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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이 모이면 뭐하고 노세요?
2012-09-29 21:47:57최종 업데이트 : 2012-09-29 21:47:5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주희
자주 만나지 못하던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 추석이다. 부엌에서는 차례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아낙네들의 웃음소리, 전을 부칠 때 나는 특유의 기름소리 그리고 설거지를 할 때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쉬지 않고 먹을 것을 먹거리가 나오는 거실에 있는 남정네들은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한 봉사를 한다. 차례상에 놓을 밤을 까거나 송편빚는 것을 거든다. 한 편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린다. 추석에는 집안에서 음식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 맛에 사람들은 도로위에서 몇 시간씩 앞이 차 뒤 꽁무니만 바라보는 귀성길 정체를 견딜 수 있다.
TV드라마에서나 그려질 법한 이상적인 명절풍경이다. 전국이 반나절 이동이 가능해지고 음식을 간소하게 차리게 되면서 명절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시민기자는 서울로 명절을 지내러 간다. 친할머니께서 서울에서 사셨기때문이다. 할머니께서 이사오시기 전에 시골에서 명절을 보낸 적이 있다고 들었지만 아주 어렸을 때라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시골이라고 해도 경기도여서 귀성길의 숨막히는 도로정체등과 같이 명절에만 누릴수(?)있는 경험들을 해보지 못했다.
다른 집들은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무엇을 하고 지내는 지 잘 모르겠지만 도시에서의 명절은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부터는 명절기분이 반감된 것 같다. 

수원으로 이사오기 전 서울에 살때는 큰 집과의 거리가 가까웠다. 가깝다는 표현보다 붙어있었다는 표현이 적합할까? 걸어서 이동이 가능한 거리였다.
그래서 궃이 명절을 보낸다고 친척들과 모여서 음식준비하고 놀다가 밤늦게 잘 일이 없었다.명절 전날 음식 준비를 도우러 가면 몇시간이면 뚝딱해치우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당일날 아침일찍 일어나 다시 큰 집으로 가면 된다. 

혹자들은 얼마나 간소하고 좋냐며 부러워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자는 아쉽다. 주변 어른들이 기자를 보고 시집가면 시댁에 이쁨받겠다라고 칭찬해주신다. 왜냐면 명절음식을 하고 성가시고 힘들다는 여러가지 명절의 법도를 따르는 명절지내기가 좋다. 그래서 전통과 가풍을 엄격하게 지키고 모이는 사람의 수도 한 반의 인원쯤되는 종갓집의 명절을 꼭 경험해보고 싶다. 

아마 실제로 종갓집처럼 일 년의 제사가 수 십번에 엄격한 방식을 고수하며 만들어야 하는 음식의 종류와 수가 어마어마한 명절을 두 서너번 지내고 나면 혀를 내두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자는 옛것을 좋아한다. 엄밀히 말하면 거추장스러워도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을 따르는 일이 좋고 재밌다.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에 필요한 준비가 끝나면 무엇을 하며 보낼까?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친목도모를 위한 고스톱이나 특선 프로그램을 TV앞에 모여서 보는 집안이 대부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그러면서 안주거리가 풍성하니 술잔도 쉴 새 없이 기울일테고...

한국 사람이라면 고스톱정도는 쳐줘야하는데 기자는 여전히 고스톱을 칠 줄 모른다. 명절날 어른들이 한 판 벌일 때 옆에서 용돈이라도 받으려고 앉아있으면서 자연스레 고스톱 룰을 익히게 된다. 그런데 기자는 어른들이 고스톱을 치는 것을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할만큼 본 적이 없다. 그나마도 다른 집들은 이렇게 하고 논다니까 우리도 한 번 해보자 하며 하셨던 거 같다. 

술? 음복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술도 거의 드시질 않는다. 대신 커피, 차 아니면 식혜나 수정과를 즐겨드셨던 걸로 기억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자는 술이 떡이 되게 마시는 것을 보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술에 휘둘리게 마시는 것을 보면 절제심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래서 환경이 중요하다고들 하는 가보다. 고스톱과 술판, 명절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인데도 접하지 못하고 자라오다 보니 그런 것들과 기자도 자연스레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
혹자들은 그럼 무슨 재미냐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건전하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기자는 어린시절 어른들이 흐뜨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에 감사한다. 

기자가 어릴 때 사촌들과 모이면 가장 좋아하고 기대했던 놀이는 '불꽃놀이'였다.  기자가 초등학교 들어가지 전부터 저학년때까지 부모님이 위험하다고 불꽃놀이를 못하게 하셨다. 기껏해야 한강처럼 대규모로 하는 불꽃놀이 구경만 갔다. 그렇지만 기자는 직접 내 손으로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빛을 눈 앞에서 담고 싶었다. 

친척들이 모이면 뭐하고 노세요?_1
손에 별을 들고 있게 해주는 스파클라

운이 좋게도 명절에 사촌 오빠들이 불꽃놀이를 할 수 있는 폭죽을 사왔고 그 때만은 부모님도 함께 나가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기자는 딸이 귀한 집안의 막내이다 보니 사촌 오빠들이 잘 챙겨 주었다. 그래서 부모님도 안심하셨던 거 같다.
물론 사촌오빠들과 불꽃놀이를 할 때도 불을 붙이는 일는 시켜주지 않았다. 그리고 폭죽에 가까이 오면 큰 일 난다고 잔소리하는 것도 부모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눈 앞에서 황홀한 반짝임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지금도 직접하는 것보다는 눈 앞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 좋다.

불꽃놀이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순서로 하는 '스파클라'를 제일 좋아했다. 가느다란 막대기처럼 생겼는데 불을 붙이는 순간 손에 별을 들고 있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서 가장 좋아했다. 다른 폭죽처럼 시끄러운 소음으로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 얌전한 소녀같은 불꽃놀이 장난감이었다. 
리본처럼 돌리는 것에 따라 다양한 모양이 연출된다. 원을 돌리는 것은 가장 초급수준이다. 하트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여럿이 모여 글자를 하나씩 나누어 쓰면 멋진 단어가 만들어 진다.

밤이 되면 운동장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저마다 폭죽이 들어있을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대부분이 사촌들끼리 나왔을것이고, 이 때부터 집안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 펼쳐진다. 
어느 쪽 불꽃이 더 화려하고 소음이 큰지... 이전에 듣도 보지 못한 폭죽을 가지고 나오면 아이들이 시선이 다 그 쪽으로 쏠린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폭죽 경쟁도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남은 폭죽이 다 소진될 때까지 불꽃놀이를 해야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금은 불꽃놀이를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양을 살 수도 있고 그 때보다 좀 위험한 폭죽을 가지고 질릴 때까지 할 수 있는 공간도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그 때만큼 재미있지가 않은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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