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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등산복이 아까운 반토막 산행
규범을 무시한 배려는 덕목(德目)이 아니다
2012-11-07 09:37:33최종 업데이트 : 2012-11-07 09:37:33 작성자 : 시민기자   한주희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께 감사 인사를 드릴 일이 생겼었다. 잘 알다시피, 대부분의 절은 깊은 산 속 옹달샘옆에 위치해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찾아뵈는 스님께서 계신 절은 도심과 가까이 위치한 절이었다. 물론 올라서면 아래에 보이는 봉우리들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산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등산의 시작에는 몇 군데 관문이 뒤따른다.우선 산 아래 주차장에서 산을 향한 예를 갖추고 마음속의 다짐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로움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입장료를 내거나 등산화를 동여 메는 등산로의 입구가 또 다른 관문이다.

그렇지만 깊은 산 속 옹달샘 옆 산 속에 위치한 사찰에 가기 위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산에 오르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적은 절에 도착해서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사찰을 찾아 기도를 한다. 

사찰에서는 오체투지라고 해서 온 몸을 사용하는 기도를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거저 얻고 쉽게 가는 것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잠재우기 위한 수련이 아닐까 싶다. 마음으로만, 머리로만 생각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다해 이루고자 애쓴다는 의미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이 오체투지라는 것이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운동량이 어마어마하다. 한 톱스타가 예능프로그램에서 몸매를 위해 평소 따로 하는 운동은 없지만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도 108배는 꼭 하고 잔다고 해서 더 각광받고 있다.일명 '절체조'라고 불리는데 내가 따라해 본 바로는 배가 쏘옥 들어가고 희미하게 복근이 생길만큼 운동량이 많다.
사찰에 가서 운동에 버금가는 '절'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등산을 하며 사찰에 가는 것이 사실상 체력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대신 사찰에서 운행하는 승합차에 몸을 싣는다. 

스님과의 약속시간이 촉박했고 스님께 드릴 선물을 들고 산에 오를 자신이 없어 사찰에서 운행하는 승합차를 기다렸다. 등산복 차림이 아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사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줄이 늘어선 바로 옆 편의점에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비싼 등산복이 아까운 반토막 산행_1
산에 오를 때는 순수한 아이처럼. 산에 나쁜 물 들이지 않기 위해

승합차가 도착했고 사람들은 질서를 지켜 차에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일행을 기다리는 듯 보였던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승합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 졌다.
12인승 승합차의 정원이 이미 꽉 찼는데도 불구하고 일행을 더 태우려는 볼성사나운 광경이 벌어졌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빵빵한 배낭도 민폐를 끼치는데 거들고 있었다. 엉덩이를 걸쳐 앉을 공간도 더는 없었다. 등산객들은 남아있는 일행까지 함께 태워야 한다며 승합차 안의 사람들에게 포개서 앉을 말도 안되는 요구를 했다.

게다가 등산객들은 이미 정원을 초과한 차량에 더 많은 사람들이 타는 것이 무슨 기록을 세우는 것마냥 재밌어 하기까지 했다. 자기들끼지 하하호호 웃으면서 더 타도 된다고 이렇게 타라고 서로를 독려하고 있었다.
사찰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더는 탈 수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떤 분은 원칙상 승합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사찰에 가는 신도들이지 등산객들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뜻을 전달했다. 

아무리 확률이 적다고 하지만 정원이 초과된 차량으로 꼬불꼬불한 곡선의 경사진 길을 통과하는데 있어서 사고의 위험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도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사고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승합차 안은 등산객과 신도들간의 난데 없는 분쟁이 커지고 있었다. 

등산객 중 한 사람이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어거지의 말을 내뱉았다.
"아니..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마음을 곱게 써야지, 자기들만 타고 가려고 하나. 같이 좀 탑시다"
그 말이 승합차 안에 던져진 순간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종교인이 배려라는 덕목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종교의 구체적인 교리는 다르겠지만 기자가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종교는 배려를 중시한다. 종교와 무관하게 '배려'는 중요하다. 

자기를 반성하는 일을 주기적으로 하는 종교인에게 배려는 수행의 결과이다. 배려가 없는 사람이 열심히 절에 다니고 교회에 다니면 '저 사람은 도대체 종교는 뭐하러 가져?'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만큼 종교를 가진 사람은 더 타이트한 사회적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배려가 중요할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온화하게 웃으며 "그래요. 다 가지세요. 다 내어드릴게요"하며 양보하고 yes맨이 되어야 할까?
불교든, 기독교든 어느 종교를 믿든 사회규범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규범보다도 배려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배려도 규범안에서 할 때 덕목이 된다. 규범을 무시한 배려는 사회를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산에 왜 오르는 것일까? 건강을 위해서라면 승합차를 타지 않고 두 발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욕심이 그득해 비워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비싼 등산복이 아까운 반토막 산행_2
발에 무리가 가지 않는 등산화만 있으면 된다.

값비싼 아웃도어를 차려입고 반토막 등산을 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등산객이든 아니든 하나는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해서 병들게 하고 있다. 그리고도 뻔뻔하게 자연속에서 마음의 안정과 치유를 원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산을 포함한 자연에 들어갈 때는 우리 자신도 최대한 자연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으로 파묻혀야 하지 않을까.

태어난 그 순간의 아기처럼,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는 하얀 캔버스처럼,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처럼...자연그대로의 마음으로 자연에게 나쁜 물을 들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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