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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2013-01-23 11:07:03최종 업데이트 : 2013-01-23 11:07:03 작성자 : 시민기자   문성희

'헉헉헉' 
다리가 풀리고 눈앞이 캄캄하다. 회사 일에 지쳐 피곤하던 차에 산에 오르고자 나선 지난 주말, 등산길의 급경사 오르막길에 다다르자 그동안 몸과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 않은 결과가 금방 나타났다.
'거봐, 이 아줌마야, 평소에 운동도 좀 하고 몸 관리도 했어야지. 몸을 마구 혹사시키니까 이정도 가지고 비실비실 대잖아. 깨소금이야. 한번 견뎌봐'
이러면서 육체가 내 정신을 놀리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에고 부끄러워라. 다른 사람들은 이 급경사를 마치 평지 지나듯이 휙휙 스쳐 올라가는데 나는 이게 무슨 꼴이람'
역시 다른 등산객들은 지팡이도 없이 그냥 걷는데 나는 두 개의 지팡이에 의존하면서도 계속 흰 입김을 내뿜으며 힘겨워 할수밖에 없었다.

아주 어렵게 한발짝 한발짝 떼여 올라가던중 눈앞에 뭔가가 나타나 턱 가로막았다. 사람 키 높이만큼 쌓여진 작은 돌탑, 돌무덤이었다.
누군가 등산객들이, 아니면 치성을 드리기 위해 찾은 어느 누군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쌓은 돌탑이다.
오르막길 커브에서 만난 돌탑이 내게 한마디 더 한다.
'이곳에 돌을 한 개 얹어 놓고 갈 지어다. 너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며 너의 가족의 무사안녕을 빌어줄수도 있다. 마음만 잘 쓰면...'

산행길, 기도하는 마음으로_1
산행길, 기도하는 마음으로_1

헉헉대던 숨을 일단 가다듬은 뒤 예쁘장하게 생긴 바닥의 돌을 한 개 주워 돌탑에 얹어 놓고 빌었다.
"다른건 하나도 안 바라고요, 남편과 저와 우리아이들 모두 건강하게 해 주세요"
돌탑에 쌓은 돌의 주인들은 무엇을 빌었을까. 필경 입시철 자식의 합격을 기원했을 사람이 가장 많았을 것이고 아니면 원양어선 타고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바라던지, 또는 해외에 파병된 군인의 무사안전을 기도하든지 했을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은 항상 다 똑같다. 
사람의 소리, 세상의 소음, 그 사람과 세상의 온갖 소리들을 고요히 잠재운뒤 하나의 세월과 또 하나의 세월을 구분해 주며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주는 고요의 마음으로 돌탑에 돌을 얹었을 것이다.
행여나 돌을 얹는 마음에 부정이라도 탈까봐 노심초사 했을 것이고, 혹시나 올려 놓은 돌이 바람에 의해 혹은 실수로 툭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그 역시 전부다 자기 탓으로 돌렸을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셨을 것이다.

얼음보다 더 차갑게 식어버린 새벽공기를 가르며 산에 올라와 그 새벽 한가운데서 제단처럼 차려진 돌탑 앞에 서서 자그마한 돌 하나를 주워 정성스레 손으로 문지른 뒤 올려 놓았을 것이다.

오래전, 나의 친정 엄마는 어땠나.
하얀 국사발 하나 가득 정한수 떠놓으시고는 두 손 가지런히 모아 기도 하셨다. 그곳은 시골집 장독대에서였다.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기운을 다 받아 고이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시던 당신의 모습, 지금도 생생하여 잊을수 없다.
당신이 장독대에서 정한수 떠 놓고 섬기던 그 신이 누군지는 나는 알수 없으나 당신은 자식들이 모두 당신 곁을 떠나 도시에서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때를 거르지 않고 그렇게 빌고 계신다.

아들 딸이 손주를 낳았을때 사랑하는 손주들이 무탈하게 잘 자라 달라고 정한수 떠 놓고 빌었을 것이고, 아들 딸이 직장에서 승진했을때 역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마음을 또 그 어떤 신에게 드렸을 것이다. 자식이 차 한 대 사도 사고 없이 잘 다니라고 빌고, 자식이 이사를 가도 그곳에서 부자 되라고 빌어주신게 나의 엄마셨다.
내 엄마의 이 기도가 언제부터였는지 난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엄마의 이 기도모습을 처음 볼 수 있었다.

과거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지만 그 전에는 철이 없어 몰랐던 것이고 중학교 그때 처음 엄마의 기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참으로 숙연하고 진지한 그 모습에 절로 경건함이 느껴지고 사춘기적 소녀의 그 얕은 마음에도 가족을 위해 이 차가운 새벽에 일어나시어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시는 엄마의 그런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들릴듯 말듯 당신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을 세상의 온갖 신들에게 고하며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복을 기원하시는 엄마의 나즈막한 음성과 끝없이 손바닥을 비비시는 사르륵거림의 소리도 그때 처음 들어보았다.
신년이니 설날이니 하는 들뜸과 여유로움 속에서 솜이불을 푹 덮고 편안하게 잠을 잘 때 엄마는 여느날보다 더 일찍 세상 밖으로 나오셔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북서풍에 시달린 벌게진 열손가락으로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이다. 우리 엄마는...

돌탑에 돌을 한 개 더 얹었다. 그리고 또 빌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리 모두 다같이 잘 살고 경제도 좋아지고 전부다 매일매일 얼굴 맞대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 나눌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해 주소서...'
기도를 마치고 다시 산행길을 재촉하니 벌써 기도의 효험이 나타났나 보다. 오르막길 발걸음이 한결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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