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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액땜을 하다
누구나 제 옷걸이에 맞는 몫이 있는듯
2013-01-22 12:23:09최종 업데이트 : 2013-01-22 12:23:09 작성자 : 시민기자   윤석천
회사에서 요즘 야근이 잦아 밤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은데, 피로가 겹쳐 쏟아지는 하품을 참으며 살짝 졸립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였다.
전화기를 들자마자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여보, 오늘 언제 끝나요?"
"왜? 무슨일인데?"
"둘째가 끓는 물에 데었대요. 당신 집에 언제 갈수 있어요? 애를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여보 어쩌죠.. 에구 어쩌나.... 에구"

전화로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줄을 몰라 하는 아내의 목소리도 다급했지만 아이가 데었다는 상황이 훨씬 더 촉박하고 화급했다. 엄마마저 회사에 다니느라 집을 비운 사이 방학이라 집에 있던 제녀석들끼리 라면을 끓여먹다가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그 상황에 아이들이 겁이 나서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할텐데 그래도 침착하게 큰 녀석이 서둘러 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아내는 우선 급한대로 이웃집 수진이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병원으로 응급 후송시켜 달라는 부탁을 했다며 날더러 몇시에 퇴근해 병원으로 갈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병원 이름을 알려줬다.

최대한 빨리 마치고 가겠노라며 회사 일을 덮고 사무실을 나선 시간이 밤 7시30분. 아이가 다친게 어느 정도인지, 어딜 데었는지, 만약 얼굴에 흉터라도 난다면? 
오만가지 생각에 다리가 다 후들거려서 걸을수조차 없었다. 집에는 어린녀석 둘 뿐이라 그런저런 정황을 제대로 설명해줄 수가 없었으니 직접 가서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두달전, 우리 부부는 적잖은 의견의 마찰이 있었다.
아내는 그때 갑자기 야근을 좀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요즘 아이들 학원도 좋은데 보내고 방학때는 해외 캠프도 보낸다고 난리들인데 우리는 그런걸 너무 못하고 있으니 회사 야근을 자청해 돈을 좀 더 모으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럴 필요까지 있겠나" 하며 아내를 말렸다. 좋은 학원에 캠프까지 보내면 금상첨화겠지만 다 제몫이 있는건데 우리 형편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지금도 아이들이 착하게 구김없이 잘 자라 주는데 그정도로 만족하자며 아내를 말렸다. 
차라리 엄마가 집에서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는게 더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심으로는 아이들 더 좋은 학원에 보내고 싶어하는 아내의 희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내게 스스로 약간 속상하기도 해서 야근까지 하겠다는 아내가 못마땅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급기야 야근 두달만에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회사를 나선지 10분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였다. 당장 화급한 마음에 아이가 어딜 얼마나 데였는지 물었다.
"아. 그거... 다행히 손등을 좀 데었나 봐요. 끓인 물을 다 엎질른게 아니라 냄비에 끓인 물을 국자로 덜어내다가 떨어트린게 손등이라 그만... 많이 다치지는 않은것 같다고 걱정 말래요. 수진 엄마가..."
아내는 죄 지은 사람마냥 목소리가 다 죽어갔다. 

새해 첫 액땜을 하다 _1
새해 첫 액땜을 하다 _1

'휴~... 휴우~~ 하느님 고맙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는 안도의 숨을 깊고도 길게 내쉴수 있었다. 다행히 얼굴도 아니고, 많이 덴것도 아니란다. 사랑하는 아이의 얼굴에 데인 흉터를 보며 죄인처럼 살아야 할걸 생각하니 정말 하늘이 노랬는데 그건 아니라니 기뻤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내가 응급실 안에서 아이를 막 데리고 나오고 있었다. 손등에 응급 처치를 하고, 입원은 안해도 된다며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사실 아내도 따지고 보면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 아침밥 다 준비해 놓고, 아이들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 보기 위해 피곤한 몸 참으며 자청해서 야근까지 한 아내였다.  그런 아내에게 무슨 할말이 있을까 싶었다.
"여보, 미안해요...." 아내가 울먹였다.
"아냐. 괜찮아. 많이 안다쳤다며. 신년에 액땜 한거지뭐"
"여보, 담부터는 내가 조금 일찍 들어갈게" 

내가 아내의 어깨를 감싸자 '문제의' 둘째딸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아빠. 나 다리 아프고 배고파. 피자 사줘"라며 졸랐다.
피자를 사달라구?
온 식구들을 초긴장으로 만든 녀석이 이 상황에서 천연덕스럽게 피자라니. 에구, 애들은 애들인가 보다 싶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서며 하늘을 보았다. "세상은 다 제 몫이 있는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좀 부족해도 꿋꿋이 건강하게 구김없이 잘 자라주는 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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