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의 생명력에서 느끼는 작은 감동
2013-01-20 12:14:10최종 업데이트 : 2013-01-20 12:14:10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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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 갔다 온 중학생 딸 아이가 작은 꽃나무 하나를 비닐봉투에 담아서 가져와서는 집에 빈 화분 있냐고 묻는다. 겨울 나무의 생명력에서 느끼는 작은 감동_1 아이의 갑작스런 별난 행동에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며칠후 아이는 또 다른 꽃을 사오더니 또 화분을 찾았다. 이젠 마땅히 화분이 없다하자 제녀석들이 먹고 난 페트병을 잘라 지난번처럼 똑같이 흙을 퍼다가 화분을 만들어 거실 한쪽에 놓았다. 아무래도 딸 아이의 행동이 궁금해 웬거냐고 했더니 자기네 학원 앞에 꽃집이 새로 생겼는데 학원을 오고 가다가 보니 꽃들이 너무 예뻐서 그동안 아껴둔 용돈으로 사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 PC방 가고 군것질하는 것보다 낫구나.' 싶어 슬그머니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얘, 그거 물 주고 거실에 흙 떨어지면 청소도 해야는데..."라며 걱정을 하자 "걱정 마세요, 제가 다할게요"하면서 큰소리친다. 한번 사놓고 말 줄 알았는데 꽃 가꾸기 정성에 청소까지 한다니 마음이 놓였다. 아이가 스스로 꽃을 기르고 싶어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집에 갔던 지난 주말이었다. 한겨울에도 친정 집 뜨락엔 생명의 숨결로 자욱했다. 비파나무, 목련, 감나무, 소철, 소나무. 저들은 겨울의 찬바람과 진눈깨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추위에 움츠린 사람들 앞에 뜨락의 나무들은 늘 의젓하고 당당하다. 견디기 어려운 영하의 한파에도 춥다는 한마디 말도 없다. 그 침묵이 예사롭지 않은 인내의 소산임을 나는 안다. 그 생명력은 동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당의 개도 제 집 깊이 들고, 외양간의 소도 더운 김을 내뿜으며 추위를 호소한다. 하지만 마당 여기저기에 흩어져 저마다의 자리에서 시종 부동의 자세를 잃지 않고 제 자리를 뜨지도 않는다. "우와! 엄마, 목련이 벌써 꽃망울이 생길려고 해요. 이것좀 봐요" 딸 아이가 목련을 보며 눈을 크게 뜨고 외친다. "곧 봄이 올려나 보다. 그때 하얀 목련꽃 보러 또 오자꾸나" 딸 아이는 그곳서 겨울의 뜨락에 서서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 그것들에 감동을 받은걸까. 지난 해 여름 가지치기를 하다가 한쪽의 커다란 가지가 꺾여져 버려 힘겹게 한 계절을 난 비파나무는 그 수난에도 새 가지와 잎을 낼 준비를 하며 겨울을 나고 있었다. 잔가지가 모두 잘린 목련도 아픔을 추슬러 마디마디 꽃눈을 부풀린다. 보송보송 털 달린 외피로 에두른 꽃눈은 겨울 속의 희망으로 자란다. 시골집 안마당과 바깥마당 곳곳에 저마다 자리잡고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딸아이는 나에게 "이것은 무슨꽃, 무슨나무?" 하면서 묻기도 하고, 나는 자상하게도 가르치기도 하고, 아이가 까먹을까봐 적으라고 이르기도 한다. 아이는 어느 정도 꽃나무가 크면 꽃을 피우냐고 물으며 집에 돌아가면 인터넷에서 찾아보겠노라는 말까지 한다. 시골에는 인터넷이 안들어오니 별수 없다. 옆에서 지켜 보시던 친정엄마가 하시는 말씀 "너 늙으면 늬 딸내미가 저렇게 정성을 들여줄테니 걱정없겠다"라신다. 나도 예전의 열정이 되살아나는지 딸아이의 겨울 나무에 대한 관심과 정성에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 바라만 보아도 넉넉하고 안온한 느낌을 주는 고향집을 지켜주는 나무들이다. 이미 수십년동안 친정집을 지켜주고 있고, 이미 오래전에 출가한 우리 형제 남매들을 기억하고 있을 나무들. 이제는 그게 우리 딸아이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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