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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코트와 어머니의 코트
2013-01-28 02:10:57최종 업데이트 : 2013-01-28 02:10:57 작성자 : 시민기자   김대환

설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어릴적 설날이 좋았던 이유는 세뱃돈도 물론 기대 되는 것이기는 했지만 형님 누님들이 입던 낡고 해진 옷을 대물림 하여 입기만 하다가 그나마 설빔 하나 정도 얻어 입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께 드릴 따스한 겨울 옷좀 사러 백화점에 갔다. 내 어릴적 설빔을 어머니가 사 주셨으니, 이제 연세 드신 당신의 설빔은 당연히 아들인 내 몫이다.

노인들은 4월말 까지는 추위에 대비해야 하기에 한겨울 옷 뿐만 아니라 4~5월에도 입을 적절한 옷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시골에 홀로 사시는 노인이시지만 자식으로써 어머니가 투박하고 볼품없는 잠바만 걸치고 있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옷을 고르려고 백화점에 들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 가다 보니 남성복 코너의 마네킹이 입고 있는 멋진 남자 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 많은 옷과 남자 의류 중에서 유독 그 마네킹이 입고 있던 겨울 코트가 눈에 띈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의 코트와 어머니의 코트_1
아버지의 코트와 어머니의 코트_1

몇해전 고향집에 갔다가 어머니와 가벼운 실랑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해 겨울, 고향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해묵은 옷장을 정리 하시다가 웬 코트 하나를 꺼내시고선 밖에 나갔다 들어오셨다를 두세차례나 반복하시는게 아닌가.
처음에는 그냥 옷 정리를 하시는줄로만 알았는데 남성용 코트 하나를 들과 왔다 갔다를 하시길래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무슨 일이시냐고 여쭈었다.
그제사 어머니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실토하셨다.
"이게, 늬 아부지 젊어서 입던 코트다. 그때는 참 멋졌는디..."
"그러게요. 그런데 그걸 어쩌시려구요?"
"어쩌긴 뭘 어쪄? 버릴라고 그라지. 그런디 자꾸 망설여지네. 버릴라구 가지고 나갔다가 생각좀 해 볼라구 들어온겨"

그랬다. 어머니는 오래전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을때 당신의 모든 것을 태워서 함께  보내드렸는데 그 코트만큼은 유일하게 차마 태우기가 아까워서 그냥 유품으로 간직하고 계셨던 것이다.
까만색 코트. 나도 처음 보는거였다. 그때 당시 옷 치고는 꽤나 고급스러워 보였고 값도 나갈것 같았다. 
"늬 아부지 젊었을 땐 참 멋졌다. 잘 생기고 자상하고.  그 인물 땜에 반해서 내가 시집왔왔는디. 이 코트도 살아생전 농사만 짓다가 어디 외출할때나 슬날(설날) 입었던 옷인디 아주 비싸게 주고 양복점에서 맞췄다. 입히고 싶은 사람도 없지만 하도 좋은 옷이라 아까워서 놔뒀는디 이젠 치워야겄다."
"네..."
"저승간 사람 옷 하도 아까워서 장속에 놔뒀는데 이젠..." 하시면서 이번엔 정말 결연한 의지로 성냥을 들고 밖으로 나가실 태세였다. 아궁이로 가시면 그길로 재가 될 판이었다. 

나는 얼른 어머니의 팔을 잡고 "이렇게 귀한 옷을 왜 태우세요? 이거 저 주세요. 품이랑 길이 고쳐서 제가 입을께요."라고 보챘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깜짝 놀라시며 정색을 하셨다.
"아이고, 너는 젊은 애가 취미도 참 이상하다. 요즘 좋은 옷이 천지인디 저세상 간 영감 옷을 왜 입겠다는 거여" 라며 서로 뺏고 빼앗기는 실랑이를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지막 한말씀에 내가 양보할수밖에 없었다.
"네가 그거 입고 다니면 늬 아부지가 편히 쉬지 못헌다. 간 사람은 편히 보내줘야 하능겨. 내가 여태까지 장롱 안에다 놔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편히 쉬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겨. 인제 더는 안되여"

결국 어머니의 완강한 고집을 꺾지 못해 아버지의 그 세련된 코트는 한줌의 재가 되어 멀리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아버지가 입으셨던 코트를 태우지 말고 아들인 내가 달라고 해도 어머님이 그렇게 한사코 말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년이 지나 또 다른 2013년이 찾아와 새해가 되고, 1월도 마지막주에 접어들어 설날이 코 앞에 다가왔다. 

어머니께 드릴 코트를 하나 장만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애덜 키우기도 바쁠텐데 워쪄자고 이런걸 또 사왔다냐"시며 한사코 안 입겠다고 거절하시지나 않을까 걱정도 슬그머니 들었다. 
그래도 입으시면 따스하고, 더 젊어 보이실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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