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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
2012-06-10 23:05:29최종 업데이트 : 2012-06-10 23:05:29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요즘은 그래도 고졸자 채용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도 어릴때부터 장난감 해부하고 조립하고, 심지어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 뜯어서 새로 끼워 맞추다가 어머니로부터 "이눔이 커서 뭐가 될라꼬?"소리를 들으며 매를 맞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원래 공부에 뜻은 없고 기계나 전자제품 만지는걸 좋아해서 결국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주변에서는 그 머리면 대학도 좋은곳에 충분히 갈수 있는데 왜 안가냐고 했지만 굳이 대학이 뭐 필요할까 싶어 내 적성에 맞는, 그래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공고에 가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고졸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_1
고졸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_1

그리고 지금은 중견 전기회사의 전기제어계측 분야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회사 장래도 밝다.
그런데, 내가 결혼할 때가 되었을때였던 오래전의 일이다.
나이가 들어차면서 집에서나 친지분들의 성화가 보통 아니었다. 장남인데 빨리 장가 들라고... 그러고 보니 일에 미쳐서 회사와 집에만 오갔을뿐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 그렇다고 말을 잘하거나, 연애의 기술이 있는것도 아니니 그냥 이 나이 먹도록 허송세월(?) 한게 사실이다.

"얘, 늬 아부지도 이제 손주를 봐야할 연세 아니니. 근데 왜 아직도 여자가 없어?"
"엄마는? 뭐가 급해요. 알아서 갈께요. 참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당장 만나는 여자도 없고, 딱히 마음에 담아둔 여자가 있는것도 아닌데다, 맘에 드는 여자를 봤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대쉬해서 솔직한 감정 표현을 할만큼 주변머리가 있는것도 아니라 나름 난감했다.

그로부터 얼마후, 고등학교 동창녀석을 만난 자리에서 나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놨더니 이녀석이 대뜸 여자를 소개시켜준다는게 아닌가. 그동안은 애인이 있는줄 알고 신경 안썼는데 왜 이제야 말했냐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당장 성화가 이만저만 아니신 부모님께 내 의지라도 보여야겠기에 당장 친구가 소개해 준다는 여성을 만나기로 마음 먹었다.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모 중견기업 경리팀에서 일한다는... 그 여성.
모든 미팅이 그렇듯이 기본적인 호구조사(?)가 끝날때쯤...
"저, 대학에서 전공은 뭘 하셨어요?"
"예? 아, 예... 그거요.. 뭐 전공이랄것 까지는 없고, 그냥 전기과 다녔어요"
나는 우선 대학이라는 말에 침이 꿀꺽 넘어가면서 목이 탔지만 굳이 그게 뭐 대수인가 싶어서 공업고등학교때 다닌 학과를 대줬다.
"전기과요? 네... 몇학번이세요?"
"학번요?"

아, 여기서는 솔직히 말해야 할 상황. 뭐 숨기려고 한것도, 숨길 필요도 없는 일이었지만 막상 대놓고 물어보니 난감... 하옇튼 "저, 대학 안다녔어요. 공고에서 전기과 다닌건데 친구가 얘기 안하던가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왜요? 대학 안나와서 실망하셨어요?...."
여기까지였다. 실망스런 눈빛을 굳이 숨기려고 하던 그녀의 표정. 오래 앉아 있을 필요가 없겠다 싶어 그후 10분만에 헤어지고 나온 씁쓸한 기억.

그렇게 헤어지고 나왔지만 나는 망치로 뒷통수를 맞은듯한 느낌을 떨쳐 버릴수 없었다.  뭐하냐고 남들 다 다니는 대학도 안나왔냐는 그런 표정을 기억하며...
전철을 타려고 길을 걸어가면서 벼라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고졸이라고 우습게 아는구나, 요즘 지나가는 강아지도 대학 나오는 판국에 고졸인 나를 만나겠다는 여성이 안나타나겠어?... 이럴줄 알았으면 그 때 어머님 뜻대로 대학에 갈걸... 하는 별별 생각들이 머리를 휘젓는 순간 약간 허망하고 씁쓸하고 우울한 느낌의 바람이 콧잔등을 휙 스치며 지나갔다. 

에이, 늦었지만 다시 공부해서 야간대학이이라도 확 가버려?
벌써 오래전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건실한 생활인으로... 요즘 고졸자 채용도 늘어가는 추게라던데 우리 정말 학벌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늘을 보니 새털같은 구름이 평온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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