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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절 어느 겨울, 라면에 얽힌 추억
2012-12-27 12:38:05최종 업데이트 : 2012-12-27 12:38:05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석원
지금이야 아이 한둘만 낳아 기르지만 보통 너댓명은 기본이고 한 집에 자식들만 옛닐곱씩 되던 때가 있었다. 내가 태어난 50년대와 그 이전, 그리고 그후 70년대 까지 태어난 사람들의 가족은 대개 다 그랬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땐 다 애국자였다.

촌동네에서 가난한 농삿꾼 살림에 강아지 새끼들처럼 꼬물거리는 대여섯명씩 키우려니 부모님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낳아 놓기만 하면 밖에서 감자 고구마 캐먹고, 먹을거 없을때는 남의 집 담장 너머 감 대추도 슬그머니 서리해서 따 먹으며 다 알아서 컸다. 

우리 형제는 자그만치 6남매였다. 나는 4남2녀중 아들로만 넷째였다. 시골에서 힘들게 자라면서 참 파란만장한 청소년 시절을 겪어야 했다. 그중에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은 '생계란 프라이드 라면'이었다.
없는 살림이니 시골에서는 라면도 엄청난 고급음식이었다. 그래서 라면은 두어달에 한번 먹을까 말까한 특식이었다. 

가난한 시절 어느 겨울, 라면에 얽힌 추억_1
가난한 시절 어느 겨울, 라면에 얽힌 추억_1

하지만 많이 사다가 배부르게 끓여 먹은게 아니었다. 간신히 한봉지 사다가 묵은 배추김치 듬뿍 썰어넣고 거기에 국수가락 혹은 수제비 뚝뚝 떠 넣고 끓였다. 
즉 라면 1봉지를 가지고 6남매용으로 끓였으니 주 음식인 라면 외에 국수 수제비와 김치가 얼마나 많이 들어갔겠는가.  허여멀건한 김치국수 짬뽕 국물과 쭉 빠진 국수가락 사이에서 어쩌다가 꼬불거리는 라면가락을 하나 낚시질 해서 건져 올릴때, 이루 말할수 없는 쾌감이란.... 시골에서 이런 라면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말할수 없는 행복감을 결코 모를 것이다. 

그렇게 꿋꿋하게(?) 자라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읍내 시장에 가신 아버지가 라면을 두봉지나 사가지고 오셨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날, 부모님이 큰 형, 둘째 형과 함께 산으로 땔감 나무를 하러 나가신 틈에 집에 남아있던 우리 4남매는 석유풍로에 라면을 끓여먹기로 만장일치 합의를 보았다.
평소에 1봉지를 가지고 김치와 국수가락을 왕창 넣어 끓인 6인분만 먹다가, 4명이서 2봉지를 먹을 생각을 하니 그 감격스러움에 가슴이 다 벌렁거렸다. 

라면은 부엌에서 셋째 형과 누나가 끓였고 나와 여동생은 부엌 바깥의 안마당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1월 한겨울 날씨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며 무척 추웠지만 6살박이 막내 여동생과 나는 방안에 앉아있지 못한채 마당에 나와서 손을 호호 불며 형아와 누나가 부엌으로 불러주기만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무척 추운 날씨에다 라면 요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긴장해서인지 여동생은 꽁꽁 언 콧구멍에서 질질 흘러 내리는 누런 콧물을 옷소매로 훔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 라면 먹자"
그때 드디어 부엌에서 우리를 부르는 형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의 복음(福音)같은 소리였다.
"다 됐어! 형아!?"
나와 동생은 용수철처럼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부엌 바닥에 앉자마자 누나가 라면이 끓은 냄비 뚜껑을 확 열어 제꼈다. 
아...그런데! 그 순간 '참사'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밖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부엌으로 들어간 여동생의 코에서 낙하한 한줄기 누런 콧물이, 뚜껑을 열자마자 확 올라온 뜨겁고 하얀 김을 들이 쉰 여동생의 코에서 내려온 그 싯 누런 콧물이 그냥 라면 냄비 속으로 퐁당 빠진 것이다.
냄비 앞에 모여 앉은 우리 4명중 누구도 아무 말을 못했다. 그리고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 안먹을래"
성격 까칠한 셋째 형이 조용히 말하며 먼저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그 대망의(?) 라면을 코 앞에 두고 콧물 때문에 안먹는다는 결심을 할 정도면 형의 기분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문제의 사고를 친 막내 여동생은 제 코가 빠졌으니 더러울 리가 없었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만 앞섰는지 거의 무표정한채 언니 오빠들의 처분만 바라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이번엔 누나가 입을 열었다.
"너, 일부러 그랬냐? 라면 혼자 먹을라구?"
헉,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막내 동생한테 그런 말을 하는건 고문이었다.  급기야 동생이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 냄비를 쳐다보니 싯누런 콧물이 뜨거운 라면 국물에 빠지면서 응고돼 떠오른게 보였다. 순간 내 머릿속에 전광석화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형아, 이거 계란 후라이같이 안생겼어? 이거 콧물이 아니라 계란 후라이라니까.... 우리 이거 건져내고 기양 먹자!" 
다시 셋째 형아가 부엌 천정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부엌 안은 더 무거운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그날 라면은 콧물을 빠트린 동생과, 그걸 계란후라이로 생각한 나와 단 둘이서 배 두들겨 가며 먹었다. 가난하던 시절 어릴적 한겨울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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