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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치 혀 아래 도끼 든다 했으니
막말이 난무하는 사회에 대한 반성
2013-01-18 12:30:21최종 업데이트 : 2013-01-18 12:30:21 작성자 : 시민기자   남준희
퇴근후 피곤함을 못이겨 꾸벅꾸벅 졸면서 비몽사몽 헤매던 지하철 안에서의 저녁 7시쯤. 갑자기 차내가 소란스러워졌다.
"할아버지가 잘못했잖아요."
"내가 왜 할아버지야. 이 여자가 증말? 말조심해 너!"
"아니, 누구보고 너래요?" 

70대로 보이는 노인과 40대 후반쯤으로 가늠되는 아주머니가 서로 언성을 높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노인은 호주머니에 넣어둔 동전을 꺼내어 확인하려고 여러 차례 손을 넣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이를 성추행으로 오해했던것 같았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노인은 기어이 "별 볼 것도 없는 못생긴게..."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더 난감한 것은 할아버지의 그 말을 들은 주변 승객들이 큭큭대며 웃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그 수치스럽고 험악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던지, 때마침 목적지에 도착해서였는지 아주머니가 서둘러 내리는 바람에 말다툼은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편치 못했다. 

세 치 혀 아래 도끼 든다 했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또는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말을 함부로 내뱉다가는 큰 재앙을 만난다는 뜻이다.
전철 안에서 할아버지와 아줌마의 대화 내용을 되새겨 보면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할아버지의 말이 너무 심했다.
물론 오해한 나머지 죄없는 할아버지에게 성추행이라는 죄를 덮어 씌운후 고래고래 소리 친 아줌마도 실수는 했다.

어쨌거나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과 던진 돌은 되찾을 수 없다는 격언이 얼마나 위중한지 먼저 깊이 깨쳐야 함을 깨닫게 한 일이었다.
이게 알고 보면 우리 주변의 매사가 다 그렇다.

얼마전에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 넣은 사건이 있었다. 다름 아닌 법정의 판사가, 그것도 자기의 어머니뻘인 어느 할머니에게 재판 도중에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는 말을 해서 온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급기야 대법원장의 공개사과가 나왔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또 얼마전에는 택시를 탔는데 갑자기 끼어드는 승용차 한 대가 있었다. 택시가 급정거를 했고, 추돌사고가 날뻔한 것을 가까스로 모면했다.
내가 봐도 승용차가 잘못은 했다. 그런데 화가 난 택시기사님이 차창을 열고 승용차쪽에다가 '*8 *같은' 등 차 안에서 차마 귀 열고 다 들을수가 없었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사는게 어렵고 바쁘고 내것 챙기기 벅차다 보니 점점 더 각박해지는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앞서가기 위해 다투고, 남에게 뺏기거나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더 거칠어지고 험악해지고 다투게 된다.
그런 행동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작용이 바로 막말 아닌가 싶다.

또한 그런 막말은 이제 소위 못 배우고 성격 나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 배우고 잘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마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기 주변의 이익이나 그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어떤 막말이라도 거침없고 서슴없이 내뱉는다.
정말 요즘처럼 남녀노소, 사회적 지위고하를 떠나 누구에게서든 험악한 막말이 아무런 죄의식이나 고민 없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침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세 치 혀 아래 도끼 든다 했으니 _1
세 치 혀 아래 도끼 든다 했으니 _1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밝아오는 대지에 인사한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의 위대한 침묵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만큼 침묵은 그들이 추구하는 신성함을 만나는 가장 근원적인 의식이고 그 자체를 우러러 숭상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침묵은 육체와 마음의 절대적인 균형인데 그들은 몸과 마음의 정화를 위해 침묵을 한다는 것이다.

침묵이 최선은 아니라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많은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늘 실수가 나오고 그 실수는 결국 상대방에게 비수가 되어 모욕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지 않나.
우린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전철 안에서 오해한 아줌마에게 할아버지가 던진 '별볼것도 없는 못생긴 게'라는 말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깊은 상처를 주는 견디기 힘든 모욕적인 표현이었다. 아무리 생면부지인 사람이라 해도 우리는 그런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구 쓰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모두 새해에는 입에서 말을 꺼내기 전에 침묵의 의미를 마음 속에 한번씩 더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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