿵 울렸다. 노래의 박자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내 차는 오산을 지나 화성시 정남면 방향으로 더욱 스피드 있게 달리고 있었다. 고라니를 칠까, 내가 트럭에 깔릴까..._1 한적한 시골 국도를 접어들면서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고갯길이라 꼬불꼬불했지만 자동차도 자기의 성능을 뽐내며 급커브 길을 스키 타듯 미끄러져 내려갔다.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했던가. 노랫소리에 취해 잠깐 정신을 판 사이 눈앞에 나타난 장애물 하나. 그건 고라니였다. 고속으로 주행중에 내 시야에 들어왔다. 덩치가 크지 않은 새끼, 이녀석 불빛을 보고도 피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고 있다. 아주 짧은 순간 고민... 이대로 가면 고라니는 내 차에 깔려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간다. 그러나 내리막길 한 가운데 태연히 앉아 자동차의 위험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이 놈이 바퀴에 깔려 생명을 잃는 일이 없게 하려면 내가 급정거를 해야 하는데. 룸미러에 나타난 불빛, 그건 거대한 트럭이었다. 내가 급정거를 하면 저 뒤따라오던 트럭도 그럴 것이고, 운좋게 제동을 하면 좋겠으나 그러지 못하면 트럭이 나를 밀어버릴 것이다. "위험하다, 그냥 가자." 그러면서도 차를 세우지 않더라도 저놈이 재수 좋으면 살겠거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고라니 앞에서 10미터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마음이 바뀌었다. '끼이이~~~익!!' 나로선 도저히 생명을 짓밟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니 운전대가 돌아갔다. 왼쪽에 중앙선이 이썼는데 일단 그쪽으로 차가 미끄러지면서 밀려났고 다시 원위치로 핸들을 꺾으니 이번엔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내 뒤에 섰다. 낭떠러지가 눈에 확 들어오면서 다시 본능적으로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렸다. 잠시였는데 차는 가까스로 원래의 차선에 섰고 트럭도 다행히 나를 덮치지 않고 섰다. 정신을 가다듬고 좌우를 살펴보니 고라니는 온데간데없고 내 차와 트럭의 분주한 엔진소리만 들릴뿐이다. 며칠후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그깟 고라니 살릴려다가 네놈 황천길 갈뻔 했잖아. 그럴때는 두눈 질끈 감고 밀어버리는거야. 잘못하면 네 뒤에 운전자들까지 사고 내잖아"라며 혀를 찼다. 거의다 내가 잘못한거란다. 그래도 개중에는 내 말을 듣고 "아마도 나중에 네가 죽으면 그 고라니거 널 천당으로 안내할거다. 잘했다"라며 위로 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하찮은 동물하고 목숨을 바꿀 뻔했다는 사람들의 말. 그러나 사실 그 때 일어난 일은 스피드를 내지 않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상황이기에 내 잘못이 더 크다. 살다보면, 특히 욕심을 내고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남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 이기심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전에 멸종되어가는 반달곰을 되살리자고 지리산에 방사했던 몇 마리 곰 중에 한 마리가 농민이 놓은 올무에 생명을 잃었다. 앞으로 그런 불행이 또 없으란 법 없다. 실컷 자연을 파괴해가며 그들의 안식처를 다 빼앗은 연후에 다 사라져가니 사후약방문식 곰 몇 마리 방사해놓는다고 자연이 다시 생태계를 되찾지는 못한다. 이제부터라도 지방 변두리 도로에서는 빨리 달리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보았다. 그리고 도로를 달리더라도 혹시 내 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 동물은 없는지 살피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검은 아스팔트에서 헉헉거리며 살다 죽는 것도 일생이고, 초록의 들판에서 뭇생명들과 함께 살다 죽는 것도 일생이다. 기왕 한 번 밖에 살지 못할 인생이라면 빨리빨리 뭔가 이루어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주변도 돌아보며 사는 게 낫지 않을까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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