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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절대자, 삼신할머니
2012-12-27 11:17:29최종 업데이트 : 2012-12-27 11:17:29 작성자 : 시민기자   윤석천
고향의 어머니께 휴대폰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무척 숨차게 받으셨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 염려되어 여쭈었더니 시루떡을 하시려고 읍내에 쌀을 빻으러 가셨는데 빻을 쌀을 이고 가시다가 방앗간에서 막 내려놓는 참이라고 하셨다.
웬 떡?
이거 정말 웬 떡인가 싶었다. 누구 생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설도 아직 멀었는데. 어찌 된 일인가 싶어 혹시 동네에 무슨 잔치라도 열려서 어머니가 떡을 담당하셨나?

그게 아니었다. 
"늬덜, 금년 1년간 아프지도 않고 무탈하지 않았냐. 조상님께 감사하고 삼신 할머니한테 고맙다고 절 드릴라구 그런다"
어머니의 말씀에 그제서야 "아하" 싶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삼신할머니셨다. 어머니는 삼신할머니께 드릴 떡을 찌을 쌀을 빻으러 그 무거운걸 이고 버스에 올라 읍내에까지 가신 것이다. 돌아오는 31일 밤에 떡을 찌으실거라며.

나를 낳을때도, 형님과 누님 등 우리 가족 형제들을 낳을 때마다 어머니는 삼신할머니께 자식을 잘 갖게 해달라고 빌으셨고, 또한 산달이 가까워 오면 잘 낳게 해 달라고 빌으셨고, 자식들을 다 낳아 자랄때도 항상 무탈하게 잘 크도록 빌으셨다는 삼신할머니였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해마다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그 첫 햅쌀 햇곡식으로 떡과 음식을 장만해 장독대에 올려 놓고 감사의 예를 드렸고, 자식의 생일 떡을 해서도 맨 먼저 장독대의 삼신할머니께 먼저 바치셨다
또한 해마다 연말이면 이렇게 쌀을 빻아다가 직접 떡을 만들어 올려놓고 가족들의 무사무탈과 건강과 승승장구를 빌어주셨다.

어머니의 절대자, 삼신할머니_1
어머니의 절대자, 삼신할머니_1

요즘은 떡집에 돈만 주면 당장 떡을 만들어 준다. 아주 편리해진 세상이다. 돈 대신 떡의 재료인 쌀을 갖다 주고 수고비를 줘도 떡을 찌어 준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떡은 이렇게 공장형 떡을 쓰더라도 삼신할머니께 공을 드리는 떡은  반드시 쌀을 직접 빻아다가 집에서 떡을 만드신다. 당신이 농사지은 팥을 불려서 익힌 다음 잘 갈아 켜켜히 시루떡을 만들어 큰 접시에다 한가득 담아 삼신할머니께 갖다 바치시는 것이다.

태초에 그분이 계셨고, 그분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게 하여 억겁의 연을 만들어 주셨으며, 그분이 다시 자식들을 여럿 점지해 주셨으니 평생 가도록 그분이 계속 보살펴 주시리라는 믿음이 어머니께는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12월31일 12시와 1월1일0시가 되는 그 사이에 장독대에서 제를 올렸다.

당신이 그토록 정성스레, 떡을 기본으로 하여 밥과 미역국, 정화수, 나물 등을 올려놓은 상에다가 가족들을 잘 보살펴 달라며 삼신에게 기도드리는 의식은 당신이 살아계시는 동안 일종의 의무처럼 계속될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은 전통 무속을 미신으로 여기고 쓰잘데기 없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지만, 인간의 생각과 행동 가운데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해부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단지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무속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무속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니라고 본다. 
무속에서는 천지가 저절로 어떤 운행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많은 신들이 우주의 질서, 세상의 질서를 주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인간은 그들 신들 중 어떤 신에 의해 점지된 존재로 본다. 무속의 신은 그 종류와 성격이 무궁무진하다.

우스갯소리지만 아마도 대한민국 농촌지방을 중심으로 각 가정마다 혹은 마을마다 개인적으로 섬기는 무속 신들을 다 합하면 수백 수천명 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무속의 신은 인간의 관심과 정성이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지 있으며, 무속의 신을 통하여 역으로 인간 삶의 중요 관심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갖게 해주는 신, 아들 딸 대학에 붙게 해주는 신, 이사 간 새집에서 잘 살게 해주는 신, 새로 시작한 사업 잘 되게 해주는 신, 바닷가에서 풍랑 안 만나게 해주는 신, 고기 많이 잡게 해주는 신... 이루 다 헤아릴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우리들 가슴속에 있는 무속 신이다. 그게 곧 믿는 사람들에게는 가슴 절절한 신앙인 셈이다.

이 자체를 굳이 신앙이니 종교니 하면서 학문적으로 따지고 들어갈 필요도 없다. 그저 우리네 삶에 평온과 행복을 지켜주는 막연한 그 어떤 믿음, 그것이 무속 신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우리 내면에 잠재하면서 지켜주리라는 자기 믿음을 주는 나만의 절대자. 이분이 바로 고향에서 우리 어머니들이 믿고 의지하며 당신과 당신의 가정을 잘 지켜준 분들이다.

이런 조화로운 전통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항상 가정의 평화를 기원해 주시는 어머니께 나는 그래서 더욱 감사해 한다. 
"어머니, 삼신할머니께 제 마음도 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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