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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엽서 한장 써서 빨간 우체통에 넣어보자
2012-08-30 00:22:27최종 업데이트 : 2012-08-30 00:22:27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이 가을, 엽서 한장 써서 빨간 우체통에 넣어보자_1
이 가을, 엽서 한장 써서 빨간 우체통에 넣어보자_1

"바다, 난 결국 네게로 왔다. 돌연한 너의 부름은 어찌 그리도 강렬하던지"
이문열의 소설인 '젊은 날의 초상'에 나오는 대목이다.
내가 학창 시절, 여름에 바다를 여행 하던중 친구에게 엽서를 한 장 띄웠는데 그 첫줄에 쓴 내용이 위에 인용한 이 문구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여행을 다닐때마다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회사 동료 직원에게라도 꼭 엽서를 써서 보내는 버릇이 생겼다.
여행중에 느끼는 즐거움, 행복감, 여행이 주는 기분과 쾌감, 혹은 여유로움과 한없이 넓어지는 인간적 아량 같은걸 짧은 문장에 담아 엽서를 보냈다.
물론 여행지에서 엽서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엽서를 사 들고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이 엽서라는게 주는 묘한 매력.
손바닥만한 지면이다 보니, 그 안에 하고픈 말을 다 해야 한다. 자연히 단문에 단문으로 써야만 한다. 아울러 그 단문 안에 나의 기분과 여행의 맛을 죄다 담아야 하니 은근히 명문장이 나왔다.
또한 엽서란, 발신자와 수신자만 보는게 아니라 누구던지 다 볼수 있도록 노출된 통신수단인지라 아주 개인적이거나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내용은 쓸수가 없다. 지극히 선문답 형식 같은 글, 혹은 자연 풍광을 보고 느낀 점 같은걸 주로 쓰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문장 하나하나기 서정적인 시에 가까웠다는 생각이다.

최근에 뜻하지 않게 엽서를 한 장 쓰게 됐다. 오래 된 책을 꺼내 읽으려고 펼쳐 들었더니 거기에 무려 15년 정도나 되는 과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엽서가 한 장 나오는게 아닌가.
그냥 묵혀 두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버릴수도 없어서 고민 끝에 엽서를 써서 부쳤다. 친구에게 썼다.
내용인즉 "스마트폰으로 모든게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다니는 이 속도전의 시대에 오랜만에 아날로그의 참맛이나 느껴봄세"라며 처서를 지나 가을로 접어든 이 길목에서 혹시 우리네가 잊고 사는 옛 정 같은건 없는지. 그리고 그 옛정이라도 불살라 언제 한번 만나면 뜨겁게 탁주나 한사발 나누자는 내용이었다.
친구도 몇십년만에 받아보는 엽서라며 무척 신기해(?) 했고 반가워 했다. 물론 이녀석은 답장을 엽서 대신 휴대폰으로 했지만.

인간이 원래 외로워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소통을 시도해 왔다. 직접 만나서 정보와 느낌을 교환했지만 일일이 다 찾아 드닐수 없으므로 소통을 위한 여러 기기나 제도를 개발하기도 했다. 우편제도가 생긴 것도 그런 필요성에 의한 것이라고 보면 맞다.  
편지는 봉투에 담기기 때문에 내용이 비밀이라는 문에 갇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처음 우편제도가 도입 됐을 때는 그 비밀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이 강해져서 봉투를 몰래 뜯어 읽어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실제 청춘의 편지들이 야릇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비밀 아닌 비밀의 속절 속에 오가던 시절이 있었다. 현진건의 소설 는 남의 연애편지를 몰래 읽는 스토리이다.
이에 비해 엽서는 아주 담백하다. 우선 엽서(葉書)라는 말이 재미있다. 말 그대로 "낙엽에 글을 쓴다"는 의미를 지닌 매우 문학적인 용어이다. 내용 역시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림엽서는 그 자체가 운치를 갖기에 여행의 정서나 계절의 변화, 또는 행사의 성격을 드러내는 식으로 여러 가지 역할을 해 주었다. 

이렇듯 엽서에는 비밀이 없기에 받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 사이에 오해의 소지도 없다. 또 공개되고 정제된 글이 오가기에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읽어도 감동을 줄 수 가 있다. 어디 그 뿐인가? 화가나 서예가 등이 꾸민 엽서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예술작품으로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엽서는 이렇듯 운치가 있고 품격 높은 소통의 도구다. 받는 사람은 물론 보내는 사람의 기분도 좋은 글이 바로 엽서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인해 편지는 말할 것도 없고 엽서도 쓰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손맛이 어린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손으로 만든 옷을 입고 싶어 한다. 그만큼 사람이 그립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제 슬슬 가을로 가는 이 계절에, 그리고 한달후쯤부터 찾아 올 붉은 단풍을 맞이하면서 그동안 마음 속에 두었던 누구에게라도 손으로 엽서 한 장 써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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