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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리본좀 달지 마세요
2013-01-01 23:29:55최종 업데이트 : 2013-01-01 23:29:55 작성자 : 시민기자   권정예
신년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활기차게 시작하기 위해 지난주 토요일 올해의 마지막 산행을 나섰다. 이미 지난번부터 눈 내린 겨울산에 가고 싶어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기에 가벼운 준비물과 함께 옷을 챙겨 입고 목적지로 향했다. 장소는 가평의 축령산이었다.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은 10시반에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역시 산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어느새 어느 곳에서들 몰려들었는지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에 많은 등산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도 산행에 앞서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날씨도 바람도 없이 청명하고 날짜도 잘 잡은것 같았다.

서로들 밀린 이야기도 나누고 쌓였던 스트레스도 산에다 좀 풀고 갈 생각으로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꺼내 놓으며 정담을 주고 받는 사이 몸에서는 슬그머니 온기가 올라왔다. 내복까지 끼어 입은 몸 안에서 열기가 솟는다.
산은 예상 했던대로 그야말로 온통 하얀 눈으로 온 산야가 뒤 덮힌듯 탄성을 자아내게 했는데 눈길을 따라 오르게 되니 왜 진작 이런 상행을 더 자주 안했을까 싶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상쾌해 지고 홀가분 했다.

그렇게 30분쯤 걸었을까.
등산로를 따라 양 옆으로 늘어선 나무마다 뭔가 보인다. 자꾸만 보인다. 그 숫자가 갈수록 늘어난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그것은 다름 아닌 산악회 리본이었다. 산악회들이 자기네 산악회를 선전하는 리본이 마치 과일나무에 과일이 열려 있듯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지저분 하고 보기에 흉칙했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나무에 이게 무슨 짓이람."
오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혀를 찼다. 

산악회 리본좀 달지 마세요_1
산악회 리본좀 달지 마세요_1

마음 같아서는 눈에 보이는 족족 죄다 칼로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꺼려졌다. 왜냐하면 내 앞이나 뒤에 그 산악회회원 누군가가 다니면서 자기네 산악회 리본을 왜 떼어 내냐고 따지고 들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리본을 보면서 마치 무당들의 신령이 깃든 산인가 싶을 정도였다. 어릴적에 시골에서 상여가 나갈 때 온 동네 사람들이 대나무에 매달아 들고 갔던 만장 같기도 했다.

다른 산에서도 안본건 아니지만 유난히 더 거슬리고 신경이 쓰인 이유는 2012년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마음에 오른 산행길이기에 그런 잡다구리한 것이 신경쓰이고 짜증나게 하고 산행을 즐기는 마음을 잡치게 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급기야 우리 바로 옆에서 아빠를 따라와 함께 산행을 하던 어느 중학생쯤 돼보이는 아이가 제 아빠에게 하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빠, 이거 하나씩 떼어다가 신고하면 리본 한 개에 1000원씩만 상금으로 주면 우리 떼부자 되겠다. 그치"
맞다. 맞는 말이다. 그 학생 말처럼 그런 제도라도 만들어야지 이게 무슨 천박한 행동인가.

산행길에 마구잡이로 나뭇가지에 달아 놓은 빨주노초 리본을 보면서 내가 예전에 미국에서 경험한 캠핑 방식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미국에 있는 한국인 가족과 차에다가 밥통이며 각종 필요한 식기도구와 텐트를 준비해서 여행을 떠났었다. 
여행 첫날, 저녁 8시가 넘어서 한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관리인은 퇴근하고 없었지만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니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격은 한 구역 당 약1만5천원이었고 본인이 직접 구역을 선택해서 안내소에 배치되어 있는 봉투에 그 구역번호를 적고 돈을 넣어 사물함에 넣도록 되어 있었다. 관리인이 없어도 본인 스스로가 등록할 수 있게 시스템이 짜여져 있는 것이다. 
일단 차로 야영장을 둘러보았다. 각 구역마다 주차장, 텐트장, 나무로 짠 벤치와 식탁, 그리고 장작불을 피울 수 있는 시설까지 있었다. 

텐트를 친 후 비를 대비해서 도랑을 만든 다음 잠을 잤다. 
그렇게 잠에 떨어진 다음날 아침 9시가 좀 넘었을까. 어느새 공원 관리인이 와서 우리를 깨웠다.
도랑을 만든 것이 문제였다. 우리가 배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도랑을 파면서 거기에 살고 있는 풀과 이끼가 뽑혔다면서 빨리 다시 복구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린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풀, 즉 우리가 말하는 잡초가 뽑혔으니 그걸 원상복구 해 놓으라고? 그까짓 풀 한포기 때문에?
그러나 황당하다는 생각은 그 순간 짧게 끝났다. 그 풀 한포기, 잡초 한포기와 손바닥만한 이끼조차도 그들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마음에 존경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에 산악회 리본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내가 미국에서 경험한것과는 정말 대조적이다.
이런 행동들은 이젠 좀 안할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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