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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 엄마의 소중한 보물, 장독대
2013-01-24 23:55:16최종 업데이트 : 2013-01-24 23:55:16 작성자 : 시민기자   김순자

와장창!!..... 쨍그렁...
"어머머, 이게 무슨 소리? 장독대에서 나는 소리인데..."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던 저 지난 주말, 녀석들이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둘이 장독대에 쌓여 아직 녹지 않은 친정집 눈을 뭉쳐 논다며 뛰어 다니다가 그만 고추장이 담겨져 있던 옹기 하나를 제대로 넘어뜨려 박살을 낸 것이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사색이 되어 서 있었고 외할머니의 호통이 두려워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두 녀석의 표정이 얼마나 우습던지... 
친정 엄마는 "에구, 이 말썽꾼들!"이라며 그냥 웃기만 하셨다. 엄마와 함께 깨진 옹기와 엎질러진 고추장을 퍼내자니 깊은 고추장 냄새가 정겹게 코를 자극한다. 

그냥 마트에서 사 먹는 고추장에서는 맡을수 없는 고향집 토종 고추장에서 나는 강렬하면서도 정겨운 그 향기. 그것은 늘 친정집 장독대를 처지 하고 있던 옹기 속의 고추장에게서만 맡을수 있는 특권이었다.
장독대는 언제나 엄마의 정겨운 손길에 의해 정돈 되고 생명력을 유지할수 있었다. 

엄마의 장독대. 아버지의 장독대도 아니고, 딸들의 장독대도 아닌, 오로지 수십년간 당신의 땀과 손때가 묻은 엄마의 장독대였다.
엄마는 이곳에 된장, 간장, 고추장, 젓 등 식구들이 먹을거리를 마련해두고 행여 먼지라도 앉을세라 날마다 행주로 윤이 반질반질 나도록 독을 닦으셨다. 그 정성어린 손길이 묻어난 장독대에서는 1년 내내 사시사철 맛 좋은 토종 쏘스를 우리 입에 안겨 주었다.

친정집 엄마의 소중한 보물, 장독대_1
친정집 엄마의 소중한 보물, 장독대_1

고향 집에는 툇마루가 있고, 자그마한 안마당이 있고, 집 뒷쪽에는 장독대가 있다. 장독대에 올라가면 크고 작은 독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다. 간장독이 가장 크고 그에 못지않게 된장독도 컸다. 고추장독이 가장 작았다. 
햇빛 좋은 날, 엄마는 이 독들의 뚜껑을 열어 통풍시키곤 했다. 간장, 고추장, 된장에 햇빛을 쏘여야 곰팡이가 피지 않고, 구더기도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빗방울이라도 후두둑 거리면 엄마는 깜짝 놀라 장독대로 뛰어가셨다. 

마당에는 봄부터 한해살이 꽃들이 피어났다. 채송화, 봉숭아, 과꽃, 깨꽃, 호박꽃. 호박은 넝쿨을 지붕까지 뻗어 올라가 우물가에 그늘을 드리워 주었다. 
장독 항아리에 계절마다 살포시 내려앉은 나비며 벌이며 고추잠자리들. 장독 둘레에 소담스럽게 피던 야생화들까지. 가을철엔 봉숭화 꽃을 된장에 섞어 절구에 빻은 뒤 손가락에 쳐매고 잠들었던 기억들...

여름내 장독대에 놓여 있던 커다란 독 서너개가 마당에 묻히는 건 겨울 초입이었다. 그건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김장김치를 담가 앞마당 흙속에 묻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기억난다. 한 겨울, 김칫독에 김치를 꺼내러 가던 일. 
김칫독 위에는 커다란 가마니가 덮여 있어서 그걸 젖히고 뚜껑을 연 뒤 김치를 꺼내야 했다.  키 작으신 어머니는 항상 김칫독 옆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로 김치를 꺼내야 했다. 배추김치, 동치미, 총각김치.
지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장독대는 단순히 김장을 담구고, 장을 담아두는 그릇으로만 쓰였던 것은 아니다. 정월 보름이 되면 그 장독대 앞에 작은 상을 정갈하게 준비하고 그 위에는 정화수와 촛불을 켜고 집안의 평안과 태평을 기원했다. 
아들 딸이 도회지로 공부를 하러 나갔거나 직장을 잡아 떠나면, 엄마는 항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장독대에 가서 자식들의 건강과 안위를 빌곤 했다.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미역국을 끓여 장독대 앞에 산신상을 마련하고 정성껏 빌었다. 가을이 되어 추수를 하고나면 장독대 곁에 있는 터주가리의 곡식을 꺼내 가을 떡을 해서 올려놓고, 지성으로 추수의 감사함과 더불어, 그 다음해 새해의 농사가 잘 되기를 빌었으며, 그 떡은 집집마다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풍속을 만들기도 했다. 

시집살이가 고되던 엄마의 세대 때, 시골의 엄마들이 때 남몰래 찾아가서 친정을 생각하며 소리 없이 울면서 빌던 것도 장독대요, 집안에 경사라도 날 양이면 가장 먼저 달려가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곳도 장독대였다. 

장독대에는 금줄이 빠질 수 없다. 장독 둘레에 금줄을 두르고 고추나 한지, 숯을 끼우는 것은 물론 때로는 한지로 오린 버선본을 거꾸로 붙이고 솔가지를 끼웠다.
고추는 그 붉은 빛깔에서 잡귀를 물리칠 수 있으나 매운 맛이 힘을 실어 준다. 숯은 나쁜 기운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한지는 그 자체가 좋은 기운을 머금고 있는 길지지만 특히 버선모양으로 거꾸로 해 놓으면 나쁜 기운 들이 그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 하였다.  
장독대의 금줄은 거기에 무었을 꽂아두던 왼새끼를 꼬았고, 그 왼새끼가 나쁜 기운을 흩어버리는 능력을 가졌었다.  거기에 꽂아둔 것들은 우리의 염원이며 상징이 아닌가 생각 한다. 

"너희들, 나중에 돈 벌어서 할머니한테 옹기하고 고추장 사 드릴거지?"
엄마와 깨진 장독의 고추장을 따로 퍼 담고 정리하면서 옛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아이들이 자리를 뜨지 못한채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네...."
외할머니의 눈흘김에 두 녀석은 모기만한 소리로 약속을 한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고향의 옹기와 장독대의 푸근한 정감을 제대로 알고 오래도록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런 정감을 도시의 어느 곳에서 맛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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