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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고향에 가면...
고향은 우리의 근심 걱정 스트레스 다 받아 줄 것이다
2013-01-28 13:44:24최종 업데이트 : 2013-01-28 13:44:24 작성자 : 시민기자   권순도

"이번 설 명절은 에누리 없이 3일이네"
"원래 명절 연휴가 3일이잖아요. 얼마나 놀고 싶어서 그래요?"
남편이 달력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기에 명절 연휴가 얼마나 더 길기를 바라느냐고 하자 짐짓 연휴 외에 별도로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좀 끼어 있어서 하루 이틀 더 되기를 바랬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번엔 토요일 일요일 포함 3일이니 약간 억울할만(?) 하다.

"처갓집에서 올라 오려면 차가 항상 막히잖아. 이게 하루만 있어도 정체가 확 풀리는데 말야"
고마울거 없이, 남편이 아내를 위해 당연히 처갓집에 가는게 맞지만 그래도 아내의 친정집에 다녀올 생각부터 해주는 마음이 싫지는 않았다. 
명절때마다 에누리 없는 3일 연휴인 경우 연휴 마지막날 친정집에서 올라오려면 차량 정체가 사실 극심해서 번번히 애를 먹기는 했다. 그러니 명절때마다 연휴가 어떻게 되는지 달력을 보면서 어느 시점에 어떻게 출발할건지, 국도를 탈건지 고속도로를 탈건지도 항상 고민하며 판단을 세워야 하는 일도 명절날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설사 밤을 새워 달려가고 밤을 새워 새벽녘에 수원에 돌아온다 해도 명절은 명절이고,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설은 설이다. 이제 2주 남았다. 설이 다가오니 마음이 싱숭생숭 기분도 좋고 설렌다. 
경제가 어렵고 안팎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수록 명절날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런 시름 잊고 가족들과 오붓하게 웃을수 있기에 그런것 같다. 예를 들면 밖에서 난리 전쟁통같은 일로 인해 정신없는 와중에 아주 튼튼한 철통 안에서 아무런 외풍도 맞지 않은채 근심걱정 없이 3일간 웃을수 있는 행사, 이게 바로 우리가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마주 앉아 마음 놓고 쉴수 있는 명절의 효과 같다.
그래서 항상 평소 잊고 있던 혈연의 뿌리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는 점에서 대명절 신년 설은 단순한 휴일 이상의 것이었다. 

설날 고향에 가면..._1
설날 고향에 가면..._1

결혼 직전 일이다.
설 전날 집에 가서 빗자루를 들고 집안 청소를 하다 큰맘 먹고 벽장 속까지 손을 댔다. 깊숙한 안쪽에서 종이 박스 몇 개가 나왔다. 빛 바랜 사진이며 어린 시절의 일기장 같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는 설을 어떻게 지냈을까. 일기장을 들춰 봤다. 아버지가 새 옷을 사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아 애를 태우며 잠들었다는 얘기가 적혀 있었다. 일기 뒤의 모습은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이튿날 차례를 올리고 나서야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시장으로 갔다. 

명절이다 보니 문을 연 옷가게가 없었는데 한시간 가까이 헤맨 끝에 겨우 옷가게를 발견하여 아버지는 오래 입으라고 치수가 넉넉한 잠바를 하나 사 주셨다. 얻어 입은 것처럼 헐렁한 그 옷을 입고 아버지와 손 잡고 나오는 어린 딸의 눈에 비친 햇빛은 그날따라 유난히 눈부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게 설은 '설렌 날'이었다. 설빔으로 산 옷이며 맛있는 음식 냄새, 그리고 도회지로 나간 언니 오빠가 찾아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맡에 놓인 새 운동화에서 나는 독특한 화학 냄새와 설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밤새 도닥거리던 어머니의 도마 소리, 흰 눈발을 털어내며 대문을 열어젖히는 형제들의 목청은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값지었다.

5일 장에서 마련한 설빔 옷이 혹여 없어지기라도 할까봐 조바심에 몇 번이고 장롱문을 열어 확인해 보던 기억. 겨울밤 부엌에서 엿을 고는 어머니를 졸라 조청 몇 숟가락을 떠서 창문 사이에 놓았다가 다음날 아침에 얼음 사탕처럼 빨아먹는 재미도 있었다.

일기장을 덮고 다음엔 사진들을 들여다 봤다. 손바닥보다 작고 누렇게 바랜 사진들은 대개 형제들의 어린 시절 모습과 동네 6촌, 7촌 일가 친척들이 설 세배를 마치고 한커트 사진을 찍은 장면 같았다.  10여명의 친척들이 모여 돌담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있었고 옆머리를 바짝 깎아 올린 남자 어른들은 맨 뒤쪽에 엄숙하게 서 있고 어설픈 파마 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인네들은 한 줄 앞쪽에 있었다.

그중 친척 어르신들중 절반 이상은 다 작고 하셨고 나머지 어르신들 역시 지금은 8순 넘은 고령의 연세로 고향을 지키고 계시다. 
결혼 후 지금까지 특별히 불가피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한번도 친정집에 가는 일을 거르지 않았는데 그건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계신 첫 번째 이유 말고는 고향에 대한 소박한 애정이 가장 컸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고향의 애틋함 같은 것.
그래서 명절날 평소보다 2-3배 이상 더 걸리는 장시간의 도로체증을 참고 감내하면서 그 길을 밤새워 뚫고 고향으로 향한다. 마치 몸 속에 천부적으로 고향으로 가는 길이 내비게이션처럼 내장되어 명절날만 되면 자동으로 작동해 몸을 그쪽으로 이동시키는 자동 항법장치가 태생적으로 만들어져 나온 사람들처럼.

그게 한국적 아름다움이고 우리의 소중한 전통이기도 하다.
이번 설 명절, 마음속의 근심 걱정이 있다면 모두 다 훌훌 털어 버리고 고향에 가서 기쁘고 반가운 얼굴로 부모님을 뵙고 오자. 아니면 그 근심걱정 죄다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가서 고향땅 어느 한쪽 땅을 깊이 파내 그곳에 싹 묻어 버리고 오자.
아마도 그 무엇보다도 푸근하고 넉넉한 고향은 우리의 통곡의 벽이 되어 다 안아주고 받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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