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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빵..아버지가 건넨 따스한 마음
2012-08-18 01:30:26최종 업데이트 : 2012-08-18 01:30:26 작성자 : 시민기자   오선진
퇴근길에 동료와 함께 나오는데 길가 저만치서 국화빵을 파는 작은 파란색 트럭이 서 있었다. 언뜻 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것이 군침을 돌게 했다. 
우린 약속이나 한 듯이 국화빵을 사먹으러 갔더니 50세 안팎의 부부가 그걸 굽고 계셨다."아저씨 2천원어치만요..."라고 말하며 지갑을 꺼내는데 "어버부, 어버부…" 하며 손짓을 한다. 
앗차,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신가 보다 생각하는 찰라 근처에 있던 악세사리 리어카에서 장사하시던 어떤 아저씨가 뛰어와 휴대전화와 전단지를 건넸다. 

전단지에는 음식이 수십여 종 적혀 있었다. 국화빵 아저씨 부부는 돈까스와 비빔밥을 가르치며 손가락 2개를 내보인다. 
그제서야'아! 청각장애인 부부가 음식을 시켜 달라고 부탁하는구나'알아챘다. 그것도 바로 옆에서 노점을 하시는분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악세사리 리어카 아저씨가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고 위치를 설명한다. 배달 음식점에 말을 못하는 분들이라고 하니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국화빵 7개 1000원'이라고 쓴 큼지막한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말을 못하니까 이렇게 써 붙였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가슴을 쿡 찔렀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국화빵을 맛있게 먹으며 한동안 서 있었다. 퇴근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국화빵 리어카 옆을 지나갔다. 국화빵 1천원어치조차 살 마음의 여유, 시간적 여유가 없는 바쁜 사람들이 그저 유령처럼 휙휙 지나쳐 갔다. 

국화빵..아버지가 건넨 따스한 마음_1
국화빵..아버지가 건넨 따스한 마음_1

수많은 무심한 행인들의 눈길이 그러거나 저러거나 간에 열심히 국화빵 굽는 그분들의 손등을 보니 하얗게 튼 살이 보였다. 로션이라도 있으면 발라주고 싶은... 하얗게 튼 손. 
뜨거운 땡볕에 온종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감당하며 장사 하셨을 그분들. 

문득 아들놈 가르치기 위해 평생 시골에서 농삿일만 하신 아버지와 국화빵의 추억이 떠올랐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겨울에 직장에 취직시험을 본게 운이 좋아 덜컥 합격하고 서울에 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시작한지 1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아들의 취직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고향에서 아버지가 올라오셨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직장에서도 윗분들 잘 모시라고 신신당부하시며 출근을 축하하는 소주를 한잔 사주셨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실 버스터미널까지 모시고 갔는데 아버지는 잠깐만 기다리라시며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그리고 10분만에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 돌아오신 아버지. 멀찌기서 보니 많이도 늙으셨다. 자식놈 가르치시느라...
아버지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봉투 두개가 들려져 있었다.
"옛다. 받아라."
두 개의 봉투중 하나를 내게 주신 그 안에는 국화빵 10개가 수줍게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애비가 줄게 이것밖에 없다. 건강허구..."
"아버지도 참..." 

국화빵을 받아 들고 아버지의 좌석을 확인해 앉혀드리기 위해 버스에 함께 탔더니 운전석 바로 뒤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버지는 "기사양반, 우리 아들이 서울 큰 회사에 취직했소. 이거 먹으며 갑시다"라며 선뜻 그 국화빵 봉지를 운전기사에게 주시는게 아닌가. 느닷없는 선물공세(?)에 놀란 운전기사님도 축하드린다며 그걸 받아 맛있게 입에 넣었다.  
'저렇게 좋으실까'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는 버스가 출발한 후에도 차창 밖에 서 있는 아들에게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셨다. 나도 그 자리에 붙박이로 서서 버스가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아버지께 손을 흔들어 드렸다. 지금은 이 땅에 안계신 아버지가 그때 아들에게 건네주신 국화빵은 정말 따뜻한 마음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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