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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칠석날,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2012-08-24 23:50:05최종 업데이트 : 2012-08-24 23:50:05 작성자 : 시민기자   한주희
음력 7월7일. 오늘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단 하루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칠월칠석날이다.
유치원때 들은 '견우와 직녀'의 충격적 이별이야기는 그 후로 한동안 7월7일이 되면 그들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에 가슴아파하며 하늘을 올려다 본 기억이 난다. 

정말 유명한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하늘나라에 직녀라는 옥황상제의 어여쁜 손녀가 살고 있었다. 직녀의 혼기가 꽉차 신랑감을 찾던 중 은하수 건너에 견우라는 성실한 청년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견우는 부지런한 목동이었는데 당시 목동은 지금의 공무원쯤 되었나 보다. 옥황상제는 견우를 손녀사윗감으로 점찍어 놓았다.  아마 견우는 은하수 건너 나라의 상당부분을 소유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지금으로 치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기 손녀를 나라밖으로 시집보내는 건데 그 정도의 스펙은 소유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견우와 직녀는 옥황상제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결혼을 해서 살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뒤로 제쳐 놓기 시작했다. 베를 짜던 직녀의 베틀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였고 견우는 농사일을 게을리 했다. 하늘 나라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상의 사람들은 천재와 기근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에 크게 분노한 옥황상제는 견우와 직녀를 강제로 헤어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그리워만 하면서 떨어져 살게 되었다. 뒤늦게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했지만 옥황상제의 화가 쉽게 풀어질리 없었다. 게다가 하늘 나라의 실세인 옥황상제가 본인이 뱉은 말을 함부로 뒤집기라도 하면 권위가 바로 서지 않아 통치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까치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들을 만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자신들이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자고 결론이 났고 그로써 오작교라는 은하수를 이어주는 까치 다리가 생겨난 것이다. 견우와 직녀는 1년에 단 하루 까치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만든 다리를 건너 잠깐의 만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칠월칠석날 비가 오는 것을 견우와 직녀가 만난 슬픔의 눈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위해 까치들은 대머리가 되는 희생을 기꺼이 감수했다. 어릴 때 유독 칠월칠석에 비가 많이 오면 대머리가 된 까치들이 슬퍼 함께 운다고 생각했다. 아이답게 않은 시크한 상상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각자 업무에 바쁘거나 더이상 인간을 위해 머리카락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적인 까치들이 오작교 건설에 이바지 하지 않아 견우와 직녀가 못만났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칠월칠석에 비가 안오면 조금 인생을 살고 보니 뻔한 설화인 줄은 알면서도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메말라 그렇다고 생각한다. 평생 볼 수 없을거라는 생각에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진거지 단 하루든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그리움은 반감된다. 어쩌면 견우와 직녀도 1년에 한 번 보는 상대보다 옆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새로운 짝을 만났을거라는 순수하지 못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엄마는 칠월칠석날이 되면 하루에 한 번은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꺼내신다. 산타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20여년 전에 알아버린 나에게 말이다.
먼저 외출을 하신 엄마와 밖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외출을 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1층 현관문을 빠져나오자 마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니? 창문 좀 닫고 나와. "
"나 지금 밖에 나왔어 "
"나온지 얼마 안되었으면 다시 들어가서 창문 좀 닫고 나와. 오늘 견우와 직녀 만나는 날이자나 "

다시 들어가도 충분히 들어 갈 수 있는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발길을 틀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견우와 직녀는 무슨.. 걔들도 이제 흘릴 눈물도 없어. "
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더욱 속력을 내어 집과 멀어져갔다. 귀찮았다. 단순히 귀찮은 이유였다.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는건 웬지 모를 오기를 생기게 한다.

엄마와 만나 점심을 먹는 내내 겉으로는 쿨한척 했지만 쿠물쿠물한 날씨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보슬보슬 내리면 보슬비의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바람까지 불어댔다.
"너 창문 안닫고 나왔지?"
엄마의 말에 날이 서 있다. 점심을 먹고 집에 들어가는 내내 제발 집안에 아무일이 없길 하늘에 기도했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각색하고 그들의 진심을 왜곡해서 이런일이 벌어진 걸까.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올 것 같았다. 

그런데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우산을 쓰지 안아도 될 정도의 안개비로 바뀌었다.
"거봐~ 걔들도 눈물이 말랐다니깐" 다시 의기양양해져서 밖에서의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어졌다. 집 안 창문을 활짝 열어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하는 엄마를 간신히 설득해서 영화 한편을 보기로 했다. 날씨를 보니 분명 비가 집안으로 쳐들어 올 것 같다는 엄마의 예측을 소심함으로 변질시켜버리고 내 고집대로 영화를 감행했다.

나 혼자만 신나게 영화를 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런....
우리 집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어 버렸다. 홍수나 태풍피해를 입은 분들께는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조금은 그 분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꼭대기 층인 우리집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에 의해 빗물이 베란다는 물론이고 안방 문턱까지 들이쳤다.

이쁜 짓 한다고 엄마 하던 걸 보고 이불들을 베란다에 다 내어 놓고 와서 이불까지 눅눅하게 젖어 버렸다. 이불은 왜 죄다 베란다에 내 놓았냐는 엄마의 닥달에 엄마가 그렇게 하길래 해봤다고 기어들어가는 모기소리로 대답했다.
딱 봐도 비올 것 같은 날씨에 이불을 내 놓으면 눅눅해지지 보송보송해지겠냐고...나는 할말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엄마가 정성스레 가꾼 화단이 망가져 버렸다. 부러질세라 죽을세라 영양제도 줘가며 관심으로 가꾼 화단의 꽃들이 쓰러져있었다. 

칠월칠석날,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_1
어른말 안들어 벌어진 참사

아무말도 못하고 물바다가 된 바닥을 닦으며 면박하는 엄마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 엄마 눈에 거슬릴까 조심히 최대한 튀지 않게 기는 자세로 뒷처리를 도왔다. 엄마는 화단을 정리하며 속상함을 애써 누르고 계신거 같았다.
잠깐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화단에 가보니 그 동안 정성으로 키운 꽃들과 화초들이 뽑혀나가는 참담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걸 어쩌나... 바닥의 물은 닦으면 되고 이불은 말리면 된다지만 하루 이틀에 걸쳐 가꾼 화단이 아니었는데... 

이래서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 어른 말 잘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던데.. 나 잘났다고 어른 말 콧등으로 들어 벌어진 오늘의 참사를 보고 깊이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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