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장가드는 친구 함 팔았어요
2012-12-12 11:21:49최종 업데이트 : 2012-12-12 11:21:49 작성자 : 시민기자   유남규
"야 현석아, 함 풀 때 쉽게 풀려야 신혼집이 잘 산다고 하더라, 신부댁에서 한번 휙 잡아 당겼을때 샥 풀리게 살살 잘 묶어라."
"응 알았어... 그런데 이거 그냥 훔쳐 매면 안되는 거구나! 근데 안 묶고 어떻게 싸냐?"
"일단 둘러메보자."

대학때 단짝이었던 우리 친구들. 그중에서도 얼굴이 기생 오래비처럼 제일 잘생겨 허구헌날 강의 빼먹고 연애질 하러 다닌 진호라는 놈이 장가를 든다 해서 우리 친구들은 함 팔 준비를 서둘렀다. 함 파는 일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작년에 다른 친구 장가들때 한번 함을 팔아 본 전례가 있는 우리여서 이번에는 그래도 그때보다는 나았다.

"이제 명호가 여자들 덜 건드리면 우리 차례가 돌아오겠지? 낄낄낄"
열심히 함을 묶던 현석이가 세상의 여자란 여자는 죄다 만나러 다닐 정도로 오지랖 넓은 친구가 결혼한다니 이 또한 기쁜 일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 쉬며 한마디 거들었다. 
처음 묶는 함을 둘러쌀 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몰라 고전을 했지만 어찌 어찌 매듭을 마치고 신부 댁으로 차를 몰아 갔다.

"함 사시오. 함이요!! 함 사시오. 함이요~"
신부가 사는 충청남도 천안의 동네에 도착 하자마자 친구들 중에 목소리 제일 괄괄한 석천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함은 그렇게 파는 게 아녀"
"그렇게 힘들게 서 있지 말고 여기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아서 버텨, 그리고 앞에 고깃집에서 고기 한접시 달래서 탁배기 한잔씩들 혀...함 사는 집에 달아놓으면 되쟎여"
"오징어 다리는 뭐에 쓸려고? 오징어 다리는 이럴 때 안주감으로 쓰능겨."

장가드는 친구 함 팔았어요_1
장가드는 친구 함 팔았어요_1

우리가 신부집으로 향하는 골목에서는 함 사가라는 고함 소리에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들어 한마디씩 거드는 소리에 조용하던 토요일 시골 마을이 어느새 왁짜지껄 소란스러워졌다. 
혹시 우주선이 달나라 왕복하는 세상에 무슨 함 타령이냐며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조용히 하라며 항의할까봐 걱정도 됐었지만 우리의 함 팔기 작전은 그렇게 무르익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느 곳에서는 경찰까지 출동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자신들의 일처럼 이것저것 요령을 기분좋게 일러주시는 동네 어르신들 덕분에 그런 걱정은 기우가 됐다. 그래도 아파트 단지보다는 주택가가 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인가보다.

원래 함은 쉽사리 내주는게 아니라고 배웠다. 함은 당연히 들어가야 하지만 이런 무대접을 받고 들어갈수 있겠냐는 매파와, 그래도 친구 함 파는건데 적당히 하고 들여주자는 비둘기파가 팽팽히 맞섰다.
"야 배고프다. 나오면 무조건 먼저 술상 좀 봐달라고 하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던데"
"야, 기왕이면 한잔 걸치고 들어가야지.  소주 말고 양주 달라고 해 양주."
함 팔면서 먹을 궁리부터 하는 친구, 술 종류를 챙기는 친구... 그 사이 신부측에서 일단 우리의 전략(?) 파악 겸 1차 협상대상자로 신부의 친구 2명에게 술상을 받쳐들게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신부 친구들을 보자 우리측의 '버티기' 전략의 절반은 벌써 무너졌다.  그런데 함 팔기 초보생인 우리처럼 신부측 친구들도 이런 경험이 많지는 않은 듯 수줍게 웃었다.  
"일단 한잔들 잡수고 하세요." 
잘 차려진 안주와 맛 좋은(?) 막걸리가 담긴 술상을 들고 나온 나긋나긋한 신부 친구들의 권유에 우리는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함진아비부터 한잔 받아먹어라."
"자~ 한잔 받으세요, 자 여기 옆에 친구분들도 한잔씩 받으시고요"

그렇게 한잔 걸치며 조율을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양측의 의견을 청취하고 분주하게 뛰어 다니는 협상파까지. 참 재밌는 광경이었다.
상대방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우리가 함을 들이기만 하면  원하는거 다 들어주겠다며 협상을 요구하는 고모님, 이모님들, 그리고 신부측 친구들까지. 
하지만 그렇게 버틸거면 맘대로 하라는 신부 작은아버지등 그쪽의 강경파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에게 불을 확 지르신 동네 아저씨 "절대 여기서 밀리면 안된다"며 단호하게 대하라고 주문하셨다. 제 3자의 이 발언 한마디에 함은 쉽사리 넘겨지지 않았다.
솔직히 우리들을 유혹하기 위해 제시된 '당근' 때문에 우리도 쉽게 넘어갈뻔 하기는 했다. 길다랗게 놓여진 흰봉투들과 술상들이 우리의 눈을 자극했지만 "너무 재미없게 한다"또는 "더 소리를 질러라, 그렇게 팔려면 내가 함을 사겠다"는 등 주변 어르신들의 농담도 우리가 함을 넘겨주지 못하게 하는데 한몫했다. 

시끄럽다며 불평을 하는 동네사람들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멋 옛날 당신들의 청년시절을 보는 듯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고 요령도 알려주며 재미있게 하도록 노하우를 즉석에서 전수해 주셨다. 오랫만에 다들 즐거워하시고,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운 인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결국 신부 어머님이 뛰어 나오셔서 아주 진지하게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 별도의 뒷풀이 비용까지 약속하시겠다는 말씀에 껌뻑 죽고 집안으로 들었다. 그날 함 팔기는 기나긴 여운을 남긴채 참 재미있게 끝났다.
처음 팔아본 함,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만 가지고 소중한 전통의식을 맛보고... 난 지난 주말은 참 재미있게 기억에 남는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