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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에는 아직 사립문이 있다
2012-10-21 10:43:13최종 업데이트 : 2012-10-21 10:43:13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추석 명절에 다녀 온 고향을 어제 오랜만에 갔다. 한달도 채 안된 고향 길이지만 도시에 사는 자식으로서는 더 자주 가 보고싶은 마음에 그 기간조차도 오랜만에가 된 것이다.
어느샌가 좁은 고향집 길에는 한분 두분 옛 고향 어른들이 나타나 저를 반겨주심에 잠시 허리숙여 인사 드리느라 정신이 없다. 

시골집 마루 끝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마당에 널린 고추가 파란 하늘과 색깔전쟁을 치르는 계절이다. 흙내가 그립고, 뒤뜰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홍시가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내 고향집 풍경이다. 오랜 시간이 비켜간 것처럼 어린 시절 할머니 뒤를 따라 개울가로 갔던 토담길이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을빛마저도 여름내 쏟아놓은 녹음을 말리는 듯 바스락거리는 것 같다.

고향집에는 아직 사립문이 있다_1
고향집에는 아직 사립문이 있다_1

이런 정겨운 고향이건만 내 놀이터였던 앞산은 쭉 밀려서 큰 길이 났고, 백두대간의 한줄기였지만 그 알 수 없던 깊이와 위용을 자랑하던 마을 뒷산의 한 가지는 골프장이 생긴다고 밀려버렸다. 왠지 휑~한 느낌과 묘한 을씨년스러움에 고개를 그만 돌리고 만다.
그런 아쉬움에 다시 돌아보던 내 눈에 들어온건 반가운 사립문이었다. 마을어귀에 있는, 고향집의 철망 담장에 그대로 놓여져 있는 그 사립문은 놀랍게도 어릴적 그대로다. 말썽을 일으키고 아버지께 혼나다가 도망칠땐 그 곳이 높아서 숨지도 못했던 곳인데...

이웃과 정을 나누는 통로. 간단한 안부 같은 대화는 굳이 집안까지 모실 필요가 없다. 사립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면 그만이다. 이웃 연배 되는 분이 부모님과 긴요한 이야기가 있어 찾아올 때는 사립문을 안쪽으로 살며시 밀면 되었다. 그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었다.  
사립문은 언제나 오가는 이웃들에게 친근함을 주었다. 거기에는 막힘도 거부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바깥세상을 쉽게 볼 수 있어 좋았다. 거기에는 마실 나온 바람이 머뭇거리지 않고 시원스레 통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잠자리도, 참새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었다.

지금이야 철망 담장이지만 오래전 당시에 담장은 사립문과 연결된 나지막한 흙담이였다. 흙담 밑으로 두 자 폭으로 마당을 일구어 텃밭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텃밭에서 채전을 일구는 일은 나이 드신 부모님의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가을 텃밭에는 가지, 고추, 쪽파, 상추 같은 채소가 가득했다. 싸리 울타리 위에는 호박 넝쿨도 올라가고, 수세미도 올라갔다. 

울타리에 올린 조롱박은 표주박을 만들고, 수세미는 설거지에 요긴했다. 텃밭에서 일하는 부모님의 얼굴에는 항상 즐거움이 넘쳐났다. 사립문 위로 집 앞을 오가는 이웃들의 얼굴들이 정겹게 보였다. 농사 잘 지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웃 할머니. 쪽파와 상추가 부럽다며 수다 떠는 새댁하며.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푸성귀를 뽑아 사립문 위로 전해 주면서 맛있게 먹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주말이면 집나간 자식들이 들르고, 그 때마다 어머님은 이것저것 챙겨 담기에 분주하셨다.   

그런데 몇 년전이었다.
그런 사립문을 없애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명절이나 제사가 있는 날이면 고향집은 너무 작았다. 한 해가 다르게 조카들의 몸집이 커 가니 더욱 좁게 느껴졌다. 하는 수 없이 집 가까운 형제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보다 못한 형이 결단을 내렸다. 오래 전부터 묵혀 두었던 외양간까지 넣어서 본채를 늘려짓는 구상이었다. 주택을 손질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옛 것을 허물기 마련이다. 부모님의 손때 묻은 사립문과 텃밭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연히 부모님은 반대였다. 형이 부모님을 설득했다. 

주택을 고치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 듯했다. 대문 설치 일만을 남겨두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부모님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이웃집을 다녀오신 이후로, 쇠대문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무슨 대문이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식 대문이 영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대문이 제작 중에 있어 낭패를 보게 생겼다. 이제는 아무리 설득해도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사립문을 없애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형은 대문 제작을 보류했다. 지금도 고향집은 사립문이다. 쇠대문을 단다는 것은 부모님의 모든 삶을 빼앗고, 당신을 철창 속에 가두는 것이라는 말씀에는 더 이상 어찌하는 도리가 없었다. 사립문이 세상을 접하는 통로였는데, 그것마저 막아 버린다면 부모님의 마음의 안식처 일부를 떼어내는 느낌을 받는것 같았다.

결국 고향집 사립문은 그렇게 살아 남았다.
부모님의 고향집에는 여전히 아늑한 풍경이 묻어난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토록 고집스레 옛것을 버리지 않고 간직해 오신 노력 덕분일듯 하다. 만약 그때 철대문으로 만들며 사립문마저 없애버렸다면 고향집은 더욱 차가운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고향집에는 오늘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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