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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보리밥
보리밥 노래 부르며 먹던 시절
2012-12-05 14:21:25최종 업데이트 : 2012-12-05 14:21:25 작성자 : 시민기자   이재령

옹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보리밥_1
옹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보리밥_1

엊그제 한낮 점심 식사 메뉴로 보리밥이 올라왔다. 아내가 마트에 가서 찰보리를 사다가 씻는다는 둥, 어쩐다는 둥 소란을 피우더니 정말로 모처럼 보리밥상이 차려져 나왔다.
상추와 쑥갓을 버무린 푸성귀와 함께 참기를 발라 쓱쓱 비벼먹으라며 큰 양푼에다가 제법 모양새를 갖춰 나온 보리밥이었다. 

식탁에 들러 앉은 아이들은 이맛살부터 찌푸린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표정에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너희들, 보리밥 싫으냐? 이거 건강에도 좋고 자꾸 먹으면 맛있는 음식이야. 맨날 치킨, 햄버거만 찾지 말고 맛있게 먹어봐."
그러나 아이들은 보리밥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이거 정말, 쌀 살 돈이 없고 가난해서 보리밥 먹였다면 눈물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자기에게 할당된 보리밥 다 먹는 사람에 한해서 이번주 용돈 100% 다 준다는 조건을 걸고 나서야 아이들이 꾸역꾸역 입을 대기 시작했다. 
그런식으로 조건을 대서 뭘 시키는 것도 교육적으로 온당한 방법은 아니라는거 잘 알지만 일단 한번 보리밥 제대로 먹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눈물겨운 보리밥 투쟁'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는 했지만 뭐든지 첫걸음이 어렵고, 시작이 반이고, 백짓장도 맛 들면 낫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밥 먹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며 식사를 했다.
"너희들 보리밥에 관한 동요 아는거 있으면 한번 불러봐"
다시 나의 주문을 받은 아이들이 즉시 동요를 부른게 아니라 서로 제녀석들 얼굴만 마주 볼뿐 꿀먹은 벙어리다.
"너희들, 싸이가 부르는 강남 스타일이나 아이돌 가수 노래는 좔좔 꿰면서 동요 하나도 제대로 아는게 없지? 에구, 쯔쯔쯧"
내 눈에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요즘 아이들이다.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보리밥~ 이런거 들어봤냐? 요즘도 배우니?"
내가 부르고 배웠던 꽁당 보리밥 노래를 불러주자 아이들은 또다시 꿀먹은 벙어리다. 
지난 토요일 점심식사때 보리밥을 먹던 아이들의 표정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잊고 사는 동안 아이들에게 가끔은 좀 일깨워 주고 되새겨 주워야 할게 있는 듯 하여 나 스스로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

보리밥의 영양가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은 사실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큰 부분은 차지하지 않는다 해도 부모들이 어릴적 어떻게 자랐는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그 위 어른들이 과거에 어찌 사셨는지 조금은 이해하고 사는게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나쁜 일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가끔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반추해 보면 쌀독 안엔 곡식이 다 떨어져 할머니의 한숨만이 바가지에 가득 담겨 나오던 늦은 봄을 잊을 수가 없다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보리 수확이 한참 남았는데 식량은 바닥을 보인 것이다. 아직도 잎줄기가 퍼렇게 살아 있는 보리를 베어 춘궁기를 넘겨야 했다. 

언제인지 정확한 기억이 없으나, 그 보리마저 빨리 찾아온 장마로 모두 썩히고만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장마가 길어져 보리 낟가리에서는 새파란 싹이 잔디처럼 돋아났고, 싹 난 보리 이삭을 탈곡하여 사카린을 넣고 삶아 먹었다는 것이다. 아마 햇고구마가 날 때까지 그렇게 참고 살았지 싶다. 
나야 보릿고개를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릴적에 보리밥은 참 많이 먹었다. 대체로 쌀 30%에 보리 70%정도였다. 

그래서 중장년층에게 보리밥은 추억의 밥이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던 학창시절, 혼식장려 때문에 도시락은 반드시 잡곡밥을 싸야 했고 더 가난했던 집에서는 쌀밥은 고사하고 보리밥으로라도 끼니를 때울 수 있었으면 다행이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우리가 꽁당 보리밥 동요를 부르던 시절만 해도 가난의 상징이었던 보리가 요즘은 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이들의 부모인 우리네, 그리고 우리네의 부모님들의 피땀어린 노력 덕분 아닌가. 아이들이 그런걸 알고 가는게 교육이지 싶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아~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이 대중가요의 노랫말에 나오는 오월의 보리는 우리에게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우리는 보리에 대해 두가지 감정을 갖고 있다. 푸르게 펼쳐진 보리밭을 보면 아름다운 서정과 함께 보릿고개가 떠오르고, 보리밥을 보면 건강에 좋은 구수한 잡곡밥이라는 느낌과 함께 가난했던 시절의 배고프고 서러운 음식이라는 정서가 겹쳐지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보리밥을 함께 먹자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건강은 둘째 치고라도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간접 체험인 것이다. 저희 녀석들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먹기 힘든 것처럼 엄마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어려웠던 시절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는 것이 교육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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