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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더 애틋한 어머니 생각
2013-01-29 13:43:26최종 업데이트 : 2013-01-29 13:43:26 작성자 : 시민기자   최종훈

내 나이대에(60년대 혹은 그 이전 출생자분들) 사는 사람들중 적잖은 분들이 주민등록에 나와 있는 생년월일과 실제 생년월일이 다르다.

이유도 다양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당시에는 낳자마자 일찍 죽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애석하게도 자식 죽은 뒤에 가족사가 기록돼 있는 호적기록 원부에 '아무개(아들 혹은 딸) 사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보는게 고통스러워 아예 호적을 늦게 올렸기 때문이다.
조금 키워 보다가 요행히 살아나면 올리자는 생각에서였다.
혹시 일찍 죽더라도 애초에 호적신고를 안했으므로 호적 원부에는 누가 죽었다는 기록이 남게 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수십년전 당시에는 교통도 편리하지 못했고 행정도 요즘같은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누군가 태어나면 그것을 모아서 한달에 한번 정도 마을 이장님이 이 사실을 들고 가서 단체로(?) 호적신고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호적상 생일이 실제 태어난 날과 다르기도 했고, 마을 이장님이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가는 과정상 실수로 다른 날짜로 적어다가 올렸기 때문인데 심지어 이렇게 실수로 바뀐 이름마저 호적에 올린 후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서류를 떼어봤다가 우연히 발견한 경우도 참 많았다. 

그때까지 마을 이장님이 실수로 엉터리로 올린 사실조차 모르고 지낸 것이다.
그래서 졸지에 어릴적 소꿉 친구중에는 우리가 부르는 이름과 실제 호적상 이름이 다른 친구도 두명이나 있다.
여하튼 내 생년 역시 이장님의 실수로 한해 늦게 호적에 올라가 있고,  생일 역시 한겨울인 음력 12월17일인데 호적상으로는 딴판으로 되어 있기에 오늘날까지 호적과 다른 생일을 챙기고 있다. 그나마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생일을 맞이하고 보니 내가 태어나기를 학수고대하며 속 앓이를 하셨던 어머니가 먼저 떠오른다. 노 부모님이 계신 자식들, 나이 들어 생일 맞는 자식들이 다 그렇겠지.
아무리 세월이 바뀌고 조선시대가 아니라 해도 혹시나 시집 온 며느리가 아들을 못 낳을까봐 노심초사 했고, 실제로 아들을 낳지 못해 소박 맞고 친정으로 돌아간 동네 이웃 아낙도 보아 온 터라 어머니의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런 우려는 다행히 아들 딸 모두 골고루 낳으면서 싹 가셨고, 그제서야 마음 놓고 시집살이 할수 있었다고 일러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간절하게 생각이 난다. 
그간 온갖 고생의 시집살이로 마음속에 생긴 응어리의 고통을 남몰래 눈물로 삼키고 참아 오시다가 나를 낳으셨으니 얼마나 좋으셨을까.

물론 내가 큰아들은 아니다. 위로 형님들과 맡으로도 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들을 또 낳은 기쁨이 크셨으리라.
어머니께서는 나를 낳은 후 아들의 무병장수를 위해 액막이를 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매년 생일 음식을 푸짐하게 해주셨다. 생일 떡을 동네 집집마다 나눠주면서 자식의 건강을 정성으로 빌어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지 않은가.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아들의 생일이라며 꼬박꼬박 찹쌀 시루떡을 하셔서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나를 고향으로 불러 떡을 먹이곤 하셨다. 혹시 직장생활로 바빠서 가지 못할 경우라도 반드시 떡을 해서 아들의 생일을 기려주시곤 했다.

생일날 더 애틋한 어머니 생각_1
생일날 더 애틋한 어머니 생각_1

아내 역시 나와 결혼 후 어머니로부터 이런 사실을 전해 듣고는 직접 떡을 만들지는 못하는 대신 반드시 떡집에 주문을 넣어 찹쌀팥떡을 만들어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결혼 후 늘 한결같은 나의 생일 연중행사로 이렇게 하면서 최근에 부쩍 생일날 나의 출생을 기뻐하기 보다는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 생각과 감사함이 더 커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어머니도 이젠 세월 앞에 어쩔수 없이 많이 늙으셨다는 사실을 더 절감하는 것이어서 마음이 에리기도 하다.

길고도 긴 세월동안 자식들 키우고 자식 뒷바라지에 뼈 마디가 닳아 없어지도록 헌신하신 당신이 세월 앞에 서서히 주름이 깊어만 가니 나이 먹은 아들도 어찌 할 도리가 없어 마음에 커다란 구멍만 커져 가는 것이다.
"늬덜도 장가 가서 애 낳아 봐라"
우리 형제들이 자라면서 철없이 굴때마다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다. 결국 장가 들어 아이들 낳고 길러보니 당신의 곧은 가르침과 부모사랑이 뭔지 알게 되었다.

어느핸가, 연말 특집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느 여성 연예인이 자기 생일날만 되면 꼭 친정에 내려가 미역국을 끓여 어머니께 드리고 함께 밥을 먹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낳고 길러주셔서 이만큼 잘 사니 너무나 감사하다는 뜻에서.
그 어머니의 기쁨 또한 얼마나 크랴. 이 못난 아들도 같은 마음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아들딸들이 다 그런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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