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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마을의 즐거운 점심 식사
2012-12-16 14:44:44최종 업데이트 : 2012-12-16 14:44:44 작성자 : 시민기자   임윤빈

"아, 아... 말코(마이크) 시험중!. 아, 아, 에... 오늘 점심때 회관에 점심 식사가 준비 되니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나오셔서 점심식사를 같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열두십니다. 열두시. 다시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에..."
확성기를 통해 공지사항이 전해진다. 그리고 한두시간 후면 마을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회관을 향할 것이다. 1주일전에 내려서 아직도 녹지 않은채 빙판길이 돼버린 탓에 어른들이 낙상하시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토요일 아침 일찍 내려간 눈 쌓인 고향. 
고향 마을은 회관에서는 이렇게 한겨울 농한기가 되면 마을 전체가 1주일에 두 번씩 공동으로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계셨다. 
연세가 드시고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대다수이기에 어르신 두 분과 젊은 사람 하나가 한조가 돼 일주일에 두 번씩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한다. 젊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이가 오십이 넘어 환갑 전후들로 그나마 몇 명 되지는 않지만 열심히 밥들을 짓고 함께 나누곤 하셨다. 

고향마을의 즐거운 점심 식사_1
고향마을의 즐거운 점심 식사_1

나의 경우 손님 아닌 손님 대접을 받는다. 어릴적 자라던 고향에 찾아갔으니 손님이 아닌게 맞지만, 어르신들 눈에는 멀리서 고향을 찾아 주었으니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김치 한조각, 과일 한 개라도 더 챙겨주시며 많이 먹으라고 일러 주신다. 
7순, 8순이 넘으신 어르신들이 그러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내려간 날은 마침 친정 엄마가 노인쪽 당번이 되어 식사를 준비하는 날이다. 엄마와 한조가 된 두 분은 아랫마을 장삼이네 큰엄마였고, 서당골 희춘이네 할머니셨다. 
어르신들은 아침을 끝내기가 무섭게 우리 집에 찾아 오셔서 채근을 하신다.
"빨리빨리 서둘러야 하는데 안즉두(아직도) 준비 안허구 뭐하능겨. 딸이 왔으믄 딸 헌티도(에게도) 맛난것 먹여야제. 어이구, 나는 걱정이 되야서 밤새 한숨도 못 잤당께."

부리나케 준비를 마친 후 엄마와 두 어르신을 모시고 어제 시장을 봐온 재료들을 나누어 들고 회관으로 갔다. 
먼저 콩나물을 손질해 여러 번 깨끗이 씻어서 건져 놓고, 커다란 양은솥을 꺼내 국을 안쳤다.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두부도 먹기 좋게 도톰하게 썰어 놓았다. 한쪽에서는 시금치를 데쳐 낼 물이 팔팔 끓고 있다. 

장삼이네 큰엄마는 계란찜을 하려고 계란을 수북이 깨놓고 양념 준비를 하고 계시다. 희춘이네 할머니가 시금치와 콩나물을 데쳐 내는 동안 나는 쌀을 씻었다. 모처럼 많은 쌀을 씻다보니 양이 많은 뽀얀 쌀뜨물이 그냥 버려지고 있다. 아깝다. 집에서라면 화초에라도 부었으련만.

시금치와 배추 겉절이 무침을 하려고 기름뚜껑을 열자 색깔 고운 참기름이 왈칵 쏟아지며 진하고 고소한 냄새가 방안 가득 퍼진다. 
호호호. 고향 들판에서 잘 자라서 맛나게 볶아지고 짜 내어진 진짜배기 웰빙 참기름. 그 어떤 불순물 단 한방울도 안 섞인 그것의 향긋한 버무림에 배추 겉절이 무침은 벌썹터 침이 꼴깍 넘어가게 한다.
회관 안으로 들어서는 분들마다 한마디씩 하신다.
"야~아! 뭐여 이거? 그 냄새 한번 좋은디..."
시금치나물 역시 제철을 만나서인지 달착지근한 것이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머니들은 들어오시는 대로 누구랄 것도 없이 팔을 걷어 부치며, 김치를 썰고 수저를 놓으며 상차림을 돕고 나선다. 밖은 때 아닌 이미 1주일전에 내린 눈으로 하얗게 들판이 채색되어 있어 그 정겨움은 더없이 포근하고 행복했다. 

점심식사를 하시러 오시는 고향 고향 어르신들의 밝은 웃음과 건강미 넘치는 얼굴을 뵈니 반갑고 기쁘기만 하다. 
많이 드시고, 많이 웃고, 많이 이야기 나누시고, 그 자리에서 다같이 신나는 윳놀이 한판 즐기시고 헤어지는 주말 한낮의 시골 마을회관. 거기에 내 고향의 애잔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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