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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어린 소녀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2012-11-25 14:31:24최종 업데이트 : 2012-11-25 14:31:24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희

친정 엄마가 담가 두신 김장을 가질러 내려 오라 하셨다. 딸이랍시고 있어봤자 평생 얻어먹기만 하니 마음이 편치 않고 죄송할 뿐이다.
당신이야 아들이건 딸이건, 그 자식들의 나이가 40대건 50대건 따지지 않고 이것저것 만들고 싸 주는게 기쁨이요 행복이라 하지만, 나이 50대가 넘어 아이들까지 다 큰 딸은 아직도 어릴적 먹여주고 재워주던 그때의 철부지 딸처럼 있으니...

토요일 아침, 남편과 함께 내려간 친정 고향은 여전히 포근하고 아늑하게 나를 맞는다. 저녁나절, 산자락 아래 빙 둘러 모여있는 촌락의 굴뚝에선 저녁 밥 짓는 연기가 모락 모락 올라오곤 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보일러에 가스 열기구가 있으니 굴뚝에서 솟아 나는 연기를 볼수 없지만 내 어릴적 고향 마을은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주곤 했다.

어스름한 겨울 저녁, 하얗게 만들어진 굴뚝의 연기가 둥그런 띠를 만들어 산자락 아래 마을을 휘감아 돌고, 산새들도 지친 하루를 쉬기 위해 산밑 대나무 숲으로 들어간 시간. 고요와 평화가 작은 시골마을을 감싸 준다.

어린시절 다닌 학교는 이미 폐교가 된지 오래 됐다. 농촌에 아이들이 없어서 별수 없이 문을 닫은 것이다. 곧 누군가가 학교를 임대해서 농촌형 숙박시설이나 다른 용도로 쓴다고는 하는데 아직은 학생만 사라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그나마 다문화가정을 꾸린 몇 안되는 농가에 아이들이 가뭄에 콩 나듯 있기는 하지만 그조차도 숫자가 너무 적어 학교가 있는 아주 먼 지역에 봉고차로 몇키로씩 데려다 주고 데려 와 준다. 

그때의 어린 소녀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_1
그때의 어린 소녀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_1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사시사철 학교를 오가면서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돌멩이도 보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학교 다니는 것은 항상 즐거움이고 생경했고 호기심으로 넘쳐났다. 
학교를 향한 마음이 너무 좋았던 것일까. 공부를 잘 하지는 않았지만 책은 좋아하고 좀 순한 아이였다.
하루 종일 산울림 쫓다 돌아오던 들길. 별처럼 돋아난 들꽃 위 파도로 말려오는 진달래빛 저녁놀에 넋 잃던 소녀가 자라 지금은 어른이 되어 친정에 왔다. 

시간 속에 삶의 무늬를 아로새기고 개칠하면서. 그 무늬들은 이제 소녀의 개인사에 지울 수 없는 액자 속 한 점 풍경화로 걸려 있다.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회상의 길목에 설 때, 인생의 무게 실린 그 어느 하나인들 그냥 비켜갈 수 있을까.
긴 인생의 여정으로 보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년이라는 시간 속, 눈빛 맑은 그 때의 소녀들이 그립다. 명상의 시간에 눈 지그시 감아 하루의 서장을 열어가던 검게 그을린 농촌의 어린 학생들. 나이 마흔 두셋의 나이를 넘어버린 그 소녀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교단에서 아이들의 어린 몽매를 일깨우고 있거나, 의사가 되어 환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겠거나, 마트 계산대에서 손님에게 물건값을 받고 있거나, 식당에서 고객을 맞이하거나, 어느 그늘진 구석에 빈자(貧者)의 등불을 켜들고 있거나, 하굣길에 우산 들고 마중 나가는 평범한 아이 엄마이거나, 된장찌개 끓여놓고 남편이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에 귀 세우고 있는 전업주부이거나. 

한번은 겨울방학중이었는데, 학교에 장학사님이 오신다고 해서 담임선생님이 가까이 있던 나와 몇몇의 친구들을 불러 학교 청소를 하게 되었다. 방학이었으니 학교에 아이들이 없었고, 당장 급한대로 선생님 눈에 띄인 몇몇의 학생과 선생님은 다같이 유리창에 매달려 벅벅 문지르며 청소를 했다.

그때는 지금과 달라 집에서 들기름을 퍼다가 교실 마룻바닥에 띄엄띄엄 붓고 걸레로 박박 문질러 그야말로 반들반들 윤기가 나게 만들었다. 
선생님도 직접 마른 흰 걸레에 기름을 묻혀 우리와 함께 교실 바닥을 문지르며 청소를 하셨다. 얼굴과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주며 "애쓴다" 하셨던 선생님은 지금 살아 계실까. 살아 계시다면 어디선가 노년을 보내고 계실텐데...

그리운 선생님을 추억하며 학교를 둘러 보니 옛 교문 어귀에 홀로 우뚝한 아름드리 팽나무, 정답게 이야기 꽃을 피우던 친구들과 함께 고무줄 놀이를 했던 학교 뒤쪽 공터는 그대로다.  삘기 뽑던 동산도 그대로고 먼발치 우뚝 서 있는 플라타나스 나무를 훑고 지나던 눈길이 뚝 멈춰 선 자리에 추억의 음영만큼이나 또렷하게 기억나는 우물. 두레박으로 지하수를 퍼 마시던 학교 옆 그 우물이 사고를 막기 위해 육중한 쇳덩이로 덮은 뚜껑만 다를뿐 그때 그 자리에 오롯이 남았는것도 내겐 위안이었다.

나는 이제, 한숨을 쉬며 겨울 속 낯선 이방인이 되어 학교를 등지고 돌아서야 한다. 학교도 곧 주인이 바뀔 터, 풍상이 눌어붙은 희끗한 추억만 간직한 곳이지만 그 아릿한 추억은 두고두고 평생의 행복이다.
이미 수십년이 지난 그 해 겨울 서설 내리던 조회 시간, 막 교실에 들어서는 내 무딘 감성을 화들짝 흔들어 놓던 소녀들의 합창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
그 날 교실 창가엔 소녀들의 시린 눈빛이 계절과 함께 따스한 풍경으로 걸려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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