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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통 개복수술을 하다
가치 있는 일에 쓰일 수 있는 '잠들어 있는 동전들'
2013-01-23 21:50:56최종 업데이트 : 2013-01-23 21:50:56 작성자 : 시민기자   한주희

저금통 개복수술을 시행했다. 한 마리는 복수가 가득 차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 보였고 다른 한 마리는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수술이 필요했다. 저금통 안에 동전들이 사회의 곳곳으로 나가 피가 되고 살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게 배를 갈랐다. 

작년 이맘때 였던가.
장애 아동들이 지내고 있는 사회복지재단을 매달 후원하라는 캠페인이 길거리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 재단 소재의 시설에 살고 있는 아동들의 사진과 시설의 소개가 담긴 보드가 길을 따라 쭉 전시되어있었고 그 재단의 사회복지사들이 나와 후원자들을 직접 모집하고 있었다.
꽤 유명한 재단이었다. 그 시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공중파에서 방영되기도 했었다.

매달 소액의 후원금을 입금하고자 하는 신청서를 작성하자 저금통을 주었다. 한 개면 충분하다고 하자 한 개를 더 손에 쥐어 주면서 더 가져가라고 했었던 것 같다. 이 저금통에 동전을 채워 다시 그 시설의 아이들에게 보내야 겠다고 다짐했다. 

얼마간은 열심히 동전을 만들어서라도 저금했다. 책상 서랍, 화장대 서랍 그리고 가방 안 굴러다니는 동전을 찾아 저금통에 넣었다. 사실 카드를 사용하다 보니 동전이 생기지가 않는다. 
어느새 저금통은 구석에 쳐 박아 둔 예전 화장대로 좌천되었다. 결국 잡동사니들에 묻혀 기억속에서도 사라져 갔다. 화장대 앞에서 외출 준비를 할 때 살짝살짝 핑크빛 저금통의 형체가 보였지만 외면하려 했던 것 같다. 초심을 잃었음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서.

그러다 오늘 개복술을 거행했다. 처음에는 500원짜리들이 많이 보여 내심 안도했다. 그런데 찬찬히 보니 고액의 동전은 그게 다였다. 
종류별로 동전을 분류하는데 동전을 집은 촉감이 낯설었다. 마치 다른 나라의 동전을 만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보드게임의 장난감 코인을 만지는 것처럼 동전 자체가 낯설었다. 
'그 동안 동전을 너무 등한시 했구나' 

편리함의 반대는 불편함 이외에도 무감각이 있다.
결제수단이 점차 카드화되면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돈의 가치에 둔감해져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봤다.
역시 그랬다. 카드 하나면 해결되는 세상이니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 등 소비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가치가 현금을 사용할 때보다 예민하게 와 닿지 않는다. 

저금통을 뜯기 전에는 대충 10만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열고 보니 5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확실히 현금만 쓸 때보다 돈의 가치에 무감각해졌다. 하루 나가 밥 먹고 영화보고 차마시면 5만원이라는 돈은 금세 쓰는데 이 동전들의 합이 그저 5만원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시간과 정성이 포함된 돈이기 때문에.

저금통 개복수술을 하다_1
사회 곳곳에 장기이식될 동전들
,
저금통 개복수술을 하다_2
수술대에서 개복술을 마친 저금통
,
저금통 개복수술을 하다_3
많지 않아 부끄럽게 서있는 동전들

어릴 때 자발적으로 돼지 저금통에 저금을 한 이후로 처음 동전을 모아 본 것이다. 그 후 '10원짜리 동전 모으기'처럼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동전의 유통을 원활히 하는 캠페인과 거스름돈을 기부하는 행사에 참여했던 게 동전을 소중히 여긴 경험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때 동전을 모으는 것이 통화유통의 흐름을 저해하고 동전 주조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해서 동전 모으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집에서 짧은 기간동안 동전을 모으는 것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니 한 번쯤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사람 몸 반만한 큰 독과 정수기 통에 동전을 모아서 집 안 이곳 저곳 쌓아놓는 게 아니라면 동전 모으기는 오히려 집 안 구석구석에 있는 동전을 세상 밖으로 다시 보내주는 계기가 된다.

몇 년전에 10원짜리 동전하나를 만드는데 40원이 든다고 들었다. 현재는 비용이 증가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 동전의 화폐가치보다 더 큰 비용이 주조하는데 쓰인다는 것이다. 집 안에 잠자고 있는, 등한시했던 동전을 보니 돈의 가치가 새삼 크게 와닿는다. 

그리고 이 동전들로 무엇을 할 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아마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보다 더 가치 있는 곳에 쓰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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