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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의 추억과 향기
2012-08-18 01:13:20최종 업데이트 : 2012-08-18 01:13:20 작성자 : 시민기자   박나영
수원에 살기 전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 동대문 근처에 4년정도 살았다. 동대문 주변에는 워낙 상권도 발달하기는 했는데 내가 가장 즐겨 찾던 곳은 헌 책방이었다. 
동대문 근처 헌책방 거리는 평화시장 앞에 가면 줄지어져 있다. 지금의 청계천 자리에 고가도로가 있고 고가도로 아래로 즐비해있는 상점들이 헌책방 거리를 형성했다.

처음 서울에 발을 디뎠을때는 그곳이 다소 어두컴컴하고 지저분 하다고 생각했으나 헌책방에서 나는 특유의 책 냄새는 시간이 흐를수록 참 정감 가는 유별난 향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해서 수원에 정착해 지금껏 살면서 우리 수원도 참 많은 상권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지금 팔달문쪽 이춘택 병원 앞 건너편 상가는 과거에 화려한 영화를 누리기는 했으나 시내 곳곳 아파트 주변에 대형 마트들이 자리를 잡아 손님들을 끌어 모으니 자연스레 상권이 죄다 죽어 버렸다.
그나마 밤문화를 지켜주던 젊은 소비층마저 전부 수원시청 근처로 옮겨 가면서 그마저도 옛 영화를 잃어 버렸다. 
그것도 일종의 세월의 변화라 해야 할까. 

나는 토요일만 되면 도서관으로 가곤 한다. 여름에는 무척 시원한 최상의 피서지 역할을 해 주고, 겨울에는 따스한 가운데 마음 편히 책을 읽을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마침 시간이 좀 나길래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간 김에 팔달문쪽에서 녹산문고에 들러 책을 몇 권 뽑아들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넓은 매장에 주인 눈치를 살필 필요조차 없어 금상첨화였다. 두어 시간 후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헌책방의 추억과 향기_1
헌책방의 추억과 향기_1

그리고 오래 전 서울의 동대문 평화시장 근처 헌책방에서 책을 골라 1000원에 네댓권씩 사 들고 나오며 행복해 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느긋하게 앉아 책을 뒤적이다가 한시간쯤 지나 책을 덮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주변 행궁파출소 뒤쪽 상가로 갔다. 예전 같지 않게 썰렁했다. 셔터가 굳게 내려진 상가마다 '전 품목 70~90% 세일' '점포 인수하실 분. 권리금 없음' 등이 검정 매직으로 도배하듯 붙어 있었다. 늘 북적대던 신발가게와 아동복 매장은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있었고 다른 가게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시 상가 상인들의 한숨소리가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그곳은 예전에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맨 끝에 자리했던 책방 쪽으로 갔다. 문이 잠겨 있었다. 중년부부가 오랫동안 성실하게 운영을 했던 책방이다. 주로 학생들의 참고서나 월간지를 팔았고. 당시 유행하던 시나 소설류를 구색 맞춰 취급하는 정도였다. 내가 찾던 책은 주문을 해서 구입해야만 했다. 주문을 한 책이 도착하면 전화를 주곤 했다. 굳이 큰 서점을 찾지 않고 그 책방을 이용했던 건 안주인의 따뜻한 배려 때문이었다. 

창가에는 딱딱한 의자 대신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었고. 여름이면 반쯤 열어둔 창 너머로 선들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커피 향 때문이었던지 지나가던 엄마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아무나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게 한쪽 공간을 열어놓고 있어 동네 사랑방 역할까지 했던 곳이다. 
당시 그 풍경을 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면 작은 책방 주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데 그렇게 정감 어린 책방이 사라져 버리다니. 순간 소규모 상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며 대형 마트들의 입점을 반대하던 운동이 문득 생각났다. 

언젠가부터 내가 사는 근처에도 대형 마트들이 속속 들어서고 주변은 모두 프렌차이즈 업종들이 장악하면서 소점포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그 속도는 너무 빠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탁 트인 매장엔 일목요연하게 상품이 진열되어 고르기 수월하고 산지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들인 물건은 가격도 저렴하고 싱싱하다. 카드결제 하면서도 눈치 볼일 없을 뿐더러 구매한 액수만큼 포인트가 쌓여 실속을 차릴 수 있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게다가 맞벌이 부부들은 밤늦은 시간에도 쇼핑을 할 수 있어 편리하다. 현대인의 구미에 딱 맞다. 

한데, 왜 나는 아직도 그 편리함이 낯설게만 느껴질까.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정도 백화점이나 대형매장을 찾고 있는 건 뭔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리라. 좀 촌스럽고 투박할지라도 서민들의 꿈이 녹아 있는 그 소박한 것들이 난 그립다. 

지난 주에도 재래시장을 찾았다. 가게마다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고무줄바지의 아주머니는 물건을 다듬고 매만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추방앗간, 철물점을 지나 골목을 빠져나오자 손수 가꾼 푸성귀를 앞에 놓고 오가는 사람 틈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검버섯으로 물든 거친 손이 내 마음을 잡아당겼다. 귀퉁이에 손바닥만한 자리를 잡고 앉아 사주 책을 뒤적이고 있는 노인의 모습도 정겨웠다.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행인들의 발자국 속에서 잠시나마 향수를 느끼게 했다. 재래시장은 모처럼 살아있는 소리로 가득했다. 
우리 수원의 모든 재래시장이 항상 그런 정겨운 풍경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내가 자주 찾던 책방처럼 자꾸만 사라지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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