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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산행에서 느끼는 즐거움
저 소나무처럼 나 또한 세월을 비껴갈 수 없다
2012-09-01 14:52:03최종 업데이트 : 2012-09-01 14:52:03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새벽 4시. 옷을 챙겨 입고 차를 몰고 나섰다. 목적지는 가평 운악산이었다. 운악산은 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으로 불리는 5악 중 가장 수려한 산으로, 경기도의 소금강이라고 불리울 만큼 뛰어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산이다. 산 중턱에는 신라시대 법흥왕때 창건간 현등사가 있고 동쪽능선은 망경대, 미륵바위, 눈썹바위 등의 기암절벽과 병풍바위 등이 있다.

백년폭포, 무지개폭포를 품은 계곡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사계절 중 어느 계절에 운악산을 찾아도 운악산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산이다.
걷다 보니 뒤에서 타닥 딱 지팡이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투박한 운동화 신발 굽 소리, 소곤소곤 들리는 정겨운 대화. 누군가 부부가 등산을 온것 같다.

주말 산행에서 느끼는 즐거움_1
주말 산행에서 느끼는 즐거움_1

한달에 두 번, 그보다 못하면 한번 정도는 꼭 가까이 수도권의 크고 작은 산으로 산행을 가는데 어떤 때는 새벽 4시, 5시만 되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소리가 분분히 들리기 시작한다. 
야근이 적잖고 유난히 모임이 많은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늘 고역이었다. 늦게 잠자리에 들기도 하지만, 별나게 아침 잠이 많은 탓이다. 

그러던 것이 등산을 하면서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면역이 생겼던 것이다. 운악산 자락 주변의 논밭에 고추나 배추, 파 등 여러 가지 농작물들이 심겨져 있다. 이른 시각에 부지런한 분들은 이곳에서 농삿일을 하시는 것이다. 
이분들 곁을 지날때는 사실 마음이 편치는 않다.
우리네야 건강과 놀이 삼아 산에 오르지만 그 주변의 농민들이 논밭에서 새벽 5시부터 농삿일을 하시는걸 보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분들 모습을 보면 왠지 가슴 한구석 송구한 감이 느껴져 똑바로 그들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은 등산이니 산책이니 하는 용어 자체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게다. 

밭둑 가장자리엔 옥수수가 울타리처럼 둘러쳐 있다. 옥수수가 집안을 가리는 울타리라면, 울 밖 돌담에는 호박넝쿨이 기어가고 있다. 호박은 푸대접을 받고도 여전히 잘 자란다. 일체의 혜택도 받지 못하면서도 어느 작물 못지않게 왕성히 자라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찐해온다.

돌담을 지나면 사과 과수원이다. 심겨진지가 이 십여 년이 넘어 고목이 된 사과나무들이 길다랗게 팔을 늘어뜨리고 있다. 곳곳에는 스스로의 몸도 지탱치 못하는지 처진 가지를 지주목에 의존해 버티는 지경인데도 분에 넘치게 달려있는 사과.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에도 자식들을 줄줄이 달고 살았던 흥부네 같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사과는 호박에 비해 고급 농사이다. 비료 등 영양소를 듬뿍 받고, 햇볕에 찌들거나 해충피해를 막기 위해 봉지까지 씌워주는 가하면, 가지치기로 몸을 가꾼다. 이 정도면 서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 호박에 비해 왕자 대접인 것이다.

과수원 길은 사색의 길이다. 거닐면서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생각하며 내일을 꿈꾸는 동안 온 길을 몇 번씩 되곱아 생각하며 걷게 된다.
나는 산이 좋다. 참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숲. 그리고 병풍처럼 늘어선 소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은, 혼자 거닐기조차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이다. 멀리 산 아래 내가 집들이 작은 점으로 찍혀져 보인다. 

내 집을 장만할 때 나는 아내와 집을 장만할 위치를 잡는데 적잖은 논란을 벌여야만 했다.  그때 나는 가급적 산이 가까이 있는곳에 터를 잡았으면 했다. 내가 꼽은 곳은 칠보산자락 아래였다. 
수원시 중심부를 기준으로 하자면 약간 외진 것이 흠이라고 해도 산자락이 뒤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조용하고 공기도 맑으니 딱 좋았다.

그러나 아내의 직장에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야 하겠기에 결국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지만.
2시간 정도 걸으니 겹겹이 나이테를 지문처럼 지니고 있을법한 소나무숲이 눈에 들어온다. 밑둥치에 툭 불거진 상처에 두터운 송진이 흘러 나와 있다.  몸속에서 무수한 세월을 견뎌 내온 저 흔적들. 온몸으로 자신의 시간을 말하고 있다. 

싱싱하게 파란 솔잎들은 지난시간 그 무더웠던 여름날 햇볓과 최근에 무수히 많이 뿌린 늦장마 빗줄기까지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더 억세지고 단단해진 이파리들이 바람소리를 내며 흔들리는건 더 강인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중년이 되어버린 내 모습과 닮아 있는 저 나무. 저 나무도 이제는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것. 나 또한 세월을 비껴갈 수 있으랴. 
바윗돌에 걸터 앉아 배낭에 싸 들고 온 물을 마시며 다시 소나무의 나이테 숫자를 마음속으로 천천히 세어 본다.  내 삶에 있어서 내적으로 더 충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할거라는 각오와 함께 하산... 행복한 주말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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