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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장수의 추억
2013-01-31 02:44:00최종 업데이트 : 2013-01-31 02:44:00 작성자 : 시민기자   최순옥

 

엿장수의 추억_1
엿장수의 추억_1

"자기야, 엿 먹을까?"
"그래, 엿 먹자. 너도 엿 먹을래?"
 젊고 세련된 젊은 부부가 나누는 대화. 팔달시장에서다. 어린 아이 손을 잡고 시장에 나온 젊은 부부가 장을 보다가 엿장수 아저씨를 보고선 스스럼 없이 엿 사먹을 궁리를 했다.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엿 먹는다는 말을 하면 그나마 덜 이상할텐데 어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조용히 앉아 양식을 즐길법한 남녀가 엿을 먹겠노라 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더 대견해 보인다.
또한 우리네는 18이라는 숫자를 말할 때 발음대로 '십팔'이라고 하면 웬지 욕처럼 들려 '열여덟'이라 말하듯이 '엿 먹어'라는 말도 웬지 어감이 이상해서 '엿 좀 사 먹을까'라며 빙 돌려서 살좀 붙인 뒤 말을 하지만 이 젊은 부부는 그냥 "엿 먹을까? 엿 먹을래?"였다.

확실히 세대차이 나는 사람들이지만 핏자 같은 것 찾아 먹을것 같은 나이에 엿 먹자는데 스스럼 없는걸로 보아서는 다른 젊은 사람들보다는 훨씬 정감 가는 부부였다.
그 덕분에 나도 그 엿장수 아줌마 리어카에서 엿을 좀 사서 먹게 되었다. 옛 추억도 생각 나고, 은근히 단게 먹고 싶기도 해서였다.

어릴적이던 70년대 그 시절은 엿이란 참으로 아이나 어른들이 즐겨 먹던 기호 음식이었다. 요즘 처럼 달콤하고 고급스런 쵸코렛은 구경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난한 시절이니 헌 신발이나 구멍난 냄비들을 내다 팔아 사먹던 추억의 음식이 엿 이었다. 
이젠 다 지워지고 사라져 버려 옛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지만 누구에게나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추억 중에는 어릴 적 시골 엿장수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고리가 한두 개쯤 있을 것이다.

"엿사요, 엿이요! 엿 사요, 엿. 맛있는 엿 사요"를 신나게 외치던 시골 엿장수,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요즘 어린애들은 엿을 제과점에서만 파는 줄 알지만 그때 엿장수는 리어카에 엿을 싣고 끌고 다니며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엿을 팔았다. 

먹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 엿은 어린이와 노인을 불문하고 특별한 별미가 아닐 수 없었다. 어찌 그리 달고 맛이 있었던지, 꿀맛이 따로 없었다. 
웬만한 시골마을에는 한 달에도 서너 번씩 마을을 찾는 단골엿장수가 있었다. 엿장수의 '찰까닥'거리는 가위질 소리가 어렴풋이 마을 입구에서 울려대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모아 두었던 빈 병이나 고철, 휴지, 헌책 따위를 들고 나와 엿과 바꾸어 먹곤 했었다. 특별한 고물이나 폐품이 없는 집에서는 마늘이나 감자, 고구마까지 주고 엿을 사기도 했다.

어찌됐던 보리밥이 주식이던 그 시절, 엿판이 얹힌 손수레를 끌고 '찰까닥 찰까닥' 가위질을 하며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던 엿장수는 시골 어린이들에게 있어 가장 환영받던 존재였다.
저 멀리 동네 입구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리게 되면 집집마다 꼬마들은 부리나케 움직인다. 엿장수가 오기를 기다리기나 한 듯 구석구석에 모아 놓았던 냄비 부서진 것, 비료 포대, 구멍 난 고무신짝, 할머니의 부러진 은비녀 등 갖가지 고물을 챙기느라 부산하기 그지없다.

장독대나 마루 밑, 담장 부근을 샅샅이 뒤지면서도 혹시 빠뜨린 것은 없는 지 뒤지고 또 뒤진다. 시골에서 엿을 사먹을 돈도 없었고, 몇 푼 갖고 있다 해도 그 귀한 돈을 엿 따위를 사먹는데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엿 장수 또한 낭만이 있었다.
엿 사라고 외칠때면 그냥 "엿 사요, 엿 사세요"라고만 외친게 아니었다. "헌 신발이나 구멍난 냄비 삽니다"에 이어 "시집 못간 노처녀도 삽니다"라고 외쳐대며 동네를 휩쓸고 다녔다. 그 구성진 외침 소리에 온 동네가 시끌시끌 했지만 누구도 시끄럽다고 타박하는 사람 한명 없었다. 엿장수 아저씨도 시골의 중요한 일원일 뿐이었다.

엿장수는 아이들이 엿을 조금 더 달라거나 동네 아줌마들이 더 달라고 하면 늘 후하게 인심도 잘 썼다. 자기가 주인이니 더 주기도 하고 덜 주기도 했지만 누가 뭐라고 할사람도 없다. 규격 식품이 아니니 크기가 작다고 따질 형편도 아니었고 그 자체가 그대로 인심 좋고 낭만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한번 커다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엿장수가 나타난 초등학교 5학년때쯤 어느날. 엄마 아버지는 모두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가신 사이에 엿이 먹고픈 마음에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봤지만 엿을 사 먹을만한 헌 고무신이나 빈병 등 고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이미 10일전쯤 다른 엿장수가 다녀갔고, 나는 그때도 집안에 있는 고물은 죄다 갖다 주고 엿을 사 먹었기 때문이다. 

이 엿장수 아저씨는 타이밍을 잘 못 맞춰 오신것이다.
그때 유독 눈에 띈 것은 부엌 안에 있던 커다란 놋쇠그릇이었다. 당시에 놋쇠 그릇은 묵직한 황동으로 만들어 꽤나 값나가는 식기였는데 어머니가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때나 혹은 명절때만 꺼내던 그릇이었다.
그때 마침 할아버지 제사를 앞두고 미리 꺼내 둔 놋쇠 그릇 두 개를 들고 가서 엿을 바꾸어 달라 했다.
그러자 엿장수는 이리저리 보더만 어른들에게 허락을 받고 왔냐고 하기에 당당하게 "네"라고 하니 많은 양의 엿을 내주었다. 엿장수가 어른 허락을 받았냐고 물었던 이유는 놋쇠 그릇이 완전 새것처럼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잖게 많은 엿을 받은 나는 신이 나서 그걸 동네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큰 인심까지 썼고 배 터지게 엿을 먹었다.
그러나, 엿을 먹은 뒤의 댓가는 너무 컸다. 그 귀한 놋쇠 그릇을 엿과 바꿔먹은 것을 안 머머니로부터 회초리로 얼마나 맞았는지.
참 철 없던 시절 이야기인데, 요즘도 가끔 한식당에서 묵직한 놋쇠 그릇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괜스레 쑥스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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