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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서점이 안타까워
2012-12-20 09:41:09최종 업데이트 : 2012-12-20 09:41:09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밖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아이가 책좀 사다 달라며 전화를 했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책은 문제집 한권과 교양도서 두권이었다.
책을 읽는다는데야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만 약간 의아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이가 평소에 늘 다니던 서점이 있고, 제 엄마더러 돈을 달래서 사러 가면 될 일을 왜 나에게 전화 했지?

이놈이 그것조차 꼼지락거리기 귀찮아서 아빠더러 심부름 시키는건가? 책을 읽는다는 기특함보다 슬그머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빠가 사다 주는건 어렵지 않은데, 집에서 가까우니 네가 좀 갔다 오는게 좋지 않겠니? 아빠 조금 바쁜데"
전화를 걸어 아이가 다녀오도록 말했더니 아이에게서는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아빠, 지금 시내에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부탁드리는거예요. 아빠는 그 서점 문 닫은거 몰라요? 벌써 열흘도 넘었는데"
"뭐라구? 그 서점이 문을 닫았어? 그랬구나..."

집에서 직선 거리로 200m밖에 안 떨어진 곳에 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문을 닫았다는 아이 말에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필경 영업이 안돼서 문을 닫았을 것이다. 동네 책방이다보니 그럴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동네 책방치고는 수삼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서점이기에 그럭저럭 장사는 되나보다 싶었는데 갑자기 문을 닫았다고 하니 뜻밖이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건 우리가 책을 안읽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 서점은 평소에 가 봐도 아주 친절하고 괜찮은 서점이었기에 달리 망할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하긴 평소에 가 봤던 서점 안의 풍경을 기억해 보니 아이들과 주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문제집과 참고서를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주부들도 역시 자녀들의 손을 잡고 와서 문제집이나 영어 참고서 장도 사 주는것을 흔하게 보아왔다. 

다른 업소는 몰라도 주변에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은 그 후로 며칠간 마치 오랜 벗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처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서점은 내가 중학교 시절에 '갈매기의 꿈'을 사서 읽게 한 곳이고, 고등학교때는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샀던 곳이다. 대학시절에 읽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도 서점에서 책을 샀다.

좋은 책은 빌려보기 보다는 주로 돈을 주고 사서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들 모두 지금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에 책을 사서 읽은 것이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활자의 길로 안내해주었던 서점들이 장사가 안돼서 자꾸 문을 닫는다고 하는 소식은 참 안타까운 일이아닐수 없다. 

동네 수퍼도 아닌 서점은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준다.  책이라는 특별한 상품은 판매와 소비라는 일반 장사의 개념이 아니라 어린이든 어른이든 책을 사는 누군가에게는 철학적 고찰과 지식의 전수를 담당하는 소중한 공간이기에 더욱 그렇다.
요즘 온라인과 디지털로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지만 서점이란 이런 온라인 공간에서는 전혀 느길수 없는 그 특유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묵직하게 다가오는 활자의 잉크 냄새와 책에 쓰인 종이의 향기. 그것은 진정 우리의 인생의 향기이기도 한것이다. 

문 닫은 서점이 안타까워_1
문 닫은 서점이 안타까워_1

서점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늘 열린 공간이었다.
가지런하게 순서에 맞춰서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마치 오랜 세월을 누리면서 축적된 지층처럼 우리를 반긴다. 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그 지층을 하나 건져 올리고 펼쳐 들었을 때 밀려드는 느낌은 컴컴한 숲 속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받으며 환하게 떠오르는 공터를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공터에서 누구라도 책을 집어 들고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읽을 수 있고, 저자들을 살펴보고, 시리즈의 내용을 살펴보고, 출판사를 확인하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서점이 제공하는 일정한 안정감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었다. 

이런 각별한 서점과 책의 의미 때문에 나는 집 가까이에 있었던 서점의 영업중단이 두고두고 아쉬울 뿐이다.
그 서점, 혹시 다른 도시나 수원의 다른 지역에 가서 다시 영업을 개시한다면 이번에는 꼭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지역 주민들에게 향기로운 책의 내음을 선물해 주는 지역 명소로 자리잡기를 기원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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